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뿌리여행

뿌리여행(9): 별내면 화접리 忠景公 南在

맑은공기n 2017. 1. 3. 18:53

2013. 8. 

 

충경공 남재 [忠景公 南在]_ 조선조 조상님들의 시작_  

1371년(공민왕 20) 진사시에 제5등으로 합격했다. 아우 은과 함께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이 개국되자 개국공신 1등에 녹훈되고, 1393년(태조 2) 주문사(奏聞使)가 되어 사이가 좋지 않던 조선과 명나라와의 외교관계를 개선하는데 기여하였다.

 

남재, 남은 형제는 같은 개국공신이면서도 태조의 왕위 계승권을 놓고 상반된 길을 걷게 된다. 남은은 방원, 정도전등과 함께 조선 개국의 중추 세력이었으나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과 함께 세자 방석의 편에 가담했다가 방원에게 살해당했다. 이로 인해 남재는 1차 왕자의 난 때 잠시 유배되었으나 방원의 굳건한 신임으로 풀려 나왔다.

참조_ 강무공(剛武公)남은(南誾)유서 분재기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33003&cid=828&categoryId=828        

 

1396년 도병마사로 김사형(金士衡)과 이키도(壹岐島)·대마도를 정벌했으니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에 앞섰다.  하륜(河崙)과 함께 ≪고려사≫를 개수했으며 수문전대제학 겸 세자부(修文殿大提學兼世子傅)가 되었고 1416년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1419년 12월 14일에 별세하시니 나라에서 조회(朝會)와 저자를 정지하고 부의를 내리고 세종이 직접 조문하였다. 

 
성품이 활달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마음가짐을 지극히 삼가면서, 문장이 평정(平正)하고 아름다웠으며, 산술에 두루 통해 누구도 풀 수 없는 것을 풀어내었으므로, 세상에서 그를 ‘남산(南算)’이라고 불렀다. 조선 태조의 묘정(廟庭)에 추가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구정유고 龜亭遺稿≫가 있으며,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이상 참조_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추신: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 ‘충경공 묘역’은 경기도 문화재 자료로 여러 풍수사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그 내용과 주장을 다 믿을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상당한 흥미를 끌기에 두 편을 링크로 소개 올립니다.

1)구정 남재묘: 참살이 풍수연구소 http://cafe.naver.com/ro425kr/158

2)불암산과 의령남씨 남재의 가문: [김규순의 풍수 이야기]  월간 사람과 산 2012년 4월 호

                                            http://cafe.naver.com/interroot/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