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뿌리여행 18

뿌리여행(18): 의령남씨, 문예의 대가

2023년 7월 20일부터 2024년 1월13일 6개월 간 용인시 박물관은 용인의 명가 시리즈 제1탄으로 ‘의령남씨, 문예의 대가’ 기획전을 열어 의령남씨 종중 소장품 등 유물 31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조선 개국공신 충경공 남재의 왕지, 강무공 남은의 유서, 약천 남구만 친필 시문과 초상화, 나비 그림의 1인자 일호 남계우 그림과 편지, 고전소설 옥루몽의 저자 남영로 시문 등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문화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령남씨 충경공 남재의 후손인 저 자신도 지금까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전시 유물들과 해설문을 둘러보며 알 수 있었습니다. 문충공 남구만이 몸소 그린 남씨(영양, 의령, 고성) 시조 영의공 남민 초상화도 처음 영접했습니다. 전시 주제는 용인지역 거주 인물들 ..

뿌리여행(17): 남재 공원

충경공(忠景公) 구정(龜亭) 남재(南在 1351~1419) 할아버지는 태조 이성계와 묘지로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갖고 있습니다. 아우님 강무공(剛武公) 남은(南誾 1354~1398)과 함께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개국을 도운 등등의 정사(正史)는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불암산(佛巖山 509.7m) 아래 화접리(花蝶里) 주을곡(注乙谷)에 위치한 구정(龜亭) 묘소는 태조 이성계가 원래 자신의 묘 터로 정했던 곳인데 당대의 대풍수지리사인 무학대사와 하륜의 말을 듣고 남재 조상님 당신의 묘역으로 정했던 동구릉과 맞바꾸게 된 것이라 합니다. 남양주문화원 전래지명 편에 주을동(注乙洞) 설명도 있습니다. *전설부분 요약: ‘동구릉에서 이태조의 하관 때 개국공신..

뿌리여행(16): 의령 남씨 관조 묘

신라 경덕왕 14년(755년) 당나라 사신으로 왜국(倭國) 항해에 나선 여남(汝南 중국 하남성 여남현) 출신 김충(金忠)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기착한 곳이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축산항 죽도(竹島)였습니다. 신라 땅에 정착한 김충은 경덕왕으로 부터 남(南)씨 성과 민(敏)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으시고 남민(南敏)으로 개명해 남씨 시조가 되십니다. 남민(南敏) 후손(後孫); 홍보(洪甫), 군보(君甫), 광보(匡甫) 3형제(兄弟) 중에 홍보(洪甫)는 영양(英陽), 군보(君甫)는 의령, 광보(匡甫)는 고성(固城)의 관향조가 되었습니다. 군보 조상님이 생존한 년대는 1230년에서 1310년으로 추정되며 묘소는 경남(慶南) 의령군(宜寧君) 의령읍(宜寧邑) 의병로 15동길 4-1이며. 좌우로는 의령향교와 의령군청이..

뿌리여행(15): 용인 소재, 국창공 남응운 전액

의령 남씨 11세 국창(菊窓) 남응운(南應雲 1509 중종4년~1587 선조20년) 할아버지 전액(篆額)이 포함된 정옥형 신도비와 허엽 신도비를 등산하다 우연히 접하였습니다. 창덕궁 서총대에 왕이 행차한 연회 장면을 그린 서총대친림사연도(瑞蔥臺親臨賜宴圖)의 주인공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전각예술(篆刻藝術)에도 능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국창공 전액 작품(作品)으로는 개성 서화담경덕비(徐花潭敬德碑), 운봉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장단 허종신도비(許琮神道碑), 화성 홍섬신도비(洪暹神道碑), 용인 정옥형(丁玉亨)과 허엽(許曄) 신도비(神道碑)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총독부에서 1919년 발간한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545개 비문에 서경덕 신도비, 허종 신도비, 허엽 신도비들이 수록되어있..

뿌리여행(14): 남씨 발상지 영덕 축산항

신라 경덕왕 14년(755년 당현종 천보14년) 당나라 사신으로 왜국(倭國) 가는 항해에 나선 여남(汝南 중국 하남성 여남현) 출신 김충(金忠)이 풍랑을 만나 표류하시다 구사일생 기착한 곳이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축산항 자그마한 섬인 죽도(竹島)였습니다. 신라 땅에 정착한 김충은 경덕왕으로 부터 남(南)씨 성과 민(敏)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으시고 남민(南敏)으로 개명하며 남씨들의 시조가 되십니다. 1200여년 지나 머리 허연 후손 하나가 경기도 용인시 수지에서 버스 타고 기차타고 또 버스 갈아타고 조상님 흔적을 찾아 왔습니다. 영덕군 강구역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내려 축산항(丑山港)으로 가는 영덕 블루로드(Blue Road) 길은 이름 그대로 버스 차창 밖으로 파란 바다와 하늘이 줄곧 이어지다 소 한 마..

뿌리여행(13): 영장산 넘어 직동 의령남씨 세거지

부드러운 흙산(肉山)인 영장산(靈長山 413.5m) 넘어 경기도 광주시 직동(直洞 곧은골) 의령남씨(宜寧 南氏) 세거지(世居地)와 묘원(墓園)을 초여름 가기 전 다시 한 번 참배하기 위해 분당 새마을연수원 입구에서 시작해 거북쉼터를 올랐습니다. 그늘 산길 1.34km를 36분 만에 쉼 없이 오르자 정상·직동·태재고개·새마을 연수원 갈림길 거북쉼터였습니다. 나무식탁에서 커피 한잔하고 직동으로 내려갈 계획이었으나 정상이 불과 0.3km인 이정표를 보니 2년 전 겨울 고교친구들과 함께한 정상을 다시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깔딱고개 하나 더 오르는 기분으로 정상을 오르니 압도적인 풍광 같은 건 없이 녹색 숲 사이로 분당이 살짝 보일 뿐입니다. 영장산은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 보는 것 보다는 새마을연수원 입..

뿌리여행(12): 북촌에서 아리랑고개 넘어 정릉 20리 길

1960년대 종로구 원서동 휘문 중고교(현재 계동 현대건설 자리)를 다닐 때 꽃피는 따뜻한 봄이나 하늘 높고 바람 소슬한 가을엔 방과후 성북구 정릉동 집 까지 곧잘 걷곤 하였습니다. 60년 가까운 그 시절엔 시발택시나 군용 짚들이 아주 가끔 먼지 날리며 지날 뿐이었고 한국이 산업화되기 전이라 미세먼지 같은 공해도 없어 8km 가까운 길을 쾌적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창덕궁 궁궐과 이웃한 고전적 분위기 빨간 벽돌 교사로 지은 북촌 휘문중고로 부터 당시 부촌인 혜화동 지나 아리랑고개를 넘으면 골골마다 맑은 물이 흐르고 밤이면 반딧불 형형한 북한산 자락 정릉 집 까지 세 개의 성격 다른 동내를 지나는 서울 속 20리 길 이었습니다. 관상감 관천대: 휘문중·고 은사이신 황진락 역사 선생님으로 부터 조선시대 천..

뿌리여행(11): 양평 종손 만남

‘뿌리여행(7)- 楊平●墨香’에서 ‘양평에서 조상님들의 묘소를 찾지 못한 것은 본인의 정성이 부족한 탓으로 여기기에 앞으로는 서두르지 않고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계속 찾는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라고 쓴 바 있습니다. 어느 여름 날엔 옥천면 용천리 산중에 의령 남씨 묵은 묘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산을 오르는 중 갑자기 퍼붓는 비로 내려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일념으로 어두운 사위, 잡풀로 덮이고 나무뿌리가 봉분으로 뻗어 내린 고묘(古墓)에서 고인이 혹시 내가 찾는 조상님이신지를 확인하기 위해 상석(床石) 글자를 확인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러한 담대함이 나왔는지 모르겠으며 본인의 뜻이 조상님들과 통했는지 양평으로의 아홉 번째 탐방에서 양평 선조님들을 모..

뿌리여행(10): 직산 산직말

2013년 여름 6대조 남이범(영암군수: 뿌리여행7)의 4남(막내)로 태어나신 5대조 ‘남일원’은 양평 고읍(古邑)에서 재당숙이 되시는 직산현(稷山縣) ‘남이욱’에게 로 출계(양자)하셨습니다. 직산에서도 그 후대에 또 한 차례 출계로 6대조에서 4대조 까지 연이은 3대 출계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고조할아버지만도 두 분이 되시니_ 양부계 고조부이신 남정보(규장각 검서관)와, 생부계 고조부 남정철(예안군수)로_ 부계중심의 남아선호사상에서 대를 잇기 위한 뿌리 깊은 관습과 8촌을 넘어 10촌까지도 한 가족으로 여기는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혈연관계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직산읍 상덕리(上德里) 증조부 묘는 수차례 드나들었지만 고조부님과 증조부님이 사셨던 직산 고을과 판정리(板井里) 산직말(山直村) 선영은 가본..

뿌리여행(9): 별내면 화접리 忠景公 南在

2013. 8. 충경공 남재 [忠景公 南在]_ 조선조 조상님들의 시작_ 1371년(공민왕 20) 진사시에 제5등으로 합격했다. 아우 은과 함께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이 개국되자 개국공신 1등에 녹훈되고, 1393년(태조 2) 주문사(奏聞使)가 되어 사이가 좋지 않던 조선과 명나라와의 외교관계를 개선하는데 기여하였다. 남재, 남은 형제는 같은 개국공신이면서도 태조의 왕위 계승권을 놓고 상반된 길을 걷게 된다. 남은은 방원, 정도전등과 함께 조선 개국의 중추 세력이었으나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과 함께 세자 방석의 편에 가담했다가 방원에게 살해당했다. 이로 인해 남재는 1차 왕자의 난 때 잠시 유배되었으나 방원의 굳건한 신임으로 풀려 나왔다. 참조_ 강무공(剛武公)남은(南誾)유서 분재기 http:/..

뿌리여행(8): 楊平●墨香

2013. 7 차남이신 6대조 할아버지(남이범, 영암군수)께서는 후손이 없으신 남기로(南綺老, 영조32년 문과 庭試합격, 교리) 9촌 재재당숙에게 출계(양자 가심)하셨기에 양평에서 참배해야 할 조상님들은 모두 네 분이십니다. 안성 남운로 할아버지(뿌리여행(4) - 성요셉의 집) 슬하를 떠나 양평으로 양자 가신 남이범 할아버지는 남취명(병조참판) 비롯 3대에 걸쳐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 네 형제를 얻는 복을 누리시며 3남 남성원(南性元)은 이조판서에 까지 올랐으나, 저의 직계 이신 4남 '남일원'을 직산(천안) 7촌 재당숙에게 또 다시 양자를 보내셨기에 이후로 양평에 자리 잡은 장남 후손들과 직산(천안)거주를 시작한 막내 집안은 차츰 단절이 되어 150여년 세월이 지나며 잊혀 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양평 조..

뿌리여행(7): 남이(南怡)장군 묘소 참배

2013. 7 남이(南怡)장군은 병조의랑 남경문(南景文, 뿌리여행(3) - 살고개 작은능)의 3남 의산위(宜山尉) 남휘(南暉_ 태종대왕의 넷째 딸 정선공주'貞善公主'와 결혼)의 장손자로 세종25년(1443) 에 태어나셨습니다. 남이장군의 공적과 26세(1468)에 억울하게 처형당한 사실은 그 자초지종을 한민족 모두가 아는 일이니 그 부분을 여기서는 생략 하겠으며, 원통한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민족의 한마음이 장군을 국민의 장군으로 승화 시켰습니다. 장군의 직계 후손은 없고 묘소는 경기도 화성군 비봉면 남전리 산 145번지에 있던 것을 숙종조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이 묘역을 정화한 이래 경남 창녕군 부곡면 일대에 살고 있던 장군의 아우인 남초(南怊)의 후손들이 후계를 이어오다가, 순조18년(1818년) ..

뿌리여행(6): 고난의 시대를 넘어

금년 봄 조선시대 조상님들 묘소를 찾아 참배를 시작 한 이후로 참으로 신기한 일들이 여러 번 생겼으며 그중 하나는 광주 직동(곧은골)을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남용우) 생전에 여러 조상님들 산소가 광주 한 곳에 계신단 말씀은 수차에 걸쳐 들었으나 이 무심 한 아들 녀석은 광주라는 단어 하나 만 머릿속에 담았을 뿐 이었습니다. 초봄 어느날 분당 율동공원 일장산 넘어 청백리 ‘고불 맹사성’과 그 어르신이 타고 다니셨다는 유명한 검은 소 무덤(흑기총)을 찾은 후, 하산 하다 우연히 마주 친 곳이 바로 직계 조상님들을 모신 제실이었고, 뿌리여행(5)에서 쓴 바와 같이 임진왜란 직전 국창공(남응운, 뿌리 여행2)의 2자인 도사공(남호) 할아버님이 식솔들을 인솔하여 난을 피해 들어 온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뿌리여행(5): 곧은골(直洞)

2013. 6 직계조상님들 연고지 한 곳은 ‘뿌리여행3’의 20대조 남경문(南景文)할아버지의 가천대역 묘소를 중심으로 펼쳐져 현재의 성남시 태평동, 신흥동, 수진동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손들의 일 지파인 14대조 ‘도사공 남호(開城都事公 南琥- 뿌리여행2_ 국창공 남응운의 二子)’ 할아버지가 현재의 경기도 광주시 직동(直洞, 곧은골)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것은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 직전이며, 이후 우리는 ‘의령남씨 부정공 도사공파(副正公 都事公派)’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갈마터널로 연결되지만 성남시 율동 공원 일장산 넘어 첩첩산중 산골인 점을 보아 당시 국제정세를 판단 미리 피난지를 택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은거(隱居)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전하여 도사공 남호의 사..

뿌리여행(4): 성요셉의 집

2016. 6 7대 조부님은 영조 22년(1746년)_ 제가 47년 생 이니 제가 태어나기 201년 전_ 39세 연세에 장원급제를 하신 남운로(南雲老)할아버지로, 영조41년 정조대왕이 세자(세손)시절 ‘세자시강원 보덕(輔德)’(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세자 전임 교수)을 임명 받으셨습니다. 할아버님은 두 형제분을 두셨는데 첫째 남이간, 둘째 남이범 으로 저 는 둘째 후손이고 남이범 할아버지는 양평 재당숙에게 출계(양자 간)후 200년 세월이 흐르며 양 형제간 후손 들은 8촌을 넘어 16촌이 지나다 보니 소식이 단절 되었으며, 족보에 기록된 ‘양성 가천(陽城 佳川)‘ 네 글자 만 으로 묘소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인터넷과 문헌을 통한 조사와 네 차례에 걸쳐 옛 가천에서 갈라진 ‘안성 원곡면’과 ‘평택 ..

뿌리여행(3): 살고개 작은능

2013. 6 아버지(남용우)께서 생전에 여러번 찾아 뵌 20대 조부 병조의랑 남경문(南景文)할아버지의 묘소는 분당선 가천대역 4번 출구로 나와 도보 3분 내 거리에 계셨기에 참배하기가 쉬었습니다. 남경문할아버지는 26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으나, 현숙한 부인이신 숙녕택주 온양방씨(淑寧宅主 溫陽方氏)할머니는 가난 속에서도 남지(충간공, 뿌리 여행1 에서 소개), 남간(직제학공_남효온 조부), 남휘(태종 부마_ 남이 장군 조부) 삼 형제를 키우셨습니다. 묘소는 살고개 ‘작은능’ 이라고 불렸으며 후손으로는 조선초 충간공 '남지'(뿌리여행1), '남이'장군을 비롯, 생육신 남효온, 조선중기 '남응운'(뿌리여행2), 인목대비의 폐위에 반대하다 파직되어 유배된 이조판서 남이공, 정묘호란시 안주성에서 항복을..

뿌리여행(2): 서총대친림사연도(瑞蔥臺親臨賜宴圖)

2013. 5 15세전 조상이신 '국창공 남응운'할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대전 유성구 대동에 다녀왔습니다. 신탄진역에서 타야할 직행버스(1일 5회 운행)를 간발의 차이로 놓친 탓에 대전 봉산동 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묘소에 이르는 10리 이상 길을 걸었습니다. 묘소 참배 후 산소에서 내려오다가 종손(68세)을 우연히 만난 것은 행운 이었습니다. 고양이 손도 빌리고 싶은 모내기 철 농번기 와중에도 집에 가서 식사하자는 제의, 마을 족제로 하여금 봉고차로 대전 까지 태워 주는 등 진솔한 호의에 고마울 뿐 이었습니다. 대전 외진 곳에서 농업을 하시면서도 대종회에 관심을 갖고 여타 남씨 세거지에서 발생 하는 일들도 소상히 알고 계셔_ 잘 하는 건 받아들이고, 잘 못 된 건 타산지석으로 삼는 지혜와 결단을 발휘 ..

뿌리여행(1): 진천 이치(梨峙, 배티)

2013. 5 아버지(남용우)께서는 생전에 의령 남씨대종회에 가입하셔서 대종회 신문도 구독하시고, 종친회 회원님들과 함께 조상님들 묘소들을 찾아뵙고 족보, 가승보 라든가 선조님들이 쓰신 유고집들을 소중히 챙기셔서 보여주시거나 영인본들을 애써 구입하셔서 주시곤 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족보에 기재된 벼슬을 비롯 여러 사실이 쉽게 믿겨 지지도 않았으며 그 보다는 하루하루 생활에 바뻐 크게 관심을 두지도 못했다고 변명하고 싶으나, 그당시 아버지의 뜻을 깊이 새기지 못했으니 생각할수록 못난 아들 놈 이었습니다. 올 초 어느 날 산행을 하다가 아주 우연히 조상님 한분 묘소를 마주치게 되었고 귀가해서 가승보를 뒤져보니 비석에 기재 사항과 내용이 정확히 일치 하는 것 이었기에 늦게 나마 깨닮음이 온, 그 이후로부터 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