霞村 南龍祐 隨筆

霞村 隨筆(3) 하촌(霞村)이라는 아호(雅號)

맑은공기n 2018. 12. 17. 12:25

글   남용우

1963. 10.

 

 내 주변의 친구들이 한두 사람씩 아호(雅號)를 지어가고 있다. 정한숙(鄭漢淑) 은 벌써부터 일오(一悟)라는 아호를 쓰고 있으며, 안춘근(安春根) 도 남애(南涯)라고 아호를 정했다. 은근히 나도 뭔가 아호를 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을 보면 아호의 정의가 예술가의 호()로 문예적으로 쓴 것이라고 나와 있다. 이 정의의 내용이 다소 미흡한 듯 생각된다. 내 생각으론 아호란 예술이건 학문이건 농사일이건 어느 경지에 다다르고 인간적으로서도 을 넘어선 분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둘째로 아호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山水淸風明月詩歌로 읊을 줄 알고, 무엇보다도 斗酒不辭의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거나하게 술이 취해 서로 아호를 불러가며 詩歌를 읊어야 격에 맞는다. 셋째로 아호는 아호 임자의 인간을 상징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고 보면 나에겐 아호를 가질 만한 자격이 하나도 갖추어져 있지 않다. 어느 경지에 다다른 학문이 없으며, 을 넘어선 인간성이 있는 것도 아니요, 斗酒不辭酒仙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途上에 있는 중이라 생각하고 아무튼 뭔가 하나를 정해 보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아호는 그 임자의 인간을 상징해 주는 것이다. 一悟라는 아호에서 우리는 재주 있고 氣槪가 넘치는 젊은 학자를 연상하고, 南涯라는 아호에선 깊고 깊은 강원도 어느 산골 개울에 흐르는 맑고 깨끗한 물이 머리에 떠오른다. 俞鎭午 선생님의 玄民이라는 아호를 대하면 망또를 걸치고 깊은 생각에 잠긴 청년 수재가 연상되고, 가람이라는 이병기(李秉岐) 선생님의 아호를 대하면 조용히 흐르는 강가에 피어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난초가 머리에 떠오른다.

 

  어렸을 때 先親께서 나의 호를 북명(北溟)이라 지었다고 하시며 뭔가 조그마한 책을 보여 주신 일이 생각났으나, 그 연유를 영 여쭈어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천연스러운 북쪽 바다>라는 뜻 속의 이 내포하고 있는 좀 으스스한 기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것은 따로 두고 뭔가 하나를 정해 봐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몇 분의 아호를 생각해 보았다. <허무혼(虛無魂)의 선언><아시아의 밤>등의 시편을 발표하고 동양적인 고담(枯淡) ()의 경지에 이르렀던 詩人 오상순(吳相淳) 선생님의 아호 공초(空超)는 정말 그 분에게 어울리는 아호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꽁초>라고 발음이 되면 퍽으나 愛煙家였던 그 분의 또 다른 일면을 나태내기도 하는 것이다. 나의 고등학교 선배님이 되시는 국문학자 서명호(徐明浩) 선생님의 아호 행인(行人)도 운치 있는 아호였다. 성이 씨가 되므로 徐行人 하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인생을 살아간다는 뜻이 되니 그 분의 생활철학과 잘 어울린다.

 

  몇몇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웬일인지 (아지랑이 하) 가 마음에 든다고 하니까, 그 중 한 친구가, 그것이 바로 박술음(朴術音) 博士의 취하(醉霞)라는 아호의 霞字인데 자네는 선생님의 제자가 되는 동시에 인촌(仁村) 선생님의 제자도 되니 仁村 선생님의 村字를 따서 하촌(霞村)이라고 하게나, 함으로 霞村이라고 결정된 것이다. 

 

  이래서 霞村이라는 아호를 얻게 되었는데, 꺼림직 한 것은 두 스승의 아호 중에서 한 자씩 딴 것은 좋다고 하더라도 어느 분에게서나 승낙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선생님의 사랑만 믿고 그대로 쓰고 있다. 이 이야기를 行人 선배님께 했더니, 한번 껄껄 웃으시면서, 다음과 같은 漢詩를 지어 아호 풀이를 해주셨다.

 

南風解凍淸流邊  남풍이 불어 얼음 녹은 맑은 시냇가에

淡霞常在綠樹村  고운 아지랑이가 항상 푸르고 평화로운 마을을 감싸 준다

 

  이런 경유로 나는 어느 모로나 나에게 과분한 霞村이라는 호를 쓰고 있는 것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