霞村 南龍祐 隨筆

霞村 隨筆(6) 쿠오바디스와 그 周邊

맑은공기n 2022. 3. 1. 16:21

 

 

                                                                    쿠오바디스와 그 周邊

 

글  남용우

1970. 2. 8  

 

어쩌다가 구미소설(歐美小說)의 번역을 시작하게 되어, 맨 먼저 낸 미국 단편소설 번역집 <국화(菊花)>를 필두로 최근에 낸 워싱턴 어빙의 <스케치북>까지 이럭저럭 O여 권의 책을 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이 폴란드의 작가 헨릭 센켸비쯔(Henryk Sienkeevicz)가 쓴 大作 <쿠오바디스>의 번역이다.

 

원작이 발표된 지 六四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나온 완역본(完譯本)이었다는 점도 있지만, 난생 처음으로 백 매라는 나에겐 엄청나게 많은 매수의 원고를 다루어 본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 고등학교 학년 담임을 하면서 이 번역을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사정을 아는 분은 짐작이 갈 것이다. 결국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 내가 그 때 살던 집이 밤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켜놓고 일을 해야만 했다. 가물거리는 촛불 아래서 약 년 동안 원고를 쓰다 보니 눈까지 나빠졌거니와,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일이 즐겁기 한량없다. 그 후 벌써 十二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마냥 즐겁기만 했던 그 때를 회상하며 여기에 명작 <쿠오바디스>와 그 周邊 이야기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개 다음과 같다.

 

이야기는 청년 호민관(護民官) 뷔니큐스가 싸움터에서 돌아와 그의 외삼촌 페트로뉴스(네로의 측근 신하의 한 사람이며 당대의 풍류남아)를 찾는 데서 시작된다. 페트로뉴스의 저택과 생활양식은 호사스럽기 그지없다. 여기서 뷔니큐스는 자기가 부상을 당하고 잠깐 쉬고 있었던 老將軍 아울루스 집에서 만난 볼모로 와있는 리지아 나라의 공주 리지아에 대한 사랑을 페트로뉴스에게 고백하고, 리지아를 자기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한다. 오월화(五月花)같이 아름다운 리지아에게 완전히 혼을 빼앗겼다고 말하는 것이다.

페트로뉴스는 우선 리지아를 아울루스 집에서 빼내어 네로의 궁정으로 불러들인다. 황제 네로의 명령으로 뷔니큐스로 하여금 볼모 리지아의 관리인이 되게 하여 그의 사랑을 이루게 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리지아는 뷔니큐스의 집으로 오게 된 날 밤, 몸종 우르서스의 황소 같은 힘과 기독교도들의 도움으로 어디론지 탈출해 버린다. 실망에 빠진 뷔니큐스는 전력을 다하여 리지아를 찾는다.

이러는 동안 그들은 리지아가 기독교 신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리지아가 땅위에다 물고기의 그림을 그린 일이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자의 표시였던 것 이다. 로마의 온 신자들이 모여 使徒 베드로의 설교를 듣는 오스트리아눔 묘소에서 마침내 리지아를 찾는다.

뷔니큐스는 힘센 종 크로톤의 힘으로 리지아를 약탈하려 했으나, 도리어 크로톤은 우르서스에게 죽게 되며, 부상을 입어 실신한 뷔니큐스는 리지아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고 리지아의 보호를 받게 된다.

여기에 며칠 머무르는 동안 뷔니큐스는, 자기 생모를 살해하고, 이복형을 죽이고, 正妃 오크타비아를 동맥을 끊어 죽게 한 네로 세상의 온갖 추악의 상징인 네로의 세계와 너무나도 대조적인 기독교 세계를 알게 되어 자기도 모르게 믿는 사람이 되고 만다.

한편 로마의 <異敎徒>청년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리지아는 다시 뷔니큐스 앞에서 행방을 감춘다. 자기 집으로 돌아온 뷔니큐스는 자포자기에 빠져 궁중의 호탕한 생활 속으로 다시 뛰어 들어가 본다. 그러면서도 그는 신자들에게 가서 자유롭게 고민을 털어놓는 입장이 된다. 마침내 두 남녀는 많은 신자들 앞에서 약혼까지 하게 되고, 청년은 완전히 믿는 사람이 된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모든 노예를 해방시켜준다. 이때 큰 일이 벌어진다.

네로가 뷔니큐스 등 조신(朝臣)들을 거느리고 안튬에 가서 비파를 타며 를 읊고 있을 때, 로마에 큰 불이 났다는 전갈이 오는 것이다. 실은 <트로이의 노래>라는 를 한번 실감나게 지어 보려고 네로가 명령하여 로마를 불타게 한 것이다.

뷔니큐스는 모든 고생 끝에 리지아를 찾아, 이 아비규환 속에서 드디어 정식 세례를 받는다.

조정에서는 뷔니큐스를 탐내는 나마지 나머지 기독교도을 미워하게 된 황후 폼페아의 의견으로 모든 책임을 신자들에게 돌려, 그들에게 말할 수 없는 박해를 시작한다. 리지아와 우르서스도 로마 관헌(官憲)에 잡히는 몸이 된다.

기독교 신자들을 사자의 밥으로!

거리에서 무지한 군중들이 외친다. 뷔니큐스는 물 쓰듯 돈을 써가며 리지아를 구출하려고 했으나 허사로 끝난다. 투기장(鬪技場)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주께서 다스리신다!라는 찬송가를 부르며 태연히 맹수들의 밥이 된다. 다행히도 리지아는 첫째 둘째 집단에서 빠져 며칠이나마 죽음의 날이 연기된다.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힌 리지아를 보기 위해 뷔니큐스는 간수를 매수하여 변장을 하고 들어간다. 이 때 리지아는 처음으로 뷔니큐스에게, 나는 당신의 아내라는 말을 한다. 금원(禁苑)에서의 화형장(火刑場)에서도 신자들은 태연히 죽어간다. 리지아를 벌거벗겨 황소의 두 뿔 사이에 잡아매어 죽이려던 네로의 계획이 우르서스가 황소의 뿔을 뽑아 실현되지 못한다. 우르서스가 황소를 쓰러뜨리는 순간, 투기장에 모인 민중이 모두 리지아의 구명을 외치고 일어난다.

네로는 마지못해 리지아의 구명을 허가했으며, 뷔니큐스는 곧 리지아를 데리고 시칠리로 가 평화로룬 나날을 보낸다. 페트로뉴스는 이어 네로의 명령에 따라 애인 에우니케와 함께 한 몸이 되어 풍류남아다운 죽음을 한다. 드디어 고울 군단(軍團)의 반란이 일어난다. 네로도 아아 위대한 예술가의 죽음이란 이런 것인가!하며 단도로 자기 목을 찔러 자결한다. 로마의 이 마침내 그 숨을 거둔 것이다.

 

대략 이상과 같은 줄거리이거니와, 센켸비쯔가 一八九六년에 발표하고, 이로 인해 그가 一九O년에 노벨 文學賞까지받은 바 있는 이 소설은 그 제명(題名)부터가 특이하다. 요즘 시중의 우리들 대화 속에서도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뜻으로 쿠오바디스라는 말을 흔히 쓰고 있는데, 이 말의 연유는 다음과 같다.

사도 베드로가 폭군 네로의 박해에 못 이겨 로마를 떠나 도피의 길을 거닐고 있을 때, 에피안 國道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쿠오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물으니, 구세주는 이 물음에 또다시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로마에 가는도다. 그대가 나의 어린 양을 져버렸으니...라고 대답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소설의 이름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다.

 

센켸비쯔의 명성은 역시 그의 역사소설에서 유래한다. 그는 一八七O년대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그의 조국이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삼국공동분할(三國共同分轄)에서 해방되기 년 전인 一九一六년 그가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그의 조국의 해방이야말로 그가 평생을 통하여 꿈꾸고 갈망하던 것이었으나, 원통하게도 그는 이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작가로서의 그의 성공적인 절정 시점은 十八년 동안 계속된다. 이 동안 그는 그의 가장 유명한 역사소설을 O편이나 썼다. 그 중 <쿠오바디스>는 특히 심혈을 기울어 쓴 것이며, 이 속의 어떤 부분은 서른 번이나 고쳐 썼다고 한다.

그 당시 폴란드는 강한 이웃나라들의 침략으로 영토는 셋으로 분할되고 있었는데도, 귀족들은 여러 파로 갈라져 서로 한몫 보기에 바빴다. 이러한 절망에 빠진 폴란드 사람들이 희망을 붙일 수 있는 것은 미술과 문학 밖에 없었다. 이렇게 절망에 빠진 동료들을, 비범한 영웅적인 전례(前例)나 정의의 승리를 보여 줌으로서, 격려하고 고무하기 위하여 쓴 작품이 바로 <쿠오바디스>.

센켸비쯔는 로마를 잘 알고 있었다. <쿠오바디스>를 쓰기 위하여 그는 여러 번 로마에 가서, 손에 역사책을 들고 로마와 로마평야를 거닐곤 했다. 차츰 구상이 무르익어갈 무렵, 그는 어느 날 그의 가까운 친구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모든 것은 다 결정되었다, 이제는 어디서 이 이야기를 시작할 것인가만 결정하면 된다. 베드로 성당에서 시작할 것인가? 아니 처음부터 <쿠오바디스>란 말을 설명하고 들어갈까? 아니면 알반동산에서 시작할 것인가?

우리는 <쿠오바디스>를 통하여 젊은이들의 정열적인 낭만, 네로 시대의 화려한 궁정생활, 기독교 신자들의 엄숙한 순교 장면들을 볼 수 있으며, 등장하는 인물만도 백명이 넘어 어떠한 서양 역사소설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규모가 크다. 그러나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즉 타락과 추악의 상징인 로마의 <異敎徒>들과 독실한 기독교신자이며 가난한 서민들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전자를 대표하는 것이 네로요, 후자를 대표하는 것이 리지아이며, 전자로 태어났다가 후자로 바뀌어 지는 사람이 이 소설의 청년 주인공 뷔니큐스다.

 

페트로뉴스가 목욕 후의 휴식을 즐기고 있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때 그의 생질인 청년장군 뷔니큐스가 찾아와, 아울루스 장군 집에 볼모로 와 있는 리지아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리지아의 본명은 칼리나이지만 리지아 사람이라고 해서 리지아라고 불려진다. 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역사상의 실제 인물인데, 이 두 사람 즉 뷔니큐스와 리지아 만은 작가의 공상으로 이루어진 인물이다.

뷔니큐스는 순수한 로마의 군인이며, 리지아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가지가지의 파란곡절이 있은 후, 뷔니큐스의 로마정신이 리지아의 기독교정신에 감화되고, 마침내 두 사람의 사랑이 열매를 맺어 결혼을 하게 된다. 이 두 사람은 두 사조(思潮)의 대립, 항쟁 그리고 통일을 상징한다.

이 밖의 중요한 인물로는 기독교를 대표하여 성서에서 낯익은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한 많은 신자들이 등장하고, 또 문학작품에 흔히 나타나는 네로의 전 총히(寵姬) 액테, 리지아의 보호자인 괴력무쌍한 우르서스 등이 있다.

우르서스는 리지아와 같은 종족 사람으로 리지아의 충실한 몸종으로 나오는데, 센켸비쯔는 우르서스를 통해 폴란드 농민의 기질을 상징하고 있다. 희랍사조를 대표하는 사람으로는 궁정에서 페트로뉴스와 세력다툼을 하는 간신 티케리네스, 철학자 세네카, 시인 루칸 그리고 네로의 폼페아가 있다. 또한 한사코 폐트로뉴스를 사랑하고, 사랑을 위해 살고, 사랑을 위해서 죽겠다는 순낭만적(純浪漫的)인 여인 에우니케가 나온다.

가장 흥미있는 인물은 거리의 철학자 킬로인데, 그는 처음엔 희랍사조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나타났다가 나중엔 기독교신자가 되어 생애를 마친다. 우리는 처음엔 미소로서, 중간쯤에선 증오로써, 나중에는 존경하는 나머지 머리를 숙여 절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를 대하게 된다.

이 소설에는 원래 <네로의 시대 이야기>라는 부제(副題)가 붙어 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네로가 진시황(秦始皇)의 몇 갑절 되는 사상 최악의 폭군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센켸비쯔는 그를 천하의 바보천치, 희극배우로 묘사하여 우리를 웃겨준다.

네로는 이 작품에서 타락한 헤브라이즘(Hebraism)의 상징 - 즉 권력욕, 야만, 광대, 음탕의 뒤범벅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물질의 힘을 상징하는 <異敎徒>의 세계는 마침내 오직 정신의 힘만을 상징하는 기독교세계 앞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센켸비쯔가 세상을 떠난 지 五四년이 된 지금 폴란드는 또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공산당들의 빨간 구두에 짓밟히고 있다. 폴란드 사람들은 지금도 자기네 조국의 문호(文豪)가 쓴 이 웅장한 소설 <쿠오바디스>를 읽고 있는지, 읽고 있다면 언제 궐기하여 공산무리를 물리칠는지, 자못 궁금한 바 있다.

 

                                                                           ㅡ 1970 · 2 · 8

 

** 한국전쟁 후 극악한 전력사정으로 촛불 아래 영어판(英語版) 펴 놓으시고 번역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 1959년 번역 초판본 표지_ 출처: 을유문화사www.eulyoo.co.kr/

 

1979년 신장본/을유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