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봄 조선시대 조상님들 묘소를 찾아 참배를 시작 한 이후로 참으로 신기한 일들이 여러 번 생겼으며 그중 하나는 광주 직동(곧은골)을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남용우) 생전에 여러 조상님들 산소가 광주 한 곳에 계신단 말씀은 수차에 걸쳐 들었으나 이 무심 한 아들 녀석은 광주라는 단어 하나 만 머릿속에 담았을 뿐 이었습니다.
초봄 어느날 분당 율동공원 일장산 넘어 청백리 ‘고불 맹사성’과 그 어르신이 타고 다니셨다는 유명한 검은 소 무덤(흑기총)을 찾은 후, 하산 하다 우연히 마주 친 곳이 바로 직계 조상님들을 모신 제실이었고, 뿌리여행(5)에서 쓴 바와 같이 임진왜란 직전 국창공(남응운, 뿌리 여행2)의 2자인 도사공(남호) 할아버님이 식솔들을 인솔하여 난을 피해 들어 온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광주문화원 광주의 역사에서 소개 하듯이 곧은골(직동)은 첩첩산중 외진 피난지 골짜기 마을로 요즘에도 버스가 들어온다지만 그나마도 한 시간 에서 두 시간 간격으로 들어오기에, 기다리기 싫으면 반시간은 걸어 나가야 광주 시청과 성남시를 연결 하는 버스를 탈수 있는 곳입니다.
부녀자와 어린이들에겐 안전한 곳이긴 했지만 논 하나 밭 하나 없는 곳이었으니 조상님들이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거치며 겪었을 고생이 눈에 선합니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했을 고난 속에서도 그곳에 자리 잡은 할아버님들은 13세 남이신(병조참판), 남이공(이조판서)으로부터 14세 남두첨(호조참의), 15세 창명공 남선(南翧, 경상감사), 16세 남익훈(호조참판, 玉樓夢의 작자라는 설이 있음,가톨릭 성인 남종삼 6대조), 남치훈(형조참판)형제분들, 17세 남취명(도승지, 병조참판, 양근 고읍으로 이전), 19세 남운로(정조대왕 세자시강원 보덕)까지 과거시험에 많은 분들이 급제하시어 설화 속 주인공으로도 등장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할아버지 조상님들에게서 본 귀중한 덕목은 청렴 했었다는 사후 평판과 함께 국가 위기 속에서 안주 하지 않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 순국 3일 후에도 남은 왜적들과 전투 중 적탄을 맞고 전사하신 남유(南瑜 나주목사)장군에 이어, 병자호란시 남두첨(南斗瞻 충주목사, 호조참의) 은 인근 뜻 있는 백성들을 규합 남한산성에 들어가 신경진(申景禛)장군과 함께 동문첩(東門堞)을 수비하다 청병(淸兵)들이 밤에 문을 침범할 때 크게 좌절 시켰다고 합니다.
장자 계승의 풍습에 따라 곧은골(직동)을 지켜 오신 저의 직계 조상님들은 차남으로 태어나신 7대조 남운로 할아버지(뿌리여행4_성 요셉의 집)가 안성으로 이전 하시면서 곧은골과 작별을 하였고, 창명공 남선(南翧)의 5자 남오훈(南五熏, 慶尙道觀察使) 후손인 전국무총리 남덕우님은 조상님들이 곧은골을 떠난 이후 인근 광주시 삼동에 정착하셨으며 ‘의령남씨 대종회장“으로도 봉사 하셨습니다.
끝으로 남이신(호, 직곡=곧은골), 남선(창명공) 할아버님들의 과거와 관련된 설화를 댓글 링크로 소개하오니 큰 의미는 두지 마시고 여름밤 옛날 이야기처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2013. 6
부첨 자료_
남이신(南以信)과 임형리(任刑吏):
남선(南翧) 세친구의 꿈:
한국학 중영연구원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 대전 거주 '남윤중'님이 전화를 주어 바로 잡도록 도와 주셨기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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