霞村 南龍祐 隨筆

霞村 隨筆(2) 효자송(孝子頌)

맑은공기n 2018. 11. 16. 18:35

 

 

 

                                                                            孝  子  頌 

하촌(霞村) 남용우(南龍祐)  

1972. 7. 17            

 

  사람은 무서운 存在인보다. 내가 어찌 뻔뻔스럽게 내 정신으로 이 글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이기 너무나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금과 바꿀소냐 옥과 바꿀소냐 하고 사랑하던 나의 막내아들 基伯이가 작년 여름 바다에 놀러 간다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지가 오늘로써 꼭 358일째가 되니, 며칠이 지나면 벌써 년이 된다.

 

  팽개쳐 놓아도 雜草처럼 잘 자란 그의 세 형들을 보고, 또한 그가 말띠 태생이라 머릿속에 늘 영리하고 잘 달리는 白馬를 연상하며 그를 생각하고는 마음을 탁 놓은 내가 잘못이었다. 누가 꿈엔들 생각했겠는가! 운명의 신() 모이라이는 복병을 하고 숨어 있다가 내가 방심한 이 틈을 타서 우리 기백(基伯)이를 데려가고 만 것이다.

 

  잊지도 못할 1971726일 오후, 이 바보 등산 같은 애비는 아무것도 모르고 방안에 누워 쉬고 있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의 벨 소리! 어느 公務를 맡으신 분의 침착한 목소리였다.

너무 놀라지 마십쇼. 이왕 이렇게 된 거댁의 자제가 邊山해수욕장에서 놀다가…』

눈앞이 캄캄해자고 온 몽에서 힘이 빠지고 목소리가 떨려 더 대화를 계속할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했다.

 

  그렇지만 어찌하랴! 이것은 꿈이 아니고 내 앞에 닥친 현실인 것이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새파랗게 된 아내와 함께 邊山으로 내려갔다. 너무나도 단정적인 연락이라 한 가닥의 희망도 가질 여지가 없었으나 그래도 무슨 기적(奇蹟)을 바라면서 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現地에 닿은 것이 오전 한 시였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해수욕객들의 캠프가 환하게 불이 켜져 마치 어느 도시의 번화가와도 같았다. 연락은 사실이었다. 여덟 명의 아이들이 바다에서 놀다 세 아이가 실수를 했는데, 基伯이가 그 중의 한아이라는 이야기였다. 해양 훈련단원들의 고마운 수고로 基伯이는 벌써 육지에 나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扶安에서 邊山까지 오는 그 사이에 저의 온 힘을 기울여 마중을 나온 것이다. 이 순간 내가 쓰러지지 않고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다. 바닷물도 다름없이 쏴쏴 물을 치고 있었다.

 

  그날 동이 트자 나의 두아우 내외가 내려왔고, 곧 이어 학교에서 전일성 선생님이 내려오셨다. 오후 늦게야 全州에 도착해서,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일가친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든 의식을 갖추고 우리는 基伯이와 이 땅 위에서의 마지막 이별을 한 것이다.

 

  이리하여 1954106일 이 세상에 태어난 基伯이는 부모와 형들, 스승, 친구들 그리고 일가친척 어른들의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을 받는 속에 깨끗하고 명예롭게 살다가 1971726일 열여덟이라는 꽃 같은 나이에 그의 그 淸雅한 사랑과 사람은 누구나 한 번 가야 한다는 고귀하고도 진실을 남기고 부르심에 따라 흔연히 이 세상을 떠나 새 을 찾아간 것이다.

모두가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런 기막힌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으며, 그래도 地球는 여전히 돌아 낮이 되고 밤이되고 얼마 있다 가을이 되더니, 겨울과 봄이 지나 이제 다시 그 여름이 된 것이다.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의식을 읽고 있다가 다시 깨어난 사람, 강한 철봉으로 머리를 얻어맞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난 사람이 꼭 지금의 나와 같은 모양일 것이다. 아니, 정말 그랬더라도 그 편이 이보다는 몇 천 배 몇 만 배 나을 것이다.

 

  세상에 제 자식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자식을 잃고 비통해 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 세상에 가장 확실한 일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누구나 을 박은 사람은 오느 때인가 한 번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基伯이가 아버지에게 가르쳐 준 뼈에 사무치는 절대적인 眞理이다. 이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끔 같은 일을 겼은 분들의 소식을 듣거나 읽게 되는 것이다. 이제 나는 그 분들의 심정을 알겠다. 가슴을 찢는 듯한 그 슬픔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얼굴을, 나만이 슬프고 남들은 슬프지 않다는 투로 쓰고 싶지 않다. 貧富의 차이도 없고 地位의 높고 낮음도 없다. 다 마찬가지다. 그 분들과 똑같은 念願으로 이 글을 적는 것이다.

 

  생각하면 18년 동안 基伯이와 함께 있을 때가 내겐 가장 행복하고 뿌듯한 시절이었다. 사람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있을까!  基伯이는 나의 빛이요 행복과 기쁨의 샘이었다. 나의 힘의 원천이었다. 基伯이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슬픔도 괴로움도 몰랐다. 쑥쑥 자라라, 基伯! 나는 모든 을 여기에서 찾고 내 나름으론 곁눈질 없이 내가 맡은 일 해 왔다. 우리는 같이 자고 같이 공부하고 같이 학교에 가고 같이 노래를 부르고 같이 스포츠 구경을 다니면서 낮과 맘을 보냈다.

  자라면서 점점 단정해가는 얼굴, 똑 바른 걸음걸이, 맑고 다정한 목소리게다가 누구보다도 正義를 사랑하고 不正을 미워하던 소년이면서, 몸이 불편한 친구의 가방을 솔선해서 날라다 주는 면도 있었다. 아름다운 것에 끝없는 찬사를 보내고 추한 것은 되도록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까 基伯이는 우리 아들로 태어남으로써 이미 부모에게 를 했다. 우리에게 절정의 기쁨을 주고 뿌듯한 즐거움을 줌으로써 孝道를 했다. 유난히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르던 基伯이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걱정을 끼친 일이 없었다. 그가 풍긴 것은 훈훈한 봄기운이요, 따뜻한 사랑의 和氣뿐이었다. 基伯이는 이 훈훈한 봄기운과 따뜻한 사랑의 和氣로 누구에도 못지않은 孝道를 한 것이다.    

 

  중1 때 영어를 가르쳐 주신 박인식 선생님은 수업시간 중 교실에 앉아 있는 基伯이를 보면, 그 단정한 모습이 꼭 육군사관학교 학생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2 基伯이가 학년 전체에서 실력고사 1등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의 담임 정재일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남 선생님, 한 턱을 하셔야죠. 基伯이가 전체에서 1등을 했어요, 일등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남기백이!하며 基伯이는 좋아했다. 1 때 담임을 해 주신 이창극 선생님은 한번 이런 말씀을 하셨다. 基伯이라, 참 이름이 좋거든. 고놈 정말 미남이란 말이야!2때 영독을 가르쳐 주신 이한규 선생님은 基伯이가 영어 글을 읽을 때는 정말 귀엽기 그지없어요.라고 말씀하셨다. 명완이 어머니께서는 基伯이를 보시더니 대뜸 아휴, 똑똑하게도 생겼다!고 말씀하셨다. 생각하면 모두가 즐거운 추억뿐이다. 이런 말씀들을 들었을 때, 나는 꼭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 황홀한 기쁨에 빠지곤 했다.

 

  이렇듯 착하고 어질고 孝道만 한 孝子 基伯이에게 아버지로서 나는 무엇을 해주었는가? 넉넉하게 보살펴 주지 못하고, 남과 같이 넓은 마당에서 활개를 치며 맘껏 뛰어놀게 해 주지 못하고, 너그러움과 슬기로움과 용기의 모범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 때는 이래야 하고 저 때는 이래야 했을 것을.....가슴이 쪼개질 듯 후회되는 일이 한두 가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제 다 부질없는 이야기 基伯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거역할 수 없는 부르심에 따라 용감히 새 을 찾아간 것이다.

 

  잘못은 내게 있었다. 그 머나먼 邊山이 어디라고 그냥 가게 내버려 두었는지 모르겠다. 신중한 아버지라면 미리 그 장소를 답사하고 어디가 위험하고 어디는 안전하니 이런저런 곳엔 절대로 가지 말라고 주의를 했을 것이다. 그 전해 충남 어딘가 바닷가에 무사히 다녀온 것만 믿고 상식적인 주의만 주고 가게 했으니, 나는 천 번 만 번 엎드려 하늘 앞에 용서를 빌어도 소용이 없는 큰 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여름 방학이 가까이 다가온 714일쯤 되었을까. 밤낮으로 공부하느라 애를 쓰니, 방학이 되면 어딘가 한번 가서 모든 피로를 풀고 돌아와 새 기분으로 공부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3이 되면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하면서. 어찌하여 邊山으로 결정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저희들 친구끼리 이야기가 되어 결정된 모양이다. 이 때에야 나는 지도를 펴 보고 邊山이 어디 있는 곳인지를 알았다. 그러나 邊山이면 어떻고 江陵이면 어떻고 白頭山이면 어떠랴. 어딜 가든 우리 基伯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아니 무슨 일이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720일에 <휘문신문>이 나왔는데, 基伯이의 글이 실려 있었다. 아버지는 이제 基伯이가 자라서 글을 써서 발표까지 하게 되었구나 하고 마냥 흐뭇했다. 이 때 발표된 基伯이의 글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落    照

                                                                             고2    남  기  백 

     

 『시선이 꽂히는 언덕아래에는 부산함이 마치 생동 그것인양 아니 거리와 인간이 존재하면 그 모든 것이 자기의 영역인양 활개를 치고 있다. 마치 뱀의 허리같이 꿈틀대고 뱀의 잔등 모양으로 온갖 유혹에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꿈틀거리는 육신과 온갖 변형의 의미는 그날 기분 상황에 따라 유효 적절히 변하여 내 눈에 비치는 것 같다. 그것이 흡사 뱀 그 자체의 모양과 걸맞게 뒤바뀐다는 말이 맞을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뱀 속 생활의 기억을 헤집을 때 이 단 편적 기억은 무서운 공포를 유발시킨다. 차츰 차츰 배불러오는 풍선 모양으로 부풀어 오른다. 무서워 무서워 그만 소리 낼 듯이 하여 두 눈을 감아 버린다. 왜냐구눈방울에 귀져오는 뱀의 잔등에 반항감을 느꼈으나 나에게 돌을 잡을 힘이 없었기에, 아니 십여 년 살며 일순도 느껴보지 못했고 용기조차 가지려고 큰 숨 한 번 수어 본적이 있어야지 말이다.

 

  무서운 공상은 더욱 시각을 거부한 채 커져만 간다. 쫒기다 쫒기다 180도 회전에의 낭떠리지에 서서 마지막을 보려는 호기심은 말라빠진 두 손가락 사이로 멍한 눈방울을 실쭉이 뜨게 했다. 마땅히 전해 와야 할 입에서 귀로 하는 전달사항은 도중 분실됐는지 전혀 윤곽조차 잡히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어인 일이며 더욱 눈방울을 작게 한 이것은 무엇의 작희이며, 누구의 예술이란 말인가? 작희치곤 너무 웅휘했고 누구의 예술이라 돌리기에 완전에 가까운 명에 머리 숙여짐을 어이하랴. 제왕의 행렬이라 볼 때엔 쓸쓸한 회위에의 행렬이요, 전쟁에 진 비운의 비장의 행렬인 것이다. 도성을 다스리던 행위야 어찌하든 피지배계급이 간사한 인간들일진즉, 쓸쓸한 패전의 장수로서 받는 영접은 어이하란 말인가? 흡사 무릎을 끓은 모양을 방불한 순종에의 송주에의 태도는 붉음만으로는 부족한 듯 행렬을 휘감은 저 비단이란 영화의 잔재에 대한 탐욕스런 미소인지 내일을 기약한 물러남이기에 한 꺼풀 앞선 간교한 착상인지 수긍이 가지 않는다. 선입감의 까닭인지 도무지 좋게 해석되지 않는 움직임들…… 

 

  모든 것을 발악적으로 포옹하려는 노력인지 모든 것을 붉음으로 태우려는 발악인지 미지수인 그 행위만은 낭떠러지에서 그 이상으로 크다. 가로수의 무겁도록 검푸른 잎 전체가 내일을 외면한 듯이 뿜는 화염은 고즈넉한 일면 보이며 계곡건너 저 쪽의 계획보다도 더욱 짙은 불꽃을 날린다. 마치 이 일순에만 마지막 용기를 내서 우둔한 만용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뿔꽃을 사랑하던 재들이 검게 거리를 먹어 들어간다. 마치 조수가 밀려들어 오듯이 급속한 움직임은 나무의 불꽃도 차츰 멀어져 간다. 불이 붙던 반대의 순서로 화염은 식어간다.

 

  마치 마루의 한 잎이 활활 젊음을 태우며 일순을 느낄 때, 음영을 간직한 미소는 꺼질 듯 산등성이에 주저앉았고, 거리는 어느덧 전후의 비참한 폐허로 탈바꿈한다. 뒷전에는 영화의 그 때를 기리는 한숨만이 새어 나오고, 하늘을 향해 도열한 검은 기수들은 오히려 하늘을 저주하듯이 아수라자의 표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하늘을 저주하는 원의를 캐는 수 없어 쓸쓸한 웃음을 머금은 채 사그러질 듯한 자취위에 오열의 송사를 보낸다. 이 도성을 비추던 영화의 젊음에 마지막 순결을 불태우던 아름다움, 너무 순간적이기에 미칠 것같이 외치며 거리를 뛰쳐나간다.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내 비록 계곡의 이 쪽 석양을 아직 받는 양지바른 고립의 존재일지라도 인간의 한 무리인즉 빠져 나오려는 노력이 아무리 큰들 무리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나도 의문이다. 하기는 그러하기에 저 무리들과 같이 꺼져가는 영주에게 비웃음을 날리는 행렬에 낄 영광을 차지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자세히 음미해 보면 그들의 비웃음의 의미와 나의 의미는 흡사할 것 같으면서도 전혀 이질 형태의 그것이니 말이다.

 

  일각을 차지하는 미는 싫다고 푸른 달 아래서 외치며 내일의 순간적 미인 또 그 미에 영원을 걸어 보는 것이 나의 우둔한 심지 탓일까? 수령을 잃은 무리들도 오늘의 수령을 기만하면서도 내일의 수령에는 기대를 걸어 보는 것일까?

                                                                        <낙조  끝>

 

  누구나 또는 글의 제목으로 쓸 수 있는 < 落照>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 때 이 글을 읽고 나는 基伯이의 邊山行을 중지시켜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 모든 예민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우둔만이 나를 지배했던가보다. 나는 그저 글을 써서 발표까지 한 것이 신통하기만하여, , 基伯이도 이제 컷구나. 신통하다. 基伯! 이렇게만 쑥쑥 자라라!祈願만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활자화되어 나온 이 글을 본 나는 基伯이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글을 왜 이렇게 어렵게 썻니? 글이란 쉽게 써야 하는 거야.

저는 보통 상징파의 글을 쓰거든요.

그 귀여운 눈을 반짝이면서 基伯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가 그의 글 속에서 말한 <영원의 아름다움>을 쫒아 새 을 찾아가기 꼭 엿새 전의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하늘이 주신 나의 사랑하는 아들 基伯이를 새 으로 보낸 것이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없었다. 아무리 虛無人生이기로서니 이럴 수가 있는가!  이러고서도 내가, 목이 마르다고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다고 밥을 먹고 살아야만 하는가!  무더운 월 한 달 동안 남는 꼼짝하지 않고 집안에 파묻혀 고통스러운 이 虛無의 맛을 씹고 또 씹었다.  

 

  여러 분들이 오셔 基伯이는 좋은 데로 갔을 거라고 위로의 말씀을 해 주셨다.

行人 선생님은, 그토록 깨끗한 基伯이가 좋은 데로 가지 어디로 가겠느냐고 하시며 이런

적어 보내셨다.

 

 衆鳥同枝宿(같은 나뭇가지에 자던 새들도)

 日高各自飛(날 밝으면 갈 길은 모두 각가지)

 人生亦如批(사람이라 무엇이 다르길래)

 何必淚(울어 이별 옷깃을 적시겠는가)

 

  佛敎에 종사하고 계신 어느 분은 사람이란 인연 따라 왔다 인연 따라 가는 법이라고 하며, 다음과 같은 열반경(涅槃經)의 제행무상게(諸行無常偈)를 읽어 주시면서, 슬퍼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諸行無常(우주 안의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하는 것이니)

  是生必滅(이 생은 반드시 멸하는 법이니라)

  生滅己滅(모든 것은 생겼다 멸하는 것이며 자기를 없애고)

  寂滅爲樂(적멸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다)

 

  성경 고린도 전서 제 十五장의 다음과 같은 말씀도 읽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 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민효기 교장 선생님이 집에 들려 너무나도 어이가 없으신지 말씀도 많이 못하시고 침착히 제자의 건실하고 찬란함을 축원해 주셨고, 김송우 선생님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春園<鳳兒追憶>을 읽어 보라고 하셨다.

醉霞 선생님께서는인간이란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어쩔 수 없는 절대의 힘에 따라 누구나 가는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고 말씀하셨다.

 

  한 번은 낮에 잠깐 잠이 든 사이에 꿈을 꾸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데 基伯이가 저 쪽에서 나타나더니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基伯이는 어디로 갔니?하고 내가 안타까이 물으니까, 아이들이 디즈니랜드로 갔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엔 얼굴이 좋아져 둥글둥글하게 살이 찐 基伯이가 머리맡에 나타나는 꿈을 꾸다가 잠이 깨었다. 한 번은 어느 골목 나의 앞길에서 갑자기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찬란한 빛이 나타나 차츰차츰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어떤 이층집 지붕 위에서 멈추는 꿈을 꾸다가 일어난 일도 있다.

 

  이러는 동안 월 한 달이 지나 개학이 되었다. 내일이면 개학이라고 부산히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곤 했던 基伯이는 먼 나라로 갔다. 아내는 몸부림을 치고 싶은 이 슬픔을 용케 참았다. 나도 늘 데리고 다니던 基伯이 없이 혼자 학교에 나가 基伯이 없는 학교에서 나의 일을 계속했다. 아이들은, 비록 겉으로 나타내진 않았지만 울면서 강의하는 나의 속을 들여다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해 주었을 것이다.

 

  한 달 전의 세상과 한 달 후의 세상이 나에겐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괴로운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내앞에 부닥친 나의 운명이다. 니이체처럼 운명을 사랑하기까지는 못하더라도, 복종하는 도리 밖에 없다. 사실 흔연히 부르심에 따른 基伯이의 용기를 생각한다면, 나는 이제 아무리 큰 고통이라도 고통이라고 여길 수 없는 처지에 있지 않은가. 이제 나에겐 참을 수 없는 일이 없고, 괴롭다고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일찍 간다.라는 말을 되씹고 하는 동안에 사십구일이 흘러, 그 동안 영가를 모셔놓고, 이레마다 찾아가 축원을 했던 방학동의 慈恩精舍에 가서 정성들여 사십구제(四十九齊)를 올렸다.

  이래서 基伯이는 짧지만 한량없이 깨끗했던 이승의 삶을 청산하고, 어딘가 세 세상에서 밝고 살기 좋은 定處를 잡아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있고 슬기롭고 용감하신 어른들이 따뜻하게 基伯이를 맞아 정성껏 보살펴 주시리라고 믿는다. 基伯이는 孝子였다. 그의 를 보시고서라도 특별히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

 

  基伯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에게 끝없는 기쁨을 주었으므로 孝子이다.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고 잘 자랐으므로 孝子이다.

공부를 잘해 부모를 기쁘게 해 주었으므로 孝子이다.

부모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아들 세 세상으로 가던 해 설날 基伯이는 둥그런 원()과 거북이가 앉아 있는 장식물을 부모에게 선물했다 .이었으므로 孝子이다.

고귀한 우주진리를 뼈에 사무치도록 부모에게 가르쳐 주었으므로 孝子이다.

 

  그러므로 基伯이가 새 세상에 들어갈 때는, 하늘에 이 나르고 물속에서 거북이가 춤을 추고, 그곳의 樂士들이 주악하는 우렁찬 효자송(孝子頌)에 따라 양쪽 길에 늘어선 아름답고 순결한 수많은 仙女들이 합창을 하는 가운데 극진한 환영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동생이 새 세상으로 가고 난 다음 基伯이의 세 형들의 태도는 훌륭했다. 세 세상으로 간다는 말은 곧 이 세상에서의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중하고도 소중한 동생을 잃었으니, 그 고통이 오죽했겠는가! 남달리 우애가 두터운 네 형제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고통을 꾹 참았다. 같은 血肉 사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고통스러운 인내이다.

 

 DAAD 장학금으로 西獨 뮌헨工大에 가서 물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基伯이의 큰 형에겐 외국에서 단신 공부하고 있는 처지에 충격이 클 것 같아 곧 알리지 않았다. 이 소식을 모르는 그에게서 일부로 다음과 같은 어느 때보다 유달리 다정한 基伯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한 장 날아왔다.

                                                    사랑하는 기백이 에게

    

그 동안 편지 없어 궁금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동안 부모님 비롯하여 기화, 기항이 모두 무고한지 걱정이 된다. 지난주에는 편지가 한 장도 없어서 어찌된 일이지 모르겠구나. 나는 너의 염려 덕분에 무사히 나날을 지내고 있단다. 얼마 전만 해도 밥이 설익은 것을 먹곤 하였는데, 점점 틀이 잡히는 것 같다. 그 동안 무더운 더위에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이곳은 이제 가을이 된 것 같다. 쌀쌀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고 낮에도 쉐타를 입고 다닐 정도의 날이니까 우리 나라의 가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으로 안다. 그 정도로 했빛이 따사롭기만 하구나.

  이제 이곳에 온 후 개월이 지나갔다. 아무런 한 일도 없이 날만 지나간 것 같이 느껴지는 구나. 그 동안에 너는 기우와 더불어 과외도 열심히 할 것이고, 기타도 잘 칠 것이고, 역시 그곳에서 우리들이 즐기는 멜로디에 맞추어 부르는 것이 좋지. 이곳의 고고는 아직도 취미에 맞지 않는구나.

  네가 휘문 신문에 낸 것 잘 읽었다. 언제 그렇게 만은 것을 배웠는지, 기특하구나. 코 찔찔 흐리며 울고 하더니, 참 그걸 보니 세월이 빠른 것이 절로 실감되는구나.

뭐니 뭐니 해도 나란히 누워 너와 같이 장난하면서 자던 생각이 제일이니까.

그때가 제일 재미있었지? 그렇지 않니?

  그리고 독일어 熱心히 하거라. 물론 영어는 도사가 되어야 하고. 아마 네가 대학을 나올 때이면 내가 하는 공부도 끝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너를 데려다가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대학에 우선 잘 들어가서 성적을 잘 내는 것이다. 그리고 영어하고 독어는 항상 손에서 떼지 말고 한 문장을 매일 하나씩 외우도록 하여라. 그것이 독일어 공부에 제일 중요한 것이다. 사전뒤의 동사는 외어버리고, 알았지? 독일어 관계대명사가 한국에서 배울 때는 어렵더니만 알고 보니 그렇게 쉬운 것이 없는 것이니까, 잘 하기 바라다. 형용사 어미도 잘 외워 두고. 아직 이곳의 축구연맹전 시즌이 안 되어서 축구는 모르겠다. 十四일부터 드디어 시작이 된다. 그러면 자주 알려 줄 터이니 그리 알아라. 十四일 날은 이곳에서도 경기가 있어서, 자주 구경갈 기회가 생겼다. 아마도 이곳 팀의 성적은 신통치 않으리라 본다.

  자 그럼 건강하고, 공부 잘 하고,

  We zueltzt lacht, lacht am besten. (마지막에 웃는 자가, 가장 잘 웃는다.)

  Ich habe deinen Brief vor einer Woche bokommen. (나는 너의 편지를 일주일 전에 받았다.)  

                                                                                                一九七一· ·八    兄 

                                                                                   

 

  그러나 이 때는 이미 基伯이가 새 세상으로 떠난 후였다. 그가 얼마나 따르던 이었던가!  이 비행기를 타고 西獨으로 떠난 다음 가족 전원이 김포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基伯이는 , 이제 우리 집에도 잘랑할 만한 일이 하나 생겼다.며 좋아하더니만... 얼마나 소중한 편지냐! 동생을 생각하는 정이 이보다 더 두터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어리석은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틀림없이 基伯이는 어디서든 의 이 편지를 읽었을 것이다. 우리는 하늘도 감동할 이 편지를 고이고이 간직해 두었다.`

 

  그리고 난 후 해와 달이 바뀌어 며칠만 지나면 基伯이가 집을 나간 지 꼭 한 해가 된다. 개인의 기쁨이나 슬픔에는 상관없이 우주의 흐름은 그 섭리에 따라 그대로 흐르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사랑해도 누가 누구를 미워해도 소용없다. 우주의 흐름은 이런 걸 초월한다. 어느 때는 겨울처럼 잔잔하고 어느 때는 폭풍 속의 파도처럼 광분(狂奔)하는 것이 다를 뿐 마냥 같은 흐름을 계속하는 것이다. 지나간 수억 년이 그랬고 , 앞으로 수억 년에도 그럴 것이다. 어차피 인간의 존재란 이 커다란 흐름 속의 아주 조그마한 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基伯이는 부르심에 따라 용감히 새 세상으로 갔지만 그 귀여운 모습, 반짝이는 눈, 다정한 목소리는 항상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들의 가슴 속에 있다. 매일 같이 잘 있다는 基伯이의 소시을 듣고, 우리도 매일같이 무사와 안녕을 비는 마음의 편지를 보낸다. 전과 다름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웃음과 해학(諧謔)을 잃지 말고, 위대한 자이언트가 되기보다는 무병(無病)한 속에 착하고 건실한 사람으로서 착실하게 살아 달라는 기원(祈願)을 보낸다.

 

  올해의 더위는 二十三년 만의 더위라던가. 大地가 목이 말라 뜨거운 열을 뿜는다.

 

  이젠 아무래도 좋다. 더우면 어떻고, 추우면 어떠냐! 基伯이의 명예에 손상이 없도록, 하늘의 섭리에 따라 하는 데까지 해 보는 것이다. 하늘이 시키는 대로 일하다가 새 세상에 가서 基伯이를 만나는 것이다. 나에게 가장 榮光된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다. 만일 이 땅 위에 나에게 조금만치라도 무슨 이상한 영광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基伯이의 것이다. 우리는 모두 맹세했다, 모든 행복과 영광을 基伯이에게 돌리자고.

 

 푸른 하늘에 둥실거리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이런 祈願을 되풀이 한다.

大慈大悲하신 부처님, 仁慈하신 관세음보살님, 孝子 基伯이와 그의 두 친구에게 金剛처럼 단단한 마음과 밝은 지혜를 주셔 살기 좋은 정토(淨土)定處를 잡아 을 쌓고 을 하고 좋아하는 일 많이 하면서 오래 오래 살도록 보호하고 인도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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