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뿌리여행

뿌리여행(8): 楊平●墨香

맑은공기n 2017. 1. 2. 17:37

2013. 7  

 

차남이신 6대조 할아버지(남이범, 영암군수)께서는 후손이 없으신 남기로(南綺老, 영조32년 문과 庭試합격, 교리) 9촌 재재당숙에게 출계(양자 가심)하셨기에 양평에서 참배해야 할 조상님들은 모두 네 분이십니다.

 

안성 남운로 할아버지(뿌리여행(4) - 성요셉의 집) 슬하를 떠나 양평으로 양자 가신 남이범 할아버지는 남취명(병조참판) 비롯 3대에 걸쳐 자손이 귀한 집안에서 네 형제를 얻는 복을 누리시며 3남 남성원(南性元)은 이조판서에 까지 올랐으나, 저의 직계 이신 4남 '남일원'을 직산(천안) 7촌 재당숙에게 또 다시 양자를 보내셨기에 이후로 양평에 자리 잡은 장남 후손들과 직산(천안)거주를 시작한 막내 집안은 차츰 단절이 되어 150여년 세월이 지나며 잊혀 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양평 조상님들 산소를 찾기 위해 현재 거주지인 용인 수지에서 양평으로 드나드는 것은 전철과, 버스 등 교통이 잘 발달된 오늘 날 에도 꼬박 왕복 6시간 이상 걸리는 큰 일 이니 북한강, 남한강 큰 강물로 둘러싸여 변변한 다리 하나 제대로 없는 조선후기 양평과 직산(천안)간 친척들이 산 넘어 걷고 개울을 만나 짚신 벗어 들고 또 걷고, 나루터에서 사공이 노 젖는 나룻배 타고 도강해야하는 지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150~200여년에 걸쳐 쌓이며 왕래가 끈긴 것 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양평에서 참배해야할 조상님들:

 1)남취명(南就明)_ 현종조 출생, 묘:양근 고읍(古邑) 안산당(安山堂)

 2)남태계(南泰堦)_ 숙종조 출생,묘:양근 줄포(.浦)                       

 3)남기로(南綺老)_ 영조조 출생, 묘:양근 덕고곡(德古谷)

 4)남이범(南履範)_ 영조조 출생, 묘:양근 고읍 안산당

 

양평 문화관광과 이강웅 학예사, 이승수 님의 도움으로 고읍 안산당이 현재 양평군 ‘옥천면 건지산 일대’, 덕고곡은 오빈리 ‘덕구실’임을 알게 되어 지금까지 모두 7회에 걸쳐 찾아 나섰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오빈리 덕구실 일대는 일제하 경원선 철도를 개설하며 1차 훼손 되었고, 최근에는 전원주택바람으로 옛날 명당 묘 자리로 쓰였을 좌청룡우백호 배산임수(남한강 조망)터들은 고급 전원주택이 들어차고 있었습니다.

 

고읍(옥천면) 안산당을 찾기 위해 오빈리, 국수리, 아신리, 신원리 일대와 더 나아가서 양서면 부용리 까지 찾았으나 허사였지만, 남취명 할아버지의 아우님이신 남근명 의빈도사(南近明, 儀賓都事)의 종손_ 옥천리 거주 ‘남호현’님을 다행스럽게 만났고, 방계손인 서울 거주 ‘남기호’님과의 전화 통화로 그분들의 직계 조상님들(즉, 남취명 할아버지 아우님 및 조카분들)묘소는 6.25 전쟁 중 민족이 겪은 수난과 비극이 종손 ‘남호현’님 일가에게도 몰려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일어 버리는 등 가슴 아픈 사연과 그 후 양평개발 등으로 화장 처리 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저의 직계이신 남취명 할아버지 종손 집안에도 일어나 묘지들이 이미 정리 되었고 종손들도 고읍(옥천면)을 떠났을지 모르지만 이를 단정 할 수 있는 증거나 증언도 없고, 양평에서 조상님들의 묘소를 찾지 못한 것은 본인의 정성이 부족한 탓으로 여기기에 앞으로는 서두르지 않고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계속 찾는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그래도 기쁘고 보람 있었던 것은 양평 할아버님들 묘소를 찾는 중에 조상님들이 살짝 비추어주신 은은한 묵향(墨香)과 체취를 서찰, 한시,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정약용의 어사보고서등을 통해 접할 수 있었기에 소개 올립니다.

 

말년에 다산 정약용에 심취하시여 조안 능내리 다산 묘소도 참배하시고 황인경 ‘소설 목민심서’를 읽으시며 정약용이 18년 유배생활에서 풀리는 대목에서는 ‘약용 풀림'이라고 덧쓰시며 몰입 하셨든 아버지(남용우)에게 다산 정약용선생의 경기암행어사계(京畿暗行御史啓)중 6대조 할아버지 남이범 마전군수(南履範, 麻田郡守) 평 부분을 삼가 올립니다.

 

도움을 주신 양평문화 관광과 이승수님, 이강웅 학예사님, 옥천면장님(성함 모름), 부천문화원 원장 박형재님, 횡성문화원 원장 김승수 형제님들, 옥천리 종손 남호현님, 오빈리 전이장님 부자분(성함들 모름), 아신리 노인회장님(아신리역 부근 거주, 성함 모름), 국수리 남기홍님, 부용리 남백호님에게 감사드립니다.  

 

_ 하단 자료 출처:

  1) 한시 전문: http://cafe.daum.net/joo3287/1jhI/52284?docid=2331887964&q=%BE%C6%B1%E2%B8%A6%20%C0%D2%B0%ED&re=1

  2) 경기암행어사계 전문: http://sambolove.blog.me/150101202857

  3) 남태계 과거 및 관직: 한국학중앙연구회 http://koreandb.nate.com/history/bang/detail?sn=8918

  4)남기로 과거 및 관직: 한국학중앙연구회 http://koreandb.nate.com/history/bang/detail?sn=9661

 

-   2013. 11월 19일 대전거주 남윤중님(50세) 께서 '.포'자 앞 한자는 씨(줄)로, '줄포양근'으로  읽는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관심과 가르침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 남윤중님에게서 받은 글                                          

대부님께 드립니다. 얕은 상식을 드러내는  것 같아 한없이 브끄럽고 죄송한 마음 입니다.  아울러 지난번 말씀 하셨던 줄포 의미도  검색한 바, 줄풀이 있는 습지의 포구마을에 해당하는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