霞村 南龍祐 隨筆

霞村 隨筆(8) 나라사랑

맑은공기n 2022. 3. 30. 14:31

 

                                                               나라사랑

 

글  남용우

1960 · 4

 

 요사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면 아마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낮추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걸핏하면 그거 엽전이니까 할 수 없지!또는 한국 사람이 별 수 있나!하고 스스로 우리 자신 위에 좋지 못한 낙인(烙印)을 찍으려 한다.

 이웃나라 일본 사람들이 <코리언 타임>이라는 말을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는 말을 들어도 의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리를 낮추어 보는 습성에 젖은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모든 좋은 점은 다 제쳐놓고 어느 민족에게도 있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결점만 들추어 보는 것이다.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물(事物)이 있을 수 없듯이, 전혀 힘이 없는 민족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아름다운 마음과 아름다운 습관을 지닌 민족이 또 어디 있을까! 우리처럼 아름다운 강산을 가진 나라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자식을 위해 자기네들의 모든 향락을 희생하는 부모들, 또 부모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자녀들을 나는 많이 보았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타고난 천성이다. 우리는 이 희생 속에서 끝없는 행복을 느낀다. 그 뿐인가. 우리 민족처럼 형제 사이의 우애가 두터운 민족은 없을 것이다. 1945년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남양이니 중국이니 일제 군대로 끌려갔던 한국 청년들이 귀한 할 때, 돌아올 아우를 마중하려고 석 달 동안 헛걸음을 치면서 매일같이 정거장에 나가는 형을 나는 보았다. 비오는 날이나 바람이 부는 날이나, 그는 동생의 안전한 귀국을 빌면서 매일 O리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이다. 플래트폼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동생을 찾지 못한 그는 어깨가 축 늘어져 거의 울다시피 하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머리 위에 족두리를 올리고 양쪽 뺨과 이마에 연지 곤지를 찍고 색색이 예복을 입고서 혼례를 올린 다음, 그날 밤 자기 집에서 첫날을 치르고, 새신랑을 따라 낯 설은 시집으로 가는 언니의 모습이 멀리 고개 너머로 사라지자, 어머니를 붙잡고 흐느껴 우는 동생을 나는 보았다. 이 흐느낌 속에는 언니의 행복의 길을 축하하는 마음과, 같이 웃고 같이 울며 자란 언니와의 헤어짐을 서러워하는 마음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이 밖에 친구를 위해 자기를 버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 개인의 이익보다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살려 하며, 따뜻한 인정을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

 六·二五 사변 중 군에 있을 때였다. 어느 외국인 장교가 참으로 감탄하였다는 듯 나에게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가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야!

 그의 말에 의하면 자기 주변에 있는 한국 사람들은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또 결혼을 한 사람이건 아직 미혼인 사람이건 말끝마다 자기네 집을 그리워하고 걱정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집을 그리워하고 걱정하는 것은 우리의 가정이 그지없이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즐거운 가정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풍속을 지니고 살고 있는 것이다. 정월 초하루 설날엔 때때옷을 입은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고, 집집마다 그 형편에 따라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을 위한 차례를 올린다. 그리고 제비가 강남에서 돌아온다는 . 대문 앞에 등을 달고 축하하는 석가모니의 탄생일인 . 젊은 색시들이 치렁치렁 검은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그네를 타고 남자들이 씨름판에서 기운 자랑을 하는 월 단오(端午). 이어 유월에 들어서면 창포(菖蒲) 물로 머리를 씻는 유월 보름 유두(流頭) 날이 있다. 그리곤 견우와 직녀의 두 별이 년에 한번 오작교(烏鵲橋)에서 만난다는 칠월 칠석과, 사람마다 조상의 산소를 살피고 팔월 보름달 밑에서 추수를 감사하는 추석 명절이 있지 않은가. 이처럼 우리에겐 추운 겨울을 빼놓고 달마다 서로 화목하고 즐길 수 있는 명절이 있다. 우리의 몸속에는 원래 평화를 사랑하고 서로 돕는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잘 하는 점만 보아도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다.

 태평양지구 여러 나라의 역사, 풍속 등에 관해서 글을 많이 쓴 미국인 작가 제임즈 미치너 (James A. Michener)는 한국 사람은 선천적으로 음악의 소질을 타고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고유의 아악(雅樂)을 평해서, 비길 바 없는 훌륭한 음악이며, 그 풍부한 소리와 감정의 복잡성에 있어 유럽 최고의 음악과 비길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아시아 음악이다라고 말했다. 흉악하고 난폭한 민족은 우리의 음악처럼 깨끗하고 애처로운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푸른 눈의 외국 사람들과 같이 한국의 고전 음악을 듣고 고전 춤을 본 일이 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중 어떤 여자가 나에게 물은 것이다.

 

 『당신은 그런 음악을 좋아하십니까?

 나는 서슴치 않고 대답했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랑합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 우리의 아름다운 역사 속을 해매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이 아름다운 민족과 강산을 상징해 주는 음악입니다.

 

 물론 우리는 케케묵은 옛날 역사만 가지고 비분강개(悲憤慷慨)하거나 호언장담하는 버릇은 삼가해야한다. 오늘의 우리나라는 어제의 우리나라보다 더 발전한 나라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자랑할 만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의 이 미풍양속(美風良俗)을 버려 가면서 까지 외국 것을 따를 수는 없다.

 

 아름다운금수강산과 사랑스러운 국민성!

 나는 요새 조상이 묻힌 이 땅, 내가 생을 받은 이 나라와 사랑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 강산, 포옹도 해 주고 입도 맞춰 주고 싶다.

 

                                                                                                       — 끝 

               

 

→ 글 쓰신 1960년은 대한민국이 최악의 상황에서 4·19 혁명이 발생한 해입니다. 그 다음 해엔 5·16이 발생했습니다.

→ 온 국민이 힘든 시기에. 선친도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62년 전 한국인의 음악 소질을  언급하셨습니다.

   생존하셔서 BTS의 세계적 열풍을 보셨으면 좋아하시고, 아마도 BTS의 대표곡 하나인 BUTTER를 부르셨을 겁니다.

   음악을 좋아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