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구읍 3

沃川旅行(41): 구읍 아름다운 인연

마성산(335.1m 동마성산)이 푸근하게 감싼 옥천 구읍(舊邑)을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 합니다. 경부선 철도 개설당시 유림(儒林)의 반대로 화차(기차)역이 들어서지 못했고, 대청댐 수질 보호를 위해 상류에 부과된 여러 개발제한 여파로 구읍은 역사의 흔적만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50년대 만 해도 구읍 사거리에는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었기에 이 몸은 돌아서서...’로 시작하는 ‘아내의 노래’가 유성기에서 흘러나오고 금은방도 있었지만 지금은 고요한 거리에 일제 주재소(駐在所), 정지용 생가와 고택(古宅)들만이 무겁게 옛 흔적을 전해줍니다. 정지용 시인과 죽향 보통학교 동기인(죽향초교 4회, 1914졸) 외할아버님은 어려운 가세에도 경기 제1고보(경기고), 시인은 휘문고보(휘문고)로 나..

沃川旅行(40): 문박골 향수길

누구나 고향과 관련한 좋은 추억을 한 가지 이상은 갖고 있습니다. 옥천읍에서 군북면 소정리로 접어드는 첫 마을인 문박골은 대청호 오백리길 10구간을 걷는 사람들이 장계리를 가거나 이슬봉(454m)을 오르기 위해, 또는 대청호와 어울린 풍광을 찍기 위해 지나치는 20여 호 남짓 작은 산촌 마을입니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해인 1953년 만 6살 되던 해 가을, 어머니 심부름으로 네 살 위인 형과 함께 옥천 구읍(舊邑)에서 소정리(疎亭里) 문박골을 다녀온 추억이 강렬했기에 65년의 세월 흐른 2018년 1월 문박골 향수길 6km를 다시 걸었습니다. 요즘이야 옥천시내에서 소정리 경유로 보은·안남·청산·청성·월외리를 운행하는 버스들이 문박골을 30분~50분에 한 대씩 지나가지만 50년대에는 자동차 길은..

沃川旅行(18): 이슬봉 · 시대의 양심 청람(靑嵐) 정구영(鄭求瑛)

일제치하 좌우를 막론하여 민족 운동가들을 변호하시고, 자유당 독재정권시절 3·15부정선거에 항거한 마산의거가 일어났을 때 조사단을 이끌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헌신, 이승만 대통령 하야(下野)요구 성명을 발표하신 청람(靑嵐) 정구영(鄭求瑛·1896~1978)선생은 옥천 출신으로, 5·16군사혁명 발발시 군사정권을 민주정부로 이끌겠다는 의지 하나로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지만,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후락 비서실장 면전(面前)에서 정권의 2인자를 내치라고 직언하시고, 3선 개헌 반대의사를 표명하신 유일한 공화당 의원이었던 선생님은 집권 여당(與黨)을 탈당하시고 낙향하셨다가, 고향 옥천군 군북면 소정리 이슬봉 자락에 영면(永眠)하고 계십니다. 선생의 장손(長孫) (전)인하대교수 정진성님과 돌아본 옥천군 구읍 문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