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近畿旅行

近畿旅行(129): 남한산성(8) 인조의 길, 서문에서 진터벌 · 잠실 삼전도비

맑은공기n 2023. 7. 28. 16:23

올해는 청나라의 침략 전쟁인 병자호란(양력 163713~1637224) 386주년입니다. 병자호란은 조선에 넓고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왕족이나 양반 같은 지도층 보다는 하층민들 60만명이 포로로 끌려갔고, 만주에서 힘들게 돌아온 여자들을 따뜻한 치유 보다는 환향녀(還鄕女) 딱지로 매도했으니 힘없는 민초들의 고통이 도드라진 전쟁이었습니다.

 

마천역에서 능선 타고 연주봉(467.6m) 옹성 암문으로 올라 서문(450m)에서 계곡 따라 3317번 버스 승차장으로 하산합니다. 연주봉 암문으로 이어지는 능선 등산로는 30대 때나 지금이나 항상 깔딱 오름 느낌입니다. 서문에서 계곡 길로 하산 할 때는 낙상을 주의합니다. 등반 내내 천연의 요새를 지키지 못하고 항복한 인조(仁祖)에 대해 분노의 감정과 연민이 교차합니다.

 

서문 전망대에서 발아래 멀리 롯데타워가 보입니다. 남한산성과 롯데타워 사이를 가득 채운 아파트, 빌딩 터들은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 군이 주둔한 진터, 진터벌: 진노평(陣攄坪)이었습니다. 인조가 서문에서 임금의 용포를 벗어 평민의 남염의(藍染衣) 차림으로 환복하고 내려가 청 태종에게 항복한 잠실 삼전도(三田渡, 송파나루) 자리에 삼전도비가 세워져있습니다.

 

인조실록 34, 인조 15130일 경오 2번째기사 1637

용골대(龍骨大)와 마부대(馬夫大)가 성 밖에 와서 상의 출성(出城)을 재촉하였다. 상이 남염의(藍染衣)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의장(儀仗)은 모두 제거한 채 시종(侍從) 50여 명을 거느리고 서문(西門)을 통해 성을 나갔는데, 왕세자가 따랐다.(중략) 상이 산에서 내려가 자리를 펴고 앉았는데 얼마 뒤에 갑옷을 입은 청나라 군사 수백 기()가 달려왔다.

馬兩胡, 來城外, 趣上出城上着藍染衣, 乘白馬, 盡去儀仗, 率侍從五十餘人, 由西門出城, 王世子從焉(중략) 上下山, 班荊而坐俄而, 淸兵被甲者數百騎馳來

 

인조가 서문에서 내려가 자리를 펴고 앉은 곳은 남한산성 등산·출발 종료지인 송파상운 차고지인근으로 추정합니다. 잠실새내역과 송파상운(남한산성 입구)를 운행하는 버스를 탑승하니 옛날 진노평(진터벌)을 요리저리 돌아 잠실역에 도착합니다. 오솔길이 도로로 발전한 사례를 보아 3317번 버스 송파구 운행 코스는 항복의식 치르러 인조가 이동한 길과 비슷하겠습니다.

 

송파나루공원 서호(西湖) 언덕의 삼전도비(三田渡碑 대청황제공덕비)를 제외하면 병자호란의 가시적 흔적은 송파구에서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음식점인 돌무데기 가든, 돌무데기 호프, 그리고 자그마한 돌무데기 어린이 공원 정도에 이름으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진노평(진터벌)에 진을 친 청병들이 돌을 모아 진지를 쌓은 데서 돌무데기라는 지명이 유래합니다.

 

삼전도에서 인조가 겪은 치욕은 나의 치욕이기에 교훈으로 간직하되 인조의 항복의식을 여기서 글로 재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병자호란 종료 2년 후인 1639년 세운 비석 좌우로 롯데타워와 롯데월드가 높이 솟아 있습니다. 우습게도 참담한 병자호란의 비극은 저리 빗겨놓고 삼전도비 주변은 융성하는 지기(地氣)의 번영지지(繁榮之地)라는 생각이 번뜩 스칩니다.

 

서울 3317번 버스 주요 경유지:

송파상운종점~ 비호아파트~ 마천1,2동 주민센터~ 마천2동 신동아 아파트~ 거여초등학교~ 오금동사거리~ 송파도서관~ 송파중학교~ 가락동 쌍룡, 미륭아파트~ 문정1동 주민센터~ 문정동 로데오거리 입구~ 가락시장역~ 송파역~ 석촌역~ 석촌호수

 

부연하면 위의 버스 노선은 인조가 항복하러 남한산성 서문에서 내려와 진로평(진터벌) 청병들 주둔지를 통과한 길과 유사하다고 추정합니다. 버스 경유지 좌우로 줄지어 늘어선 아파트, 빌라단지, 고층 빌딩들이 나에게는 기치창검 번쩍이는 청군 군영지로 보였습니다.

 

일정:

09:28 전철 5호선 마천역2번 출구

09:44 3317 송파상운 차고지(남한산성 입구)/0.96km

09:49 연주봉 옹성(능선서문(계곡)갈림/1.3km

           → 연봉 옹성 방향 능선 길

09:55~09:58 성불사/1.58km~1.64km

10:55~11:23 연주봉 옹성 제5암문/4.05km~4.09km

11:29~11:34 서문전망대/4.31km~4.34km

11:36~11:51 서문/4.39km~4.6km

                    → 계곡 하산

12:46 푸른산장·공중화장실/6.46km

12;58 청운사/6.91km

13:02 연주봉 옹성·서문 산행로 갈림길 회귀/7.05m

13:07 송파상운 차고지(남한산성 입구)회귀/7.39km

버스 정류장 남한산성입구 서울 3317버스 탑승 ~ 잠실역 5번 출구 하차.

잠실역 2-3번 출구(잠실역환승센터송파나루공원 삼전도비

 

송파상운 차고지(남한산성 입구)에서 골목길:

시장통:

돌무데기 이름 유래를 아실가?

연주봉 옹성·서문 산행로 갈림길/연주봉 능선길은 꼬꼬닭발 좌측으로/우측은 서문 직방 계곡길로 이어집니다:

연주봉, 서문, 청량산(수어장대) 조망(방점 좌,중,우)/좌 연주봉으로 올라 중간 방점 서문으로 하산하는 코스입니다:

성불사:

맨발 유행(파상풍 위험 비추):

연주봉 옹성 도착: 

연주봉 옹성 5암문:

서문(우익무)은 우측으로 0.3Km:

성벽 외부 따라 서문으로:

서문전망대:

일본인들(줄무니 옷 중년)과 함께 온 관광객들:

롯데타워(방점) 좌측이 삼전도비 위치한 송파나루공원(흐린 날씨):

서문전망대 50m 우측에 남한산성 우익문(서문):

서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남한산성 4개의 문중에 가장 작습니다. 가장 큰 남문을 놔두고 서문으로 인조가 내려오게 한것은 모욕:

계곡 길로 하산:

겨울에는 빙판길이 됩니다:

약 10년 만에 왔는데 정비가 잘 되있습니다:

인조는 힘좋은 환관에 엎혀 내려 왔을거라고 추측합니다:

마천동 방향으로:

푸른산장과 공중화장실 가운데 길로 하산:

청운사 통과:

뒤돌아 본 연주봉, 서문(방점 좌, 우):

꼬꼬닭발 우측길로 내려왔습니다/등산 시작할 때 연주봉 옹성(능선서문(계곡) 갈림점이었습니다:

다시 시장 통과:

송파상운 차고지(남한산성 입구)로 회귀해 잠실행 3317버스 탑승. 이 일대가 인조가 서문을 내려와 자리펴고 앉아 쉰 곳으로 추정합니다/여기에서 청군 기마병 수백명에 둘러싸여 말을 타고 송파나루로 향했겠습니다. 이동로는 3317 버스 노선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천역과 송파상운 중간 위치 자투리 땅에 돌무데기 어린이 공원(카카오맵 캡쳐 사진):

인조가 갑옷입고 무장한 청군 기마병에 둘러싸여 청군 주둔지인 진노평(진터벌)을 통과해 청군 최고지휘부가 있는 현재 송파나루공원(삼전도, 서호 언덕)으로 이동해온 송파대로(엣날에는 오솔길 수준이었겠지요):

뒤돌아 보니 송파대로 빌딩 사이로 남한산성 스카이라인이 낮게 살짝 보입니다:

잠실역 2-3번 출구  우측 뒤(방점)에 삼전도비가 숨은 듯 있습니다:

잠실역환승센터 2-3번 입출구(방점 삼전도비):

잠실역환승센터에서 석촌역 방향 송파대로 20m 진행한 다음, 우측으로 꺽어 15m에  삼전도비:

전방 숲 아래는 석촌호수(서호)와 둘레길 입니다:

위치 고증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있습니다: 

사적 제1010호 서울 삼전도비는 돌고 돌아 원위치:

전면/우측에는 무비석 귀부:

후면:

측면:

전면은 만주어와 몽골어:

후면은 한자<대청황제 공덕비 전자(篆字) 뚜렷>:

비신없는 귀부의 유래_ 원래 제작한 귀부 보다 더크게 다시 만들라고 강요해서 용도 페기:

승자인 만주족 후예는 사라지고 패자인 조선을 이은 대한민국은 번영:

청태종이 병자호란 지휘부로 머물며 이곳이 대길지임을 알았으나 땅을 가져갈 수 없기에 고민. 무거운 돌덩어리로 지기를 억누르라는 책사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공덕비를 세움. 폭발하는 지기를 누르는 힘이 부족. 결국은 대한민국 국운 폭발! 이부분은 본인의 소설입니다//공덕비는 운이 솟아나는 혈점을 건드린 열쇄였나? 풍수학자님들의 해설이 기다려집니다:

경로: 발강 실선(능선 오름 길), 파랑선(하산 계곡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