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龍仁旅行 262

龍仁旅行(262): 수지 알프스 설산 산행

2025. 1. 28(화)  눈눈 내리는 날 수지 알프스 산행에 나섰습니다. 수지구 동천동, 신봉동, 고기동 광교산 지맥 자산들에 걸친 환상형 산맥을 수지구 알프스, 또는 동천동 알프스라고 합니다. 수지 알프스 가운데에는 상손골, 중손골, 하손골로 나누어지는 손골이 있으며 손골 뜻풀이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손처럼 가늘고 긴 골짜기라는 의미의 손골(手谷). 2) 소나무가 많은 골짜기 송골(松谷)이 손골로의 변음 설. 3) 향기 나는 풀인 손초(蓀草)가 자생한 골짜기라 손골(蓀谷)이라는 주장입니다. 손골은 현재 손곡(蓀谷)이라 한자 표기하니 3번 주장이 보편적입니다. 참고자료_ 용인시민신문 2005.07.14. 정양화. 손골(蓀谷)과 송골(松谷)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의 스승으로 조선 중기 최경창·백광..

龍仁旅行(261): 광교산 호랑이 전설따라 눈길 산행

광교산(582m)이 진산인 수지구에는 호랑이와 관련한 지명유래가 전래합니다. 광교산 자산인 손허산(遜墟山 297m) 이름이 유래한 고기동 손기(遜基 손의터)에 ‘호랑이가 많았는데 호랑이를 잡는 것은 사람의 손이라 하여 손기(遜基)라 하였으니 손을 나타내려면 손(手)이라 해야 하는데 순할 손, 겸손할 손(遜)을 써 온 것’이라는 지명유래입니다. 출처, 용인시 홈피. 호랑이 이름이 붙은 바위로는 고기동, 동천동, 성복동, 신봉동 마다 범바위가 산재합니다. 현재도 쉽게 확인 할 수 있는 곳은 성복동과 신봉동 경계, 광교산 지맥인 바지산(보아지산 洑阿只山 186m) 범바위입니다. 호랑이가 다니던 길목으로 호랑이가 가끔 쉬어간 바위라 붙여진 이름으로 밤이면 바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호랑이 눈이 번쩍였다고 합..

龍仁旅行(260): 아홉사리고개 · 검드레산 · 삼성쉐르빌 · 재벌 명당묘터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아홉사리고개 부터 충청남도 천안의 짚새끼 사리듯 꼬부라진 아홉사리고개, 부여군 홍산면의 보부상 애환이 녹은 아홉사리고개, 경상남도 거창 가북면 아홉사리고개 까지 전국적으로 아홉사리고개(九曲峙)가 분포하고 있습니다. 깊고 험한 지역 이였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고개마다 전설도 전해옵니다.  옛날 인제군 상남리에서 험준한 아홉사리 고개를 넘어 16세 처녀가 홍천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시집온 1년 후에 아이를 낳아 친정엘 가려 해도 아이와 함께 험한 산길을 도저히 넘어 갈 수가 없어 아이가 아홉살 되던 해에 드디어 고개를 넘었다 하여 아홉사리 고개라 전한다고 합니다.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도 아홉사리고개(아홉살이고개)가 있습니다. 옛 용인군 수지읍 시절 외진 산골 마을인 동천리..

龍仁旅行(259): 검드레산 · 충정공 민영환 선생 초장지를 찾아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 1861~1905) 선생 유택은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모셔져 있습니다. 선생이 우국충정으로 자결하자 나라에서 검드레산(260.1m 행복언덕쉼터 신봉산 간태산) 일대를 사패지(賜牌地)로 하사해 여흥민씨 정계표석이 있다는 글을 읽고 오랫동안 찾아왔었습니다. 검드레산 정상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쉬는데 토월약수터 방향으로 빨래판 같은 특이한 장석(長石)이 쓰러져 있어 흙을 딲으니 여흥민씨사패정계(驪興閔氏賜牌定界)라는 한자가 드러납니다. 사패지 정계표석 이었습니다. 소유권을 상실한? 여흥민씨 가문에서 관심을 끊으니 정계석도 잊혀지고 비바람 세월에 쓰러져있습니다. 잊혀진 건 사패지경계석만이 아닙니다. 우국지사 민영환선생의 초장지(初葬地)도 찾을 수 없습니다. 본래 용인군 수진면 토월..

龍仁旅行(258): 수지·분당 동막천 오룡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동천자이 아파트 앞 ‘고기로’ 건너 동막천으로 내려가면 용인 동천동과 성남 동원동을 연결하는 60m 길이 작고 낡아 부서져가는 보(洑 둑)를 만나게 됩니다. 이 보 주변이 병자호란의 상흔을 간직한 오룡뜰(五龍坪)이고 이 곳 보에서 흐르는 물이 과거 구미동 오리뜰 까지 적신 벼농사의 젓줄 이였습니다.  수지구와 분당구의 접점지인 오룡뜰은 병자호란 험천(險川) 주전투장인 분당구 진재산이 급경사를 이루며 동막천(험천)과 만나는 장소입니다. 동천동·고기동 역사를 연구하는 김창희(동아일보 전국제부장) 선생은 ‘오룡뜰은 다섯 마리의 용이 사는 들판이라는 뜻으로 1636년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의 인조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충청도 관찰사 정세규의 부대가 몰사한 장소들 중의 하나라는 구전도 있다...

龍仁旅行(257): 고인돌, 검드레산(신봉산), 동천도서관

동천동 래미안 이스트팰리스 단지내에 덮개돌과 받침돌로 구성된 고인돌 형태 바위가 있습니다. 조경용 복제인지 청동기 시대 고인돌인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고이건희 삼성회장님의 “아시아 최고 명품 주거 단지를 만들라"는 지시로 지은 아파트라 조경용이라면 삼성 일 처리 솜씨로 보아 안내판을 누락했을 리가 없습니다. 저는 이스트팰리스 주민이 아니니 아파트 홍보 글은 아닙니다. 이스트팰리스 고인돌에서 검드레산(260.1m 신봉산 행복언덕쉼터)은 느린 걸음으로 산책성 등산로를 따라 약30분이면 오릅니다. 검드레산(260.1m)은 한자로는 간태산, 간대산(栞坮山) 또는 금태산, 금대산(琴坮山)입니다. 우리말 검드레산(건드레산)의 한자 차음 표기들이며 수지읍지(2002년 용인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에 ‘금태산(琴坮山)..

龍仁旅行(256): 광교산 문필봉

광교산 오름 코스 중 하나가 동천동 만남의 교회 출발입니다. 만남의 교회에서 일정 시작해 만나는 첫 번째 봉우리가 광교산에서 가장 낮은 문필봉(148.4m)이며, 이후 검드레산(행복언덕 쉼터)~ 성지바위산~ 바람의 언덕~ 광교산 제1봉 시루봉(582m)으로 산줄기가 계속됩니다.  문필봉은 이름에 어울리게 수지고등학교, 수지중학교, 손곡중학교, 한빛초교, 청소년 수련원이 에워싸고 있으며 정상에는 체력단련 시설이 있어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집니다. 청소년들 심신 성장에 혹시라도 기휘(忌諱)해야 힐 묘나 묘 자리 흔적이 없어 특히 좋습니다.  손곡중 교명은 동천동 자연마을 손곡(蓀谷)에서 왔습니다. 허균·허난설헌 남매의 스승으로 조선 중기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한 분인 이달(李達 1561~1618) 선생의 호가..

龍仁旅行(255): 고구려 석실묘 · 손허산 · 치마산

용인시 수지구 손허산(遜墟山 297m)에는 고구려 석실묘가 있습니다. 2012년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철기시대 토광묘를 비롯하여 석실묘 3기 등이 확인 되었는데 조사가 중지 상태이다가 2023년 7월 6일 부터 발굴조사가 재개되었습니다. 장마와 길게 이어지는 폭염 탓인지 현재는 일시 중단 상태입니다. 손허산(遜墟山) 한자는 겸손할 손(遜)에 산기슭 허(墟)를 씁니다. 손허산 아래 낙생저수지(고기저수지) 물가에 겸손하고 착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을 손이터, 또는 손기리(遜基里)라고 불린 데에서 손허산 이름이 유래합니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양보한 것을 손국(遜國)이라고 하니 산 이름에 꾀나 어려운 한자를 사용했습니다. 광교산과 줄기 산들이 가로막고 물길 발달한 수지(水枝)는 궁벽한 산촌이었..

龍仁旅行(254): 백암 비봉산 · 쓰레산

비봉산:새가 날개를 편 형세의 비봉산(飛鳳山 372m)을 오르기 위해 오전 6시 45분에 집을 나와 걷기 출발점인 백암면 상산 한택식물원 입구에 9시 19분 도착했으니 2시간 34분 걸렸습니다. 같은 용인이라도 한 끝(수지)에서 또 다른 끝(백암)으로 이동하니 수원역 가서 기차타고 충남 예산을 가는 거나 별 차이 없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비봉산 정상은 안성시 관할이지만 용인 10-4번 버스 종점인 상산(上山 윗모리)라는 이름은 백암면 옥산리에서도 비봉산 기슭 맨 윗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며 비봉산 골짜기 거무투골에 한택식물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통사(智通寺)가 있어 지통산(智通山)이라고도 불렸다고 내고장 용인지명·지지(용인문화원 이인영)에 등장할 정도로 안성·용인 접경지 산(山)입니다. 산행인들에게..

龍仁旅行(253): 충현공 안홍국 장군 유허지 종합

충현공(忠顯公) 안홍국(安弘國1555~1597) 장군은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선봉장으로 활약을 하다 정유재란때 안골포해전에서 전사하십니다. 여수 충민사는 이순신 장군과 안홍국 장군, 이억기 장군 세 분만을 배향합니다. 덜 알려진 안홍국 장군의 위치를 짐작하게 합니다. 안홍국 장군의 애마(愛馬)가 장군의 관복인 철릭(天翼)을 잔등에 달고 천리 길을 달려 장군의 고향인 어비리 집 앞에서 기진해 죽습니다. 시신 없는 장군의 묘에는 장군이 평소 착용한 철릭을 모셨으며 말무덤도 만들고 충신안홍국용마비(忠臣安弘國龍馬碑)도 세웁니다. 장군의 정문(旌門 정려각), 묘소, 말무덤(용마총)은 이동읍 어비리 지근거리에 몰려있습니다. 사당인 충현사(忠顯祠)는 묘봉리에 따로 있는데 사당 뒤 주택에 거주하시던 종손이 타계하신 이..

龍仁旅行(252): 청년 김대건 길(下) 바사리고개 · 애덕고개 · 미리내 성지

경로: 장촌교~ 망덕고개~ 바래기산~ 쌍령지맥 분기점~ 바사리고개~ 애덕고개~ 미리내성지  망덕고개에서 호랑이를 만나며 위기를 넘긴 17세 소년 이민식은 김대건 신부 시신을 다시 지개에 지고 계곡 루트 장촌~거문정으로 해서 애덕고개를 넘어 미리내에 시신을 안장합니다. 저는 역으로 장촌에서 해실이 망덕고개 ~ 바래기산(發岳山 379.5m)을 오른 다음 능선 타고 바사리고개에서 애덕고개로 향합니다. 김대건 신부 시신 운구길이 아닌 전교의 길입니다. 바사리고개:이동면 묵리 병목골, 장촌, 한덕, 거문정과 원삼면 학일리 고초골에 퍼져 살던 천주교인들이 교류한 길이 바사리고개입니다. 삼덕의 고개에는 포함되지 않아 덜 알려졌지만 김대건 신부가 교우촌에 사목(司牧)하러 넘은 길이고 교우들이 끼리끼리 품앗이나 용인장,..

龍仁旅行(251): 청년 김대건 길(中) 문수봉 · 바래기산 · 망덕고개 · 해실이

구불구불 고갯길 둥그런 언덕 곱등고개(曲頓峴)에서 문수봉(文殊峰 403m)을 오릅니다. 임꺽정이 안성 칠장사 스승을 만나러 고개를 넘다 가짜 꺽정이를 혼낸 홍명희 소설의 배경일 정도로 곱등고개는 험한 곳이었습니다. 충북 괴산 출생인 벽초 홍명희 선생이 경기도 용인 땅에서 소설 배경으로 딱 맞는 곳을 찾아내셨습니다. 곱등고개 거의 정상에 버스승차장이 있어 어렵지 않게 문수봉 산행을 시작합니다. 곱등고개에서 문수봉 방향으로 은근히 진이 빠지는 언덕을 14분 오르면 용인 농촌 풍경이 발아래 펼쳐지는 용담조망(龍譚眺望) 뷰 쉼터입니다. 문수봉(文殊峰) 정상에는 은이 성지순례 대형 안내판과 불교 미술 걸작인 마애보살상(磨崖菩薩像) 방향표시가 공존합니다. 문수봉은 정맥·지맥 타는 산행인들이 한 번은 꼭 밟는 한남정..

龍仁旅行(250): 청년 김대건 길(上) 은이성지 · 신덕고개 · 어둔이

경로: 은이성지 ~ 은이골 가족캠핑장 ~ 신덕고개 ~ 은이산 ~ 형제봉 ~ 보문정사 ~ 내어둔 돌무지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3리 은이성지(隱里聖地)에서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미리내성지 10,314m 구간에 있는 신덕고개, 망덕고개, 애덕고개를 하나로 부르는 이름이 '삼덕고개'로 김대건(金大建 1821-1846) 안드레아 신부가 사목활동을 위해 넘나들던 고개였고 이민식(李敏植) 빈첸시오 17세 소년이 순교한 신부님의 유해를 밤에 지개로 몰래 운구한 길입니다.  용인이 고향인 고(故)김진용 마티아님이 ‘은이’와 ‘미리내’를 잇는 마을과 계곡·능선을 따라 연결되는 길목에 험한 세 고개를 천주교의 신덕(信德), 망덕(望德), 애덕(愛德)의 의미로 명명하니 가톨릭 도보 순례길인 ‘삼덕의 길’입니다. 용인시는 ..

龍仁旅行(249): 이동저수지(Ⅴ) 이진봉 · 토운봉 · 송전

마골에서 곽장곡 약수터로 해서 이진봉(127m), 토운봉(吐雲峯 187.8m)을 올라 송전에서 산행을 마무리합니다. 지난 산행·여행기에서 소개하지 못했거나 늦게 알게 된 사항들을 보충하며 다섯 차례에 걸친 이동저수지 산행·여행기를 끝냅니다.  1397년 순흥 안씨 안이녕 선생이 입향한 이후로 강릉 김씨·청송 심씨·정주 정씨들이 정착해 대성을 이룬 정든 고향 어비울(魚肥里 魚肥洞)을 눈물로 떠나야했던 수몰민들의 한과 아려한 이야기에 공감하고 반듯한 주변 산들에 취하다 보니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이진봉 곽장곡(藿場谷) 약수터:약수터 뒷면을 찬찬히 살펴보니 1986년 4월 세운 비석이고 ‘용인군 이동면 어비리 ?67번지’ 주소 음각이 있습니다. 전체 글자는 판독할 수 없었으며 38년 전 기립연도로 보아 무..

龍仁旅行(248): 이동저수지(Ⅳ) 토운봉 · 금당골산 · 이진봉 · 동도사

지난 5월 초 어비울 실향민 망향정에서 실향민들 모임인 용어회(龍魚會) 6대 회장 정선용(86세) 선생님을 우연히 뵙고 물안개 내릴 때 구름을 토하는 모습의 토운봉(吐雲峯 187.8m) 이름과 금당골(金堂谷 金丹谷)을 가운데 두고 토운봉과 마주하는 산이 금당골산(金堂谷山 金丹谷山 176.2m) 이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동도사 홈페이지는 ‘금당골 정상에 세워졌던 금단사(金丹寺)가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불태워 산 정상에서 수몰지역인 원어비리로 굴리어져 동리주민들에 의해 복원, 대대손손 이어진 주민들의 정신적 의지였으며 기도처였다’라고 동도사 전신인 금단사를 소개합니다. 금단사 골짜기 금단골이 금당골로 변화했다고 봅니다. 용인문화원부설 향토문화연구소에서 2008년 발행한 남사면지(南四面誌) 156쪽에는 ‘..

龍仁旅行(247): 이동저수지(Ⅲ) 이진봉 · 토운봉 · 금당골산 · 부채산 · 어비울 실향민 망향정

경로: 마골~ 이진봉(뾰죽산 127m)~ 수변 데크쉼터~ 호랑바위~ 토운봉(178m)~ 금당골산(176.2m)~ 어비리고개~ 강릉김씨 참판공파 묘역~ 부채산(117m)~ 수역~ 어비울 실향민 망향정 · 어비울비각 이동읍 어비리(漁肥理)는 어비울(魚肥洞 어비동 어비촌 원어비동), 수역(壽域)마을, 방목동(放木洞), 점말(店村 점촌), 곽터(郭基 곽기), 장율(長栗 긴배미)의 여러 마을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경기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이동저수지가 어비리에 생기면서 어비울(어비동)은 수몰(水沒)돼 통째로 사라집니다. 그 이외 마을들은 일부가 남아 지명이 현존합니다. 지역민들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마을 이름들에 큰 애착을 갖고 있습니다.  1397년 순흥 안씨 안이녕이 입향한 이후로 강릉 김씨, 청송 심씨, 정..

龍仁旅行(246): 이동저수지(Ⅱ) 거북산 · 이진봉 · 금당골산 · 토운봉(뒷동산)

경로:수역교~ 거북산~ 이진봉~ 금당골산~ 토운봉(뒷동산)~ 수역교 회귀~ 방목정~ 어비울 비각 거북산(78m)과 이진봉(뾰죽봉 127m), 은아봉(토운봉, 뒷동산 187.8m)을 올랐습니다. 거북이 기어가는 모습의 거북산 이름 유래는 산 모양으로 쉽게 이해가 됐으나 이진봉, 은아봉 이름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그런 데로 오늘 산행한 산들 원경(遠景) 사진이나 잘 담을 요량으로 어비울 비각(원어비동유적영세불망비)에 들렸다 용어회(龍魚會) 6대회장 정선용(86세) 선생님을 만난건 행운이었습니다.  이동저수지 완공으로 수몰된 370여 호, 2351명 실향민들이 1981년 용어회를 조직한 이후로 원어비동유적영세불망비(元魚肥洞遺跡永世不忘碑) 비각을 단체로 또는 개별적으로 찾아 고향을 바라보며 향수를 달..

龍仁旅行(245): 이동저수지(Ⅰ) 갈마산 · 검은산 · 어비울 비각

이동저수지 어비낙조(魚肥落照)는 용인시 선정 제8경입니다. 어비리를 지나던 큰 내에 제방을 쌓아 2351명의 실향민 아픔을 담은 경기도 제1 저수지를 조성하니 조상님들이 이름 지은 그  대로 고기가 살찌는 어비리(魚肥里)가 되었습니다. 저수지가 평면으로 보이는 어비1리 버스정류장 방목마을 방목정 전망 데크는 어비낙조 촬영명소입니다. 동도사(同度寺) 뒤 갈마산(渴馬山 226.2m)을 오르면 송전리에서 어비리 까지 펼쳐지는 광활한 수면을 눈 아래 깔고 감상합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이동저수지 인근의 달봉산, 삼봉산, 시궁산, 갈미봉, 뒷동산, 묘봉, 장자봉, 빈양산, 충현공 안홍국 장군 묘소를 오르내리며 이동저수지를 덤으로 조각 감상했지만 갈마산에서 조망은 완전하고 압도적입니다. 일부 산행인들이 KBS 중계..

龍仁旅行(244): 안홍국 장군 말무덤 · 빈양산

눈을 무릎 뜬 성난 표정의 무인석 한 쌍이 충현공 안홍국(명종 10년~선조 30) 장군의 묘소를 지킵니다. 정유재란 해상 전투 중에 장군이 전사 하실 때 표정을 재현 했습니다. 장군은 “적탄을 맞고 전사한 뒤에도 생시처럼 눈을 부릅뜨고 노여운 안색을 풀지 않았다. 온 몸과 표정이 당당하여 살아있을 때와 같았다.“라고 전합니다. 강현 충현공기 재인용> 공의 묘소에서 바라보는 이동 저수지 풍광은 아름답습니다. 장군이 어릴 때 동무들과 뛰어 놀던 개울도 모래밭도 마을도 모두 이동저수지를 조성하며 잠겼습니다. 일제 시절 조성한 신작로도 수몰될 정도니 충현공이 살아 계실 때 어비리 풍광은 지금 보다 더 아름다웠다고 단정합니다. 장군 묘소 옆 빈양산(賓陽山 143m)에서도 이동저수지 풍광은 아름답습니다. 밝음을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