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뿌리여행

뿌리여행(15): 용인 소재, 국창공 남응운 전액

맑은공기n 2021. 6. 4. 21:54

의령 남씨 11세 국창(菊窓) 남응운(南應雲 1509 중종4~1587 선조20) 할아버지 전액(篆額)이 포함된 정옥형 신도비와 허엽 신도비를 등산하다 우연히 접하였습니다. 창덕궁 서총대에 왕이 행차한 연회 장면을 그린 서총대친림사연도(瑞蔥臺親臨賜宴圖)의 주인공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전각예술(篆刻藝術)에도 능하신 줄은 몰랐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국창공 전액 작품(作品)으로는 개성 서화담경덕비(徐花潭敬德碑), 운봉 황산대첩비(荒山大捷碑), 장단 허종신도비(許琮神道碑), 화성 홍섬신도비(洪暹神道碑), 용인 정옥형(丁玉亨)과 허엽(許曄) 신도비(神道碑)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총독부에서 1919년 발간한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545개 비문에 서경덕 신도비, 허종 신도비, 허엽 신도비들이 수록되어있습니다.

 

이하 용인디지털문화대전, 경기문화포털, 용인 역사문화지도에서 국창공(菊窓公) 께서 두전(頭篆)하신 용인시 소재 정옥형, 허엽 두 분의 신도비 소개 글을 발췌, 인용합니다.

 

용인디지털문화대전

조선시대 비문의 서자(書者전자(篆者)는 후손들이 당대의 명필가에게 부탁하여 쓰여 졌으며, 찬자(撰者)와는 달리 비의 예술성을 담당하였다. 남응운(南應雲 1509~1587)의 전()과 한호(韓濩 1543~1605)의 서()는 조선중기 최고로 인정받았으며 허엽·정옥형 등 2인의 신도비문에 관여하였다.

 

경기문화포털

정옥형(丁玉亨 1486 성종171549 명종4)

정옥형 신도비(神道碑) 1584(선조 17)_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1

위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 총신대 신학대학원 입구

전액(篆額)은 공안공신도비명(恭安公神道碑銘)이라 하였다. 비문은 홍섬이 짓고 한호가 썼으며 남응운이 두전(頭篆)을 했다. 총 높이 약 313, 비신 높이 222, 너비 83, 두께 21.5이다. 사질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데 재질이 물러 마모가 심해 비문을 알아보기 어렵다.

 

용인 역사문화지도

허엽(許曄 1517 중종12~1580 선조13)

허엽 신도비(神道碑) 1582(선조 15)

위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639-2 (능골)

허엽의 신도비는 옥개형(屋蓋形)의 지붕돌이 덮여 있으며 전면에는 <慶尙道觀察使 草堂先生 神道碑銘(경상도관찰사 초당선생 신도비명)>이라 쓰여 있다. 비문은 조선 중기의 문신 노수신(盧守愼)이 짓고 전액(篆額: 전서체로 쓴 머리글자)은 이조참판을 지낸 남응운(南應雲)이 썼으며 비의 음기는 선조 때의 명필 성균진사 한호(成均進士 韓濩)가 썼다.

 

↓ 공안공 정옥형 · 충정공 정응두 신도비각:

(좌)공안공 정옥형 · (우)충정공 정응두 신도비:

두전(공안공신도비명)이외는 마모:

정옥형 신도비 전액 부분:

 

용인 맹리 능안 초당 허엽 묘: 

허엽 신도비(우측은 원본, 좌측은 마모 대비 복사본 추측): 

두전_경상도관찰사초당(慶尙道觀察使 草堂):

허엽 신도비 두전 부분:

뒷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