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龍仁旅行

龍仁旅行(264): 검드레산 이우성 선생 묘는 어디로

맑은공기n 2025. 2. 27. 16:01

검드레산(행복언덕쉼터 건드레산 간태산 금태산 신봉산 260.1m)에서 성지바위산(265m) 방향 230m 거리에 석암(石菴) 이우성(李羽成 1641~1698) 선생 묘가 있었습니다. 조부가 조선시대 대문장가로 대청황제공덕비(삼전도비)를 지은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1595~1671) 선생입니다.

 

이우성 선생 묘는 광교산 주봉인 시루봉 향()을 포기하고 석운동 발화산(發火山, 發華山 우담산 425m) 조부, 부친 묘를 바라보는 서북향 자세로 300년 이상 검드레산에 모셔져 있다 2024년 가을 석운동 백헌(白軒) 선생 묘원 옆 문중 묘로 이장 하였습니다

 

조부(祖父)부터 아버지, 아들 손자 묘 모두 판교 석운동에 있는데 이우성 선생 유택을 검드레산으로 정한 사실이나 충정공 민영환 선생, 무아 정규성 회장 초장지로 검드레산을 선택한 사례를 보면 검드레산은 풍수지리 명당으로 인정받았든 모양입니다.

 

검드레산에서 광교산 시루봉을 오르는 산행객들에게 일종의 랜드마크인 이우성 선생 묘가 없어져 뭇 산행인들과 함께 의아해 하다 석운동 백헌(白軒) 선생 가족묘를 탐방하고 이장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외따로 떨어진 묘 관리하는 후손들 어려움을 배려한 듯합니다.

 

검드레산에서 명당 찾는 노력은 헛되지 않아 이우성 선생 아드님 이진망(李眞望)과 손자 이광덕(李匡德)은 양 대에 걸쳐 문형(文衡)이란 별칭으로 추앙받는 대제학(大提學) 자리에 오릅니다. 조선시대에는 대제학이 몇 명 배출 되었느냐가 명문가의 척도였습니다.

 

검드레산 이름 유래를 시작으로 아홉사리고개, 지석묘, 동천도서관, 여흥민씨사패정계(驪興閔氏賜牌定界) 표지석, 충정공 민영환 선생과 무아(無我) 정규성(丁奎成) 선생 초장지를 소개해왔으며 이번 이우성 선생 묘 이장 이야기로 검드레산 관련 글은 그만합니다.

 

→ 수지구 개발과정에서 향토사와 관련 없는 행복언덕쉼터라는 관제(官製) 이름이 붙은 검드레산을 신봉동 자이아파트 단지와 가까워 산행인들이 ‘신봉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일부 산행인들이 검드레산 위치를 말구리고개 근처 봉우리로 오인하는 점을  다시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우성 선생 묘터_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산 135-8

  이경석 선생 묘원_ 분당구 석운동 50-8번지

→  판교역 1번 출구 길건너 정류장(판교 북편) ~ 석운동 운행

     성남시 누리3번 버스 평일 약15분 간격

 

↓ 검드레산 정상: 

성지바위산 방향 230m 진행:

2025년 2월 현재 이우성 선생 묘 터:

봉분 없어지고 비석 석물만 남은 2023년 12월:

묘비석(2019년):

2019년. 현재는 아래 사진에 보이는 비석, 봉분, 석물 모두 없고 묘터만 남아:

석운동 이경석 선생 묘 입구 좌측방향 산 줄기 문중 묘로 이동(검드레산 이우성 묘 터~ 이경석 묘원: 직선거리 약6km):

이경석_ 병자호란에 인조(仁祖)가 무릎 꿇으며 모두들 비문 작성을 피하는 상황에서 "글 쓰는 법 배운 것이 후회스럽다."며 삼전도비(대청황제공덕비)를 떠맡아 지은분이 백헌(白軒) 선생. 북벌 계획하던 효종을 청나라가 체포하려하자, 임금대신 벌을 자청해 사형을 면하고 백마산성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는 곤욕을 치른 분:

백헌 이경석 선생묘: 

이경석 선생 후손 문중 묘는 맞은 편으로:

이경석 선생 아드님으로 이우성 선생 부친인 괴원(槐園) 이철영(李哲英 1613~1662) 선생 묘:

이철영 후손들은 발치에 유골정(亭)으로 배열<우측 화살표(검드레산에서 이장한 이우성 정)>:

좌단 이우성 정(亭):

이우성 우측 아드님 대제학 이진망:

이진망 우측 이우성 손자 대제학 이광덕:

검드레산(응달산 줄기에 가려있슴), 성지바위산, 광교산 시루봉 조망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