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弟想
글 남용우
1958 · 3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三년이다. 三년 동안 모셔온 고연을 없앨 때는 마치 아버지를 또 다시 잃는 것같이 서러웠다. 시골에 모신 산소에도 다녀왔다. 아버지 삼년상을 끝마치고, 나는 새삼스럽게 형제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알았다.
사실 동생들의 힘이 없었다면 나 혼자 아버지 돌아가신 후의 장례, 소상, 대상이라는 큰일을 어떻게 처리해낼 수 있었을는지, 아마도 제대로 예를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 꼴이 기가 막혔을 게라 .....,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산으로 모실 때까지 집에 와서 밤을 새 준 사람들도 동생의 친구들이요..., 산소로 갈 때 지프차와 트럭을 넉넉히 주선한 것도 네 동생이요, 소상 대상 때 차를 얻어 우리 삼형제가 산에 갈 수 있게 한 것도 네 동생의 힘이었다. 이 밖에도 그 공로를 모두 여기에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누가 판단하더라도 지난 三년 간의 집에 대한 공로를 따져서 우리 집안 식구 한 사람을 골라 훈장을 준다면 그 훈장을 받을 사람은 마땅히 내 가운데 동생 鳳佑다.
나와 내 동생 鳳佑는 두 살 차이다. 어렸을 땐 서로 싸움깨나 하고 자랐다. 우리는 형제인 동시에 좋은 싸움동무이기도 하였다. 학교에서 드물게 형제가 나란히 상을 받은 때도 있었지만 나란히 벌을 받은 적이 더 많았다. 지금 같으면 <형제는 용감하였다>라고 영화 제목을 빌어서 별명을 붙일 수 있을 만큼 우리는 터무니없는 용감한 짓을 하기도 했다. 내 동생은 무엇이든지 나보다 잘 했다. 운동회 때는 혼자 상을 너무 많이 타서 빈손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오는 내가 안 됐는지, 흰 종이로 싸고 그 위에다 학교 도장을 찍은 몇 권의 잡기장을 나에게 준 일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제법 어깨를 흔들며 집으로 왔던 것이다.
생각하면 어렸을 적부터 나는 동생을 한 번도 도와 줘 본 일이 없다. 며칠 전 영국작가 조셉 콘래드의 단편 초호(礁湖)를 일고,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토인 형제가 있었는데 형이 그 부락 추장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다. 추장의 눈을 속이는 불의의 사랑이다. 마침내 형은 추장의 아내와 함께 도망을 계획한다. 동생의 힘을 얻어 형은 여자와 함께 초호를 다라 배를 타고 도망하는 것이다. 동생은 힘이 지칠 때까지 노를 저어 준다. 그러나 중도에서 그들은 추장의 병사에게 발각된다. 아우는 형과 그의 애인을 먼저 도망시키고 추장의 병사들과 싸우다가 드디어 생명을 잃는다. 몇 해 후 어느 날 형은 이 때 자기가 동생을 사지에 남겨 놓고 자기만 살아남은 것을 뉘우치며 운다.
『우리는 한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동생을 적병 가운데다 버려 놓고 왔다. 나는 죽어야 마땅한 놈이다.』
이렇게 말하며 통곡을 하는 것이다.
내가 이 장면을 읽고 얼굴이 뜨거워진 데는 이유가 있다. 국민학교 五학년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내 동생은 三학년이었다. 한 동네에 딱부리라고 하는 아주 주먹이 센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그 때 六학년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녀석이 내 동생을 꼭 때려 줘야겠다는 것이다. 그리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목에서 내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저 내 동생이 딴 길로 해서 무사히 집으로 가기만 바라고 있었다. 이 때 저기서 내 동생이 이편으로 오고 있지 않은가! 딱부리는 두 말도 하지 않고 내 동생을 쓰러뜨려 놓고 막 때리는 것이었다. 바보 같은 이 형은 이 때 그냥 질려서 집으로 뺑소니를 치고 만 것이다. 지금도 가끔 이 생각을 하면 나는 어느 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진다.
허나 이것도 이젠 옛날이야기 .... 그 후 세월은 덧없이 흘러, 지금은 보고픈 딱부리도 전라도 도청인가 어디에서 관리로 있다가 六·二五 때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우리 형제는 벌써 서른이 넘어 각각 몇 아이들의 아버지까지 되고 있다. 막내 동생 鶴祐는 얼마 전 군에서 제대하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三년이다.
나는 가끔 동생들과의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형제가 화목하고, 친구 사이에 두터운 우정이 있고,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힘껏 사랑해주고, 국민이 서로 도울 줄 알 때에 그 나라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ㅡ 1958 · 3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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