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뿌리여행

뿌리여행(7): 남이(南怡)장군 묘소 참배

맑은공기n 2017. 1. 2. 16:19

2013. 7  

 

남이(南怡)장군은 병조의랑 남경문(南景文, 뿌리여행(3) - 살고개 작은능)의 3남 의산위(宜山尉) 남휘(南暉_ 태종대왕의 넷째 딸 정선공주'貞善公主'와 결혼)의 장손자로 세종25년(1443) 에 태어나셨습니다.

 

남이장군의 공적과 26세(1468)에 억울하게 처형당한 사실은 그 자초지종을 한민족 모두가 아는 일이니 그 부분을 여기서는 생략 하겠으며, 원통한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민족의 한마음이 장군을 국민의 장군으로 승화 시켰습니다.

 

장군의 직계 후손은 없고 묘소는 경기도 화성군 비봉면 남전리 산 145번지에 있던 것을 숙종조 영의정 남구만(南九萬)이 묘역을 정화한 이래 경남 창녕군 부곡면 일대에 살고 있던 장군의 아우인 남초(南怊)의 후손들이 후계를 이어오다가, 순조18년(1818년) 우의정 남공철(公徹)의 상소로 억울한 누명이 벗겨져, 모든 관작이 복구되고 무인 최고의 영예인 충무공(忠武公)시호를 받게 됨으로써 장군의 충절은 빛나게 되었습니다.

 

남전리는 남이장군의 외가인 남양 홍씨의 세거지로 장군의 시신은 외가 사람들에 의해 수습되어 남전리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며, 역적으로 몰려 비운의 생애를 끝내셨기에 그 묘를 350여년 오랜 기간 공식적으로 밝힐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여기저기 남이 장군의 허묘가 생겨나게 된 큰 원인 이었지만, 비봉면 남전리 묘만을 의령남씨 대종회와 함께 의산위공파(宜山尉公派)는 남이장군 부부 참묘(眞墓)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20대 직계 조상님이신 랑공 남경문 할아버지(뿌리여행(3) - 살고개 작은능)의 '장남'이신 충간공 남지(뿌리 여행(1)- 진천 이치(梨峙, 배티)의 후손이며, 남이장군은 의랑공의 '3남' 의산위(宜山尉) 남휘(南暉_ 태종의 부마)의 장손자 이시니 의랑공 남경문을 한 뿌리 조상님으로 모시게 됩니다.

 

남이장군 의 시 북정가(北征歌):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磨刀盡)

두만강파음마무(頭滿江波飮馬無)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남아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칭하랴

 

북청비 출처: 한국민족 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cid=1592&docId=533009&mobile&categoryId=1592

 

부첨자료:

아버지는 의산군(宜山君) 휘(暉), 어머니는 정선공주(貞善公主 : 태종의 4녀)라고 많이 알려져 있으나, 의령남씨 대종회에는 의산군(宜山君) 휘(暉)와  정선공주(貞善公主) 첫 손자(장손)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태종대왕의 외증손자 입니다.

 

장군의 출생년도 세종25년(1443)근거:

의령남씨 대종회 홈페이지 http://www.euiryungnam.kr/xe/people1/1071/page/2

'공(公)은 태종(太宗)의 부마(駙馬 사위) 의산위(宜山尉) 휘(諱)는 휘(暉)요 시소간공(謚昭簡公)의 장남(長男)이신 군수 휘분공(郡守 諱份公)의 장자(長子)로 세종 25년(世宗二十五年 一四四三)에 출생하셨으니 정선공주(貞善公主)의 장손(長孫)이오 태종대왕(太宗大王)의 외징손(外曾孫)이시다.'

 

'조선실록(朝鮮實錄)에 「年纔二十六誠可惜也」(나이 겨우 스물여섯 참으로 아깝다)라고 최후에 하신 말씀이 적혀 있고 계씨(季氏) 군수(郡守) 소(怊)공의 유서(遺書)나 이조판서(吏曹判書) 허전(許傳) 공이 찬(撰)한 남이장군행장(南怡將軍行狀)에도 다 26세'

 

69번 도로 화성시 남전리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