霞村 南龍祐 隨筆

霞村 隨筆(1) 귀한미소

맑은공기n 2018. 11. 16. 18:27

 

 

 

                                                       귀한 미소    

하촌(霞村) 남용우(南龍祐)

1957. 9


나의 생활에 피곤을 느낄 때가 있다. 사실 짜증이 날 때도 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내가 하는 일이 정말 보람 있는 일인가 혼자 생각해 보는 경우도 있다. 도대체 우리 한국 사람들은 외국어를 배우느라고 볼장을 다 보는가 싶다. 외국어 공부에 귀중한 시간의 거의 전부를 소비하니, 언제 남들과 같이 진보된 학문 연구를 할 수 있느냐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교실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늘 제런드인피니티브니 하며 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내 자신이 서글프게만 생각된다. 학생들의 눈동자들이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아 무척 괴롭다. 영어는 선진국가 사람들의 말이니까 우리가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배워야지영어는 세계 공통어가 되다시피 한 말이야. 그리고 영어는 움직이는 영국의 박물관이니까.억지로 영어의 중요성을 캐내어 보고 스스로 위안을 얻으려 한다

  

나에게 할당된 시간이라 들어간다는 직업적인 버릇, 또는 종이 치면 백묵통을 들고 일어서는 거의 기계화된 습관으로 감각 없는 막대기와 같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수가 많다. 교단에 서서 무언가를 가르쳐 달라고 나에게 눈초리를 모으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졸다가 놀랜 토끼마냥 정신이 번쩍 나곤 한다.

   

그러나 나의 이런 지리 한 마음에 희망과 격려를 주는 어느 <귀한 미소>가 있다.

  

그것은 K군의 미소이다.

K군은 나를 늘 미소로서 반겨 준다. 틀림없이 그 미소는 나를 퍽 기다렸던 미소이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 띄운 그 귀한 미소에는 나의 학교생활의 기쁨과 희망이 섞여 있다. 그의 그 천사 같은 미소에는 나의 소년시절이 숨어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처럼 그의 미소를 보기가 즐겁기도 무섭기도 하다.

   

그는 몸이 불편하기 때문이지 문학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의 포켓트가 불룩한 것은 아마 안에 들어 있는 영어 사전과 소설책 때문일 것이다. 소년의 꿈을 담뿍 실은 포켓트…‥그가 허락해 준다면 한 번 들여다보고 싶다.

그의 노우트는 그 미소보다 더 깨끗하다. 빨간 연필로 특히 싸 두른 구문형식 과 예문들…‥이것은 그의 마음의 거울이나 다름없다. 깨끗하고 영리한 그의 마음의 노우트 위에 거울처럼 비친다.

  

어느 날 나는 복도에서 그와 마주쳤다.

K군! 이젠 제법 어깨가 어른같이 넓어졌는데. 얼굴에 여드름이 다 나구…』

나는 그의 어깨를 꽉잡고 말했다.

그는 얼굴에 한 번 멋진 미소를 띄우곤 교실 안으로 도망을 치려고만 했다.

아니 선생님하고 악수도 안 하고 가는 사람이 있나?

뒤돌아선 그를 다시 불러 나는 어거지 악수를 했다.

다리를 끌며 교실로 들어가는 K군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메마른 나의 마음에 윤택한 적심을 주는 그 <귀한 미소>의 소유자 K군! 평생 그 미소를 가직하고 살아라! 영혼같이 섬겨라, 그 귀한 미소를!

 

정녕 난 요샌 그 <귀한 미소> 때문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