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沃川旅行

沃川旅行(43): 옥천읍 교동리 향교

맑은공기n 2018. 4. 23. 15:32

대청호오백리길 9구간: 옥천향교

  

느티나무 보호수와 조선시대 관리들 송덕비가 세워져 있는 비석거리로부터 시작하는 옥천읍(沃川邑) 교동리(校洞里)는 육영수여사 생가로 알려진 외에는 등산을 즐기는 분들이 대청호가 바라보이는 마성산(馬城山) 산행을 위한 출발지 정도로 기억해주고 있습니다.

 

교동리(校洞里)라 부르게 된 것은 조선 태조 7(1398) 옥천향교(沃川鄕校: 옥천읍 교동리 320번지)를 세웠기 때문으로 의병장 조헌(趙憲)선생 비롯 위패를 모셔 놓고 옥천 유림들이 매년 석전제(釋奠祭)를 올리고 있습니다.

 

묻혀있다 싶은 역사이지만 구한말 을사보호조약에 집단 반대한 유생들은 옥천 유림(儒林)이 유일했으며, 마지막 공식 반대는 궁내부특임관 송병찬(宋秉瓚 옥천출생)의 상소였습니다근거: 고종실록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교육을 위하여 지은 교육기관입니다. 정석채 선생 등 유생들과 외고조부님(송병찬)이 발걸음 멈추었을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향교에서 가르침 데로 선비정신 행한 옥천유림을 경건한 마음으로 기렸습니다.

 

옥천역~옥천향교: 3.1 km

수북리 방향 버스탑승 구읍 교동하차. 교동 버스시간표 첨부

 

옥천유생 정석채(鄭奭采) 등이 송병선의 유소를 올리다.

   고종실록 47, 고종 4323(1906년 대한 광무(光武) 10)

 

沃川儒生鄭奭采等進卒祭酒宋秉璿遺疏其遺疏曰:

 

草莽臣宋秉璿性命將盡, 謹北向泣血上書, 告訣于聖上伏以臣討逆廢約事, 以疏以箚, 恭俟處分者已有日, 而屢度請對, 以聖候靡寧, 待命闕門矣警務使尹喆圭來誘于臣曰: "若欲進伏閤門, 則癃疾筋力" 難可自强, 扶臣載轎轎門下垂, 閃忽之頃, 已到城外, 則巡檢與日巡査, 稱以勅命保護, 探搜臣身, 困辱萬端, 脅載火車, 直到公州之太田, 逐臣還鄕當其時也, 求死不得臣身受辱, 固不足惜, 而貽辱朝廷何? 貽羞山林何? 嗚呼! 諸賊不誅, 勒約未繳, 則五百年宗社, 今日而亡矣, 三十里疆土, 今日而無矣, 數百萬生靈, 今日而滅矣, 五十年道脈, 今日而絶矣臣於今日, 生亦何爲? 將歸侍我列聖朝曁先聖賢於地下, 而不負春秋大義矣伏乞聖慈察之憐之, 確定殉社之正義, 亟誅諸賊, 以伸王章, 亟廢勒約, 以復國權擇人任職, 保我黎民, 置宗祊於無疆, 扶道脈於垂絶, 則是臣死之日, 猶生之年也神昏氣塞, 言不知裁謹昧死以聞

 

옥천(沃川) 유생 정석채(鄭奭采) 등이 고() 좨주(祭酒) 송병선의 유소(遺疏)를 올렸는데, 그 유소에 이르기를,

"초야에 있는 송병선은 목숨을 끊으려 하면서 삼가 대궐을 향하여 피눈물을 흘리며 상소를 올려 성상께 영결을 고합니다. 삼가 아룁니다. 신은 역적을 처단하고 조약을 폐지하는 일로 상소문과 차자문을 올리고 삼가 처분을 기다린 지 이미 며칠이 되었는데 그간 여러 번 청대(請對)하였으나 성상의 체후가 편치 않다고 하기에 대궐문에서 명령을 기다렸습니다.

 

경무사(警務使) 윤철규(尹喆圭)가 신에게 와서 권고하기를, ‘만약 합문에 나아가 엎드려 있고자 한다면 앓은 몸으로는 근력이 스스로 버티기 어려울 것입니다.’라고 하더니, 신의 몸을 부축하여 교자에 태우는 것이었습니다. 교자의 문이 내려지고 눈 깜짝할 사이에 성 밖에 당도하였는데 순검과 일본 순사들이 칙명으로 보호한다는 핑계 아래 신의 몸을 수색하고 갖은 욕을 보이더니, 강제로 기차에 태워 곧장 공주(公州)의 태전(太田)에 도착하여 신을 고향으로 쫓아버렸습니다. 그때에는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의 몸이 모욕을 당한 것은 진실로 애석해할 것도 못되지만 조정에 치욕을 끼친 것은 어찌하며, 시골에 묻혀 사는 선비들에게 수치를 끼친 것은 어찌한단 말입니까?

 

! 여러 역적들을 처단하지 않고 강제로 체결된 조약을 폐기하지 않는다면 500년 종묘사직은 지금 멸망할 것이고 삼천리 강토는 오늘 없어질 것이며, 수백만 백성들은 지금 멸망할 것이고 5,000년을 내려오던 도맥(道脈)이 오늘 끊어질 것이니, 신이 오늘날 산다 한들 무엇 하겠습니까? 지하로 돌아가 우리 열성조(列聖朝)와 선정신(先正臣)들을 모시고 춘추(春秋)의 큰 의리를 저버리지 않으려 합니다.

 

바라건대 자애로운 성상께서는 살피고 가엾게 여겨 종묘와 사직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올바른 의리를 확정하여, 여러 역적들을 속히 처단함으로써 나라의 법을 집행하고, 강제로 체결된 조약을 속히 폐지함으로써 국권을 회복하소서. 인재를 선발하여 직책을 맡겨 우리 백성을 보전하고 종묘와 사직을 영원히 받들어 끊어져가는 도맥을 부지한다면 신은 죽어서도 오히려 살아 있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정신이 혼몽하고 기가 막혀 말에 두서가 없습니다. 죽을죄를 무릅쓰고 삼가 아룁니다."

하였다.

 

궁내부 특진관 송병찬 상소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