霞村 南龍祐 隨筆 10

霞村 隨筆(10) 해바라기

해바라기글  남용우1960. 09  『틈만 있으면 나는 조그만 시집(詩集)을 끼고 정릉 산골짜기로 나간다. 나에겐 이보다 더 즐거운 휴식이 없다. 그러나 미아리 고개를 넘어 정릉 쪽으로 꼬부라지자 버스기 유난히 까불거린다. 나는 늘 여기를 지날 때면 눈쌀이 찌프려진다. 도로가 잘 닦여 있지 않아 차가 까부는 것쯤은 괜찮다. 차가 지날 적마다 일어나는 먼지로 차 속에서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금방 지나가면 그만이라고 하더라도, 그 길가에 사는 사람들은 허구한 날 그 먼지를 어떻게 감당해 나가는지 남의 일이지만 딱한 노릇이다. 지붕엔 하얗게 먼지가 쌓여 있다. 판장도 대문도 하얀 먼지로 덮여 있다. 그래도 애들은 이 먼지 속에서 다름없이 놀고 있다. 그런데 내가 여기를 지날 적마다 ..

霞村 隨筆(9) 마비된 五月의 感覺

마비된 五月의 感覺 글 남용우 1961. 05. 09 詩人들은 五月을 新綠의 季節이니, 가슴 부풀어 오르는 소녀의 季節이니 하며 찬양해왔다. 의당히 五月은 우리들에게 希望을 실어다 주는 季節이어야 할 것이다. 五月과 더불어 무엇인지 내일의 期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五月은 너무나도 메말라 期約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얼마 안 되는 金權의 구멍을 찾아 머리를 싸매고 싸우기만 하고 있는 정치가들, 그저 둥글둥글 살아가가고 不正을 보고도 말 한 마디 못 하는 교육자들, 모든 부드러움을 잃어버려 아이들처럼 짜증만 내는 어머니들. 理由있는 反抗과 理由없는 反抗이 혼동되어 잘하나 못하나 아주 버림을 받고 있는 어린아이들! 이렇듯 우리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五月의 風景은 슬프기만 하다...

霞村 隨筆(8) 나라사랑

나라사랑 글 남용우 1960 · 4 요사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낮추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걸핏하면 『그거 엽전이니까 할 수 없지!』 또는 『한국 사람이 별 수 있나!』하고 스스로 우리 자신 위에 좋지 못한 낙인(烙印)을 찍으려 한다. 이웃나라 일본 사람들이 이라는 말을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 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는 말을 들어도 의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리를 낮추어 보는 습성에 젖은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모든 좋은 점은 다 제쳐놓고 어느 민족에게도 있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결점만 들추어 보는 것이다.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물(事物)이 있을 수 없듯이, 전혀 힘이 없는 민족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霞村 隨筆(7) 애제상(愛弟想)

愛弟想 글 남용우 1958 · 3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三년이다. 三년 동안 모셔온 고연을 없앨 때는 마치 아버지를 또 다시 잃는 것같이 서러웠다. 시골에 모신 산소에도 다녀왔다. 아버지 삼년상을 끝마치고, 나는 새삼스럽게 형제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알았다. 사실 동생들의 힘이 없었다면 나 혼자 아버지 돌아가신 후의 장례, 소상, 대상이라는 큰일을 어떻게 처리해낼 수 있었을는지, 아마도 제대로 예를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 꼴이 기가 막혔을 게라 .....,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산으로 모실 때까지 집에 와서 밤을 새 준 사람들도 동생의 친구들이요..., 산소로 갈 때 지프차와 트럭을 넉넉히 주선한 것도 네 동생이요, 소상 대상 때 차를 얻어 우리 삼형제가 산에 갈 수 있게 한 것도 네 동생의 ..

霞村 隨筆(6) 쿠오바디스와 그 周邊

쿠오바디스와 그 周邊 글 남용우 1970. 2. 8 어쩌다가 구미소설(歐美小說)의 번역을 시작하게 되어, 맨 먼저 낸 미국 단편소설 번역집 를 필두로 최근에 낸 워싱턴 어빙의 까지 이럭저럭 一O여 권의 책을 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폴란드의 작가 헨릭 센켸비쯔(Henryk Sienkeevicz)가 쓴 大作 의 번역이다. 원작이 발표된 지 六四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나온 완역본(完譯本)이었다는 점도 있지만, 난생 처음으로 三천 七백 매라는 나에겐 엄청나게 많은 매수의 원고를 다루어 본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 고등학교 三학년 담임을 하면서 이 번역을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사정을 아는 분은 짐작이 갈 것이다. 결국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내가 그 때 살던 집..

霞村 隨筆(5) 성하(盛夏)의 산정(山情)

성하(盛夏)의 산정(山情) 1963. 9. 10 하촌(霞村) 남용우(南龍祐) 아내와 함께 回龍寺를 찾기로 한 것은 여름방학이 거진 다 지나고 개학을 며칠 앞둔 무렵이었다. 여름방학 내내 거의 매일 학교에 나가 살았다. 변화의 맛이 없고 같은 일을 자꾸만 되풀이해야 하는 원고정리엔 역시 제일 좋은 곳이 학교다. 넓직한 곳이라 시원할 뿐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학교라는 데에 배어 있는 그 배움의 분위기에 젖을 수 있으며, 또한 내가 집에 있으면 그러지 않아도 좁은 집의 안방 하나를 혼자서 차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집을 나옴으로써 방 하나가 빌 것이요, 따라서 집안 식구들이 좀 널찍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고, 무더운 여름에 사람 하나의 체온을 줄이는 것만도 가족들의 보다 나은 여름 생활을 위하여 적지 않은..

霞村 隨筆(4) 크리스마스 카드와 육군 중위

글 남용우 1959. 3 우리 집 맨 끝의 놈에게 나는 「아름다운 세금장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아침마다 내가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서면, 그는 꼭 문간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안녕!」을 하고서는 뭔가를 기대하는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그럼 나는 이 안녕 값으로 10원을 주어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길을 막고 삐쭉이고, 마침내는 그의 최대의 무기인 울음이 터져 나오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제부터는 안녕을 안 하겠다는 위협이다. 매일 아침마다 10원씩 정기적으로 받아가니 「세금장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이요, 세금장이 쳐놓곤 그리 미운 세금장이가 아니므로 그 뒤에다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준 것이다. 이 세금장이 꼬마가 크리스마스 카드 덕택으로 육군 중위가 된 이야기를 소개하련..

霞村 隨筆(3) 하촌(霞村)이라는 아호(雅號)

글 남용우 1963. 10. 내 주변의 친구들이 한두 사람씩 아호(雅號)를 지어가고 있다. 정한숙(鄭漢淑) 兄은 벌써부터 일오(一悟)라는 아호를 쓰고 있으며, 안춘근(安春根) 兄도 남애(南涯)라고 아호를 정했다. 은근히 나도 뭔가 아호를 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을 보면 아호의 정의가 ⸢예술가의 호(號)로 문예적으로 쓴 것⸥이라고 나와 있다. 이 정의의 내용이 다소 미흡한 듯 생각된다. 내 생각으론 아호란 예술이건 학문이건 농사일이건 어느 경지에 다다르고 인간적으로서도 俗과 衆을 넘어선 분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둘째로 아호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山水와 淸風明月을 詩歌로 읊을 줄 알고, 무엇보다도 斗酒不辭의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거나하게 술이 취해 서..

霞村 隨筆(2) 효자송(孝子頌)

孝 子 頌 하촌(霞村) 남용우(南龍祐) 1972. 7. 17 사람은 무서운 存在인보다. 내가 어찌 뻔뻔스럽게 내 정신으로 이 글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이기 너무나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금과 바꿀소냐 옥과 바꿀소냐 하고 사랑하던 나의 막내아들 基伯이가 작년 여름 바다에 놀러 간다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지가 오늘로써 꼭 358일째가 되니, 며칠이 지나면 벌써 一년이 된다. 팽개쳐 놓아도 雜草처럼 잘 자란 그의 세 형들을 보고, 또한 그가 말띠 태생이라 머릿속에 늘 영리하고 잘 달리는 白馬를 연상하며 그를 생각하고는 마음을 탁 놓은 내가 잘못이었다. 누가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운명의 신(神) 모이라이는 복병을 하고 숨어 있다가 내가 방심한 이 틈을 타서 우리 기백(基伯)이를 데려가고 만 것..

霞村 隨筆(1) 귀한미소

귀한 미소 하촌(霞村) 남용우(南龍祐) 1957. 9 나의 생활에 피곤을 느낄 때가 있다. 사실 짜증이 날 때도 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내가 하는 일이 정말 보람 있는 일인가 혼자 생각해 보는 경우도 있다. 도대체 우리 한국 사람들은 외국어를 배우느라고 볼장을 다 보는가 싶다. 외국어 공부에 귀중한 시간의 거의 전부를 소비하니, 언제 남들과 같이 진보된 학문 연구를 할 수 있느냐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교실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늘 「제런드」니 「인피니티브」니 하며 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내 자신이 서글프게만 생각된다. 학생들의 눈동자들이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아 무척 괴롭다. 「영어는 선진국가 사람들의 말이니까 우리가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배워야지… 영어는 세계 공통어가 되다시피 한 말이야. 그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