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7대 조부님은 영조 22년(1746년)_ 제가 47년 생 이니 제가 태어나기 201년 전_ 39세 연세에 장원급제를 하신 남운로(南雲老)할아버지로, 영조41년 정조대왕이 세자(세손)시절 ‘세자시강원 보덕(輔德)’(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세자 전임 교수)을 임명 받으셨습니다.
할아버님은 두 형제분을 두셨는데 첫째 남이간, 둘째 남이범 으로 저 는 둘째 후손이고 남이범 할아버지는 양평 재당숙에게 출계(양자 간)후 200년 세월이 흐르며 양 형제간 후손 들은 8촌을 넘어 16촌이 지나다 보니 소식이 단절 되었으며, 족보에 기록된 ‘양성 가천(陽城 佳川)‘ 네 글자 만 으로 묘소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인터넷과 문헌을 통한 조사와 네 차례에 걸쳐 옛 가천에서 갈라진 ‘안성 원곡면’과 ‘평택 죽백동’ 현지 답사를 통해 안성시 ‘원곡면 내가천리(內加川里)’ 마을 한편_ 소담한 남향받이에 자리잡은 ‘성요셉의 집’ 터가 그 구기(舊基)이며 할아버지는 뒷동산에 안장 되었든 것으로 추정 되었습니다.
증언과 구전에 따르면 묘소는 종손이 50 여 년 전 선산 매각과 함께 화장 하였으며, 집터(舊基)는 독실한 가톨릭 성도인 평택 부호께서 선산과 함께 구입, 가톨릭 재단에 기증하여 농아장애 어르신 공동쉼터로 운용되고 있었습니다.
7대조 남운로 할아버지 묘소는 세월 의 부침과 함께 사라졌지만, 할아버지께서 200년 전 가천에 자리 잡으셨기에 그 터가 온전히 농아장애 어르신들을 위한 쉼터로 사용 되고 있으니, 정조대왕 에게 가르침을 주시던 곧은 선비정신은 오늘날에도 계승되어 살아 있다고 생각 되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처음 접촉했던 내가천리 전 이장 ‘남자현’님의 아우 ‘남종현’님을 만난 극적인 과정 이었습니다. 5월 중순경 처음 만난 남자현님(69세)에게 아우분이 계신 줄 도 몰랐는데 ‘가천’이라는 지명을 재확인 하는 중 6월 10일 4촌 아우 남기우(쌍용 자동차 전상무)로 부터 평택 남씨 집성촌 가천(佳川) 출신 이라고 소개 받은 남종현님(60세, 쌍룡자동차 전부장)이 알고 보니 남자현님의 친 아우님 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의 힘이 작용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남종현님으로 부터 ‘가천(佳川)' 한자가 현재 지역 명칭으로 사용되는 가천(加川)’과는 다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현지 고향 한자 표기로 佳川과 加川을 같이 사용 하였다는 증언과, 저와 같은 의령남씨,도사공,창명공파라고 알려줌으로써 묘소와 구기(舊基) 에 관한 최종 확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3.1 운동의 자부심으로 도약하는 원곡면 내가천리’ 라는 제목의 기사를 2년 전 써 추적의 단초를 얻게 해준 ‘자치 안성신문, 봉원학’ 기자님, 내가천리 전 이장 ‘남자현, 남종현 형제분님들, 안성 문화관광과 ’홍원의‘ 학예연구사님, 원곡면 김현정 직원님, 원곡파출소 나이 지긋하신 소장님(경위, 성함 모름), 성요셉의 집 여직원님, 안성 원곡면 과 평택 죽백동 부동산 중개업소 사장님들, 새터마을(신기리)에서 만난 60세 전후의 마을 터줏대감님, 세종실록과 승정원일기를 통한 고증을 인도 해준 김원석군 등등의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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