霞村 南龍祐 隨筆

霞村 隨筆(4) 크리스마스 카드와 육군 중위

맑은공기n 2019. 12. 11. 19:25

글  남용우

1959. 3  


우리 집 맨 끝의 놈에게 나는 아름다운 세금장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아침마다 내가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서면, 그는 꼭 문간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안녕!을 하고서는 뭔가를 기대하는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그럼 나는 이 안녕 값으로 10원을 주어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길을 막고 삐쭉이고, 마침내는 그의 최대의 무기인 울음이 터져 나오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제부터는 안녕을 안 하겠다는 위협이다. 매일 아침마다 10원씩 정기적으로 받아가니 세금장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이요, 세금장이 쳐놓곤 그리 미운 세금장이가 아니므로 그 뒤에다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준 것이다.

 

이 세금장이 꼬마가 크리스마스 카드 덕택으로 육군 중위가 된 이야기를 소개하련다.

 

요새도 가만히 볼라치면 아이들 사이에 병정놀이가 성행한다. 그 동네에서 가장 주먹이 센 아이가 대장이 되고, 그 다음에는 나이에 따라, 완력에 따라 그 아이 집의 빈부 정도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 꼬마는 늘 봐야 변함없이 갈매기 둘이었다. 무슨 특별한 공이 있어야 계급이 올라간다는데, 밤낮 갈매기 둘인 것을 보니 별다른 공을 세우지 못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남과 같이 붙임성이 없어 교제 능력도 없고 보니 항상 이 계급일 수 밖에...

 

나는 꼬마의 진급(進級)을 은근히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내가 바라던 그의 진급이 이루어졌다. 언젠가 그에게 커다란 색색이 공을 사 주었더니, 이것을 가지고 밖에 나가더니만 대번에 그의 계급이 상사로 올라간 것이다. 그의 형 놈의 말에 의하면, 그 공을 가지고 나가니까 애들은 우리 꼬마를 제왕(帝王)처럼 대접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대접에 대한 교환 조건으로 잠시 공을 빌려주면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보니까 꼬마가 상사로 진급한 것도, 그들에게 공을 빌려 준 공() 때문이었다. 나는 어린 아이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이 Give and Take 즉 주고받는 정신을 알고, 혼자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튼 꼬마는 일약 상사로 진급되어 갈매기 여섯 개를 달고, 어깨를 으쓱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의 계급은 더 올라가지 않았다. 오랫동안.....지나간 크리스마스가 올 때까지, 꼬마는 상사의 계급에서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왔다. 거리의 가게마다 찬란한 크리스마스 카드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카드도 외국 것에 비해 손색없이 아름다웠다. 그것이 외국 사람의 습관이건, 혹은 기독교 신자에게 한한 습관이건 간에, 1년 열두 달이 지나간 후,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행복을 빌며 카드를 한 장 보낸다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다. 받는 사람의 기뻐하는 얼굴을 상상하며 우체통에 카드를 넣는 맛이란 즐겁기 한량없다.

 

이 해처럼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 본 적은 없다. 내가 기대하던 대로 이 사람 저 사람한테서 받은 카드가 꽤 많아졌을 때, 나는 우리 집 꼬마 생각을 했다.

옳지... 이것을 꼬마에게 주어야겠다. 밖에 나가서 뻐기는 모양 좀 보게....그리고 나는 그 카드를 전부 꼬마에게 주었다. 정말 아름다운 그림이 많아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엔 안성마춤이었던 것이다. 카드를 받고 기뻐하는 꼬마의 얼굴! 이 순간 나는 나에게 카드를 보내 준 사람들에게 다시금 감사했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은 이것뿐이 아니다. 꼬마가 그 카드를 밖에 가지고 나갔다 오더니 그의 계급이 대번에 육군 중위로 올라간 것이다. 물론 그의 카드는 다 없어졌지만..... 나에게 카드를 보내 준 사람들은 아마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