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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旅行(7): 역사의 향기(B) - 대흥 슬로시티

2014. 7. 01 휘문고58회 역사의 향기 참가 친구들은 수덕사와 덕산 충의사 참배를 마치고 대흥 슬로시티에서 우리들의 옛 정취를 맘껏 누리다 예당저수지 황금연못에서 낙조를 바라보며 붕어찜을 즐긴후 모든 일정을 마쳤습니다. 후원해준 예산이 고향인 인태평군(고향미림원예종묘)에게 감사드립니다. 글/사진(조현행): 휘문고58회 홈페이지

禮山旅行(6): 역사의 향기(A) - 덕산

분당, 수지에 거주하는 휘문58교우들의 모임의 명칭은 분수회이며, 회원의 친목과 건강을 위해 분당 수지 지역에 있는 산을 오르자며 만든 산악회가 광교산악회(약칭 광산회. TTC Club)입니다. 특별행사로 ''역사의 향기'라는 명칭을 붙여 분당, 수지 주변의 역사적으로 의미를 가진 곳(가끔은 다른 지역도 선정)을 방문합니다. 분수회 맴버인 인태평의 고향인 예산에 대하여 얘기하다가 '인태평'군이 "내가 후원을 하겠다."고 제안을 하며 "내 고향을 알리는 일인데, 이왕이면 많은 교우들이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혀 분수회를 넘어 58회 전체 수련회 형식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광산회 제16차 역사의 향기를 7월 1일(화) 개최하기로 했고, 45명(싱글 21명, 부부 12쌍)이라는 많은 교우들이 참..

禮山旅行(5): 슬로시티 대흥

땅과 하늘을 우러르며 느 리 게 사는 삶 나와 남을 아우르며 의좋게 사는 삶 슬로시티 예산 대흥 느 린 걸 음 으로 소박한 삶과 자연 역사의 숨결을 담다 슬 로 시 티 대흥 숨 과 쉼 - 대흥 슬로시티 협의회 - 세개 코스 중 '2코스 느림길 '과 ' 3코스 사랑길(보수 공사로 일부 폐쇄)일부 구간을 합쳐 걸었습니다. 대흥 초교에서 출발, 보부상길 올라 대흥향교 지나 시원하게 넓은들 교촌리 논길 1시간 20분 걸렸으며 보부상길 언덕 부근에서는 예당저수지 조망이 일품 이었습니다 2014. 6 느림길 보부상길 교촌리 논길 대흥향교

禮山旅行(4): 덕산 수암산

2014. 06 고교친구들과 7월 1일 덕산·대흥 탐방 행사에 앞서 덕산온천호텔 뒷편 솔바람길 수암산(秀岩山:280m)을 사전 답사차 올랐는데 나지막 하지만 이쁜 이름 ‘솔바람 길’ 글자 그대로 개울건너 등산로 입구부터 솔숲 그늘을 내내 만들며 정상으로 오르는 좌우로 예산8경중 하나인 삽교벌, 그리고 충청남도 신도청소재지인 내포신도시가 눈 아래 양쪽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전망이 뛰어난 산이었습니다. 집에서 나서 버스타고 기차역으로 가다가 기차시간 노칠 까바 황급히 갈아탄 택시요금이 경로할인 왕복 기차비를 훌쩍 넘는 지출을 한 68세 노인산꾼이 무언가 횡재를 한 느낌으로 수암산에 반해 버린 것 같습니다. 수암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덕산온천 쪽과 세심천 온천, 법륜사, 덕산면 둔리, 홍성 용봉산등에서 수암산으..

禮山旅行(3): 아름다운 덕산

1977년 여름.. 이었습니다. 저는 그당시 20대 젊은이로 짧은 휴가중 하룻밤을 덕산온천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삽교역에서 늦은 밤 내려 친절한 택시기사님에게 나그네 머물 온천 안내를 부탁하니 적막한 밤 사방 개구리 울음소리로 가득찬 시골길을 달려 목조건물 앞에 내려주었지요. 덕산온천 이었습니다. 온 세상 캄캄한중에 필라멘트 전등아래 접수계를 지키는 30대 후반의 여직원분이 혼자 여행중이냐고 묻고는 곧바로 남자직원이 2층객실로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넓은 온돌방에 방충망을 친 창문이 있는 아늑한 방이었으며 저녁식사를 깔끔하게 한상 차려 주었지요. 늦은 저녁상 내오고 물릴 때마다 남자 직원은 뒷걸음으로 조심스럽게 손님앞에서 조신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식사후 욕실을 들어 가니 단순한 장방형 욕통이 딸린 욕..

禮山旅行(2): 예산읍 향촌리 관모산

2014. 5 40여 년 전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사촌을 따라 예산읍 향촌리에 사시던 남기문 이모댁에서 지내다 온 적이 있었습니다. 일주일 여 묵으면서 저녁에는 극장에 가서 영화구경도 했고(엘비스 프레슬리 주연, 비바 라스베가스로 기억), 어느 날은 남기문 이종사촌들과 도시락을 싸서 관모산 넘어 수철저수지에 가서 낛시를 한 추억이 있어서 그 길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예산읍의 절반 정도는 뉴타운 재개발을 위해 먼지를 날리며 한창 공사 중이었고, 극장은 주차장으로 변했으며 식객으로 지낸 향촌리 사촌 남기문 이모댁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찾을 수 없었지만 제 마음속 깊은 곳 따뜻하게 손님 접대를 받은 고마움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 남아 ‘그 곳’을 찾아 나설 만큼 강한 힘으로 작동 한 듯합니다. 예산향교..

禮山旅行(1): 행복한 예산, 한마음 농원의 추억

2014년 4월: 70년대 초 예산 농원을 떠난 후에도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다는 마음속 생각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전원생활이라는 소박한 꿈을 갖고 대학시절 _ 여름, 겨울 방학 때 마다, 그리고 졸업 후에도_ 젊은 시절 한때를 보낸 곳이 3만평 규모의 과수원인 예산군 오가면 역탑리 ‘한마음 농원’ 이었습니다 그 이후 인생의 방향이 선회 되었지만 오래전 그 곳 시골길을 걸으며 함께 한 들풀의 속삭임, 가지마다 하얗게 올라오는 배꽃의 순수함, 고무신 발길에 부딪힘이 부드러웠던 황토 흙길은 세월이 지나도 결코 잊을 수 없었기에 옛 추억을 찾아 나섰습니다. 추억 걷기일정: ‘예산역-오가초교-오가역-역말-오가면사무소-한마음농원-좌방리-삽교역 약 12km 걷기 (예산역-오가역 직선거리로는 8.79km) 먼지 ..

湖西여행(2): 식장산 · 대청호 오리골

대청호오백리길을 단순히 물 길 따라 걷는 대신 등산과 연계하여 걷고 있기에 진도(進度)가 늦는 편이며, 제1구간부터 순번호(順番號) 순서로 시작하지 않고 외가고향 옥천 7-1 고리산길부터 시작하여 대전광역시 4구간까지 역(逆)으로 거슬러 올라왔습니다. 식장산: 식장산(食藏山:598m)은 옥천에서 대전평야로 넘어오는 곳으로 백제 때 성을 쌓고 군량(軍糧)을 많이 저장하여 "식장산"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설도 있고, 효성 지극한 부부가 노모(老母)의 밥을 뺏어 먹는 어린 아들을 버리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 땅을 파니 끝없이 먹을 것이 나오는 밥그릇이 나와 풍족하게 살다 노모가 돌아가시자 밥그릇을 다시 묻었다고 해서 식기산(食器山)이라고도 불립니다. 아래서 보면 경사가 매우 급하고 산세가 높아 보여 정상에 오르는..

近畿旅行(2): 서울의 상징 남산

고교친구들과 새해 첫 산행지는 조선시대 목멱산(木覓山)이라 불린 남산(南山 262m)이었습니다. 봄같은 겨울날씨에 잠두봉 포토존에서 청와대·종로를 비롯 서울 강북중심을 바라보며 멀리 모교 휘문고 원서동 구기(舊基)도 확인한 친구들 모두 감개무량해 했습니다. 3호선 동국대학교 6번 출구로 모여, 장충체육관 옆 한양도성길로 들어 신라호텔 뒤, 타워호텔 경내통과, 정상(262m) 오른 후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엄숙히 참배하고 남대문시장으로 내려오니 2시간 30분이 경과했습니다. 식사: 남대문 시장 막내횟집 1년 지나 2018년 남산 신년산행후 막내회집 회식:

龍仁旅行(2): 광교산 종주

2016. 1 내일은 고교친구 창환이 영결식(永訣式)이 수지 동천동 성당에서 있는 날;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주일예배를 일찍 마치고 찬바람 부는 광교산 종주(縱走)에 나섰습니다. 광교산(光敎山, 582m)은 수지(水枝)를 가로지르는 동막천, 성복천, 신봉천, 풍덕천등을 이루다가 탄천으로 합류(合流)하는 발원지(發源地)의 하나로, 어머니 품처럼 넓게 벌려 수지구(水枝區) 마을들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육산(肉山)으로 서해에서 불어오는 겨울의 찬바람도 막아주니 장풍득수(藏風得水)의 고마운 산입니다. 광교산 형제봉, 시루봉을 넘어 바라산 청계산으로 이어지는 긴 산릉이 흰눈으로 뒤덮여 장엄한 설산을 보여주는 광교산설경(光敎山雪景)은 용인8경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상현동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

뿌리여행(11): 양평 종손 만남

‘뿌리여행(7)- 楊平●墨香’에서 ‘양평에서 조상님들의 묘소를 찾지 못한 것은 본인의 정성이 부족한 탓으로 여기기에 앞으로는 서두르지 않고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계속 찾는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라고 쓴 바 있습니다. 어느 여름 날엔 옥천면 용천리 산중에 의령 남씨 묵은 묘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산을 오르는 중 갑자기 퍼붓는 비로 내려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일념으로 어두운 사위, 잡풀로 덮이고 나무뿌리가 봉분으로 뻗어 내린 고묘(古墓)에서 고인이 혹시 내가 찾는 조상님이신지를 확인하기 위해 상석(床石) 글자를 확인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러한 담대함이 나왔는지 모르겠으며 본인의 뜻이 조상님들과 통했는지 양평으로의 아홉 번째 탐방에서 양평 선조님들을 모..

뿌리여행(10): 직산 산직말

2013년 여름 6대조 남이범(영암군수: 뿌리여행7)의 4남(막내)로 태어나신 5대조 ‘남일원’은 양평 고읍(古邑)에서 재당숙이 되시는 직산현(稷山縣) ‘남이욱’에게 로 출계(양자)하셨습니다. 직산에서도 그 후대에 또 한 차례 출계로 6대조에서 4대조 까지 연이은 3대 출계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고조할아버지만도 두 분이 되시니_ 양부계 고조부이신 남정보(규장각 검서관)와, 생부계 고조부 남정철(예안군수)로_ 부계중심의 남아선호사상에서 대를 잇기 위한 뿌리 깊은 관습과 8촌을 넘어 10촌까지도 한 가족으로 여기는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혈연관계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직산읍 상덕리(上德里) 증조부 묘는 수차례 드나들었지만 고조부님과 증조부님이 사셨던 직산 고을과 판정리(板井里) 산직말(山直村) 선영은 가본..

뿌리여행(9): 별내면 화접리 忠景公 南在

2013. 8. 충경공 남재 [忠景公 南在]_ 조선조 조상님들의 시작_ 1371년(공민왕 20) 진사시에 제5등으로 합격했다. 아우 은과 함께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이 개국되자 개국공신 1등에 녹훈되고, 1393년(태조 2) 주문사(奏聞使)가 되어 사이가 좋지 않던 조선과 명나라와의 외교관계를 개선하는데 기여하였다. 남재, 남은 형제는 같은 개국공신이면서도 태조의 왕위 계승권을 놓고 상반된 길을 걷게 된다. 남은은 방원, 정도전등과 함께 조선 개국의 중추 세력이었으나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과 함께 세자 방석의 편에 가담했다가 방원에게 살해당했다. 이로 인해 남재는 1차 왕자의 난 때 잠시 유배되었으나 방원의 굳건한 신임으로 풀려 나왔다. 참조_ 강무공(剛武公)남은(南誾)유서 분재기 http:/..

近畿旅行(1): 둔촌동 일자산(상)

대학친구들과 새해 첫 산행지로 지난 2년 동안 함께 걸은 서울둘레길 중 노년기 산행객들에게 부담없고 편안해 명품길로 인정받은 강동구 둔촌동 보훈병원 뒤 일자산(一字山: 134m)을 택해 감북동, 일자산 정상, 둔촌굴 일대를 약 1시간 30분 걸었으며 하산 식사는 이정식군이 쏘아 점심이 한층 즐거웠다고 합니다. 참석8명: 도종현 남기화 김소현 박봉신 송한준 오용탁 이장석 이정식 교통: 5호선 둔촌역 1번 출구에서 둔촌성당 지나 주공아파트 옆길 따라 일자산 입구 도보 20분 2023년 10월 3일 아차산 전망대에서 일자산 조망(아파트 바로 뒤 산 줄기):

뿌리여행(8): 楊平●墨香

2013. 7 차남이신 6대조 할아버지(남이범, 영암군수)께서는 후손이 없으신 남기로(南綺老, 영조32년 문과 庭試합격, 교리) 9촌 재재당숙에게 출계(양자 가심)하셨기에 양평에서 참배해야 할 조상님들은 모두 네 분이십니다. 안성 남운로 할아버지(뿌리여행(4) - 성요셉의 집) 슬하를 떠나 양평으로 양자 가신 남이범 할아버지는 남취명(병조참판) 비롯 3대에 걸쳐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 네 형제를 얻는 복을 누리시며 3남 남성원(南性元)은 이조판서에 까지 올랐으나, 저의 직계 이신 4남 '남일원'을 직산(천안) 7촌 재당숙에게 또 다시 양자를 보내셨기에 이후로 양평에 자리 잡은 장남 후손들과 직산(천안)거주를 시작한 막내 집안은 차츰 단절이 되어 150여년 세월이 지나며 잊혀 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양평 조..

뿌리여행(7): 남이(南怡)장군 묘소 참배

2013. 7 남이(南怡)장군은 병조의랑 남경문(南景文, 뿌리여행(3) - 살고개 작은능)의 3남 의산위(宜山尉) 남휘(南暉_ 태종대왕의 넷째 딸 정선공주'貞善公主'와 결혼)의 장손자로 세종25년(1443) 에 태어나셨습니다. 남이장군의 공적과 26세(1468)에 억울하게 처형당한 사실은 그 자초지종을 한민족 모두가 아는 일이니 그 부분을 여기서는 생략 하겠으며, 원통한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민족의 한마음이 장군을 국민의 장군으로 승화 시켰습니다. 장군의 직계 후손은 없고 묘소는 경기도 화성군 비봉면 남전리 산 145번지에 있던 것을 숙종조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이 묘역을 정화한 이래 경남 창녕군 부곡면 일대에 살고 있던 장군의 아우인 남초(南怊)의 후손들이 후계를 이어오다가, 순조18년(1818년) ..

뿌리여행(6): 고난의 시대를 넘어

금년 봄 조선시대 조상님들 묘소를 찾아 참배를 시작 한 이후로 참으로 신기한 일들이 여러 번 생겼으며 그중 하나는 광주 직동(곧은골)을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남용우) 생전에 여러 조상님들 산소가 광주 한 곳에 계신단 말씀은 수차에 걸쳐 들었으나 이 무심 한 아들 녀석은 광주라는 단어 하나 만 머릿속에 담았을 뿐 이었습니다. 초봄 어느날 분당 율동공원 일장산 넘어 청백리 ‘고불 맹사성’과 그 어르신이 타고 다니셨다는 유명한 검은 소 무덤(흑기총)을 찾은 후, 하산 하다 우연히 마주 친 곳이 바로 직계 조상님들을 모신 제실이었고, 뿌리여행(5)에서 쓴 바와 같이 임진왜란 직전 국창공(남응운, 뿌리 여행2)의 2자인 도사공(남호) 할아버님이 식솔들을 인솔하여 난을 피해 들어 온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뿌리여행(5): 곧은골(直洞)

2013. 6 직계조상님들 연고지 한 곳은 ‘뿌리여행3’의 20대조 남경문(南景文)할아버지의 가천대역 묘소를 중심으로 펼쳐져 현재의 성남시 태평동, 신흥동, 수진동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손들의 일 지파인 14대조 ‘도사공 남호(開城都事公 南琥- 뿌리여행2_ 국창공 남응운의 二子)’ 할아버지가 현재의 경기도 광주시 직동(直洞, 곧은골)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은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 직전이며, 이후 우리는 ‘의령남씨 부정공 도사공파(副正公 都事公派)’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갈마터널로 연결되지만 성남시 율동 공원 일장산 넘어 첩첩산중 산골인 점을 보아 당시 국제정세를 판단 미리 피난지를 택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은거(隱居)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전하여 도사공 남호의 사..

뿌리여행(4): 성요셉의 집

2016. 6 7대 조부님은 영조 22년(1746년)_ 제가 47년 생 이니 제가 태어나기 201년 전_ 39세 연세에 장원급제를 하신 남운로(南雲老)할아버지로, 영조41년 정조대왕이 세자(세손)시절 ‘세자시강원 보덕(輔德)’(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세자 전임 교수)을 임명 받으셨습니다. 할아버님은 두 형제분을 두셨는데 첫째 남이간, 둘째 남이범 으로 저 는 둘째 후손이고 남이범 할아버지는 양평 재당숙에게 출계(양자 간)후 200년 세월이 흐르며 양 형제간 후손 들은 8촌을 넘어 16촌이 지나다 보니 소식이 단절 되었으며, 족보에 기록된 ‘양성 가천(陽城 佳川)‘ 네 글자 만 으로 묘소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인터넷과 문헌을 통한 조사와 네 차례에 걸쳐 옛 가천에서 갈라진 ‘안성 원곡면’과 ‘평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