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군 독립항쟁기념탑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326 통일공원
용인시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1989년 1월 20일 용인향토사학회(회장 이인영)에서 ‘용인군 독립항쟁기념탑’ 건립을 발의하였으며,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5억 원의 용인군 예산이 책정되어 통일공원(統一公園) 입구에 독립항쟁기념탑의 건립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 움직임이 격렬했던 용인에서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1905년의 을사늑약을 전후여 58회에 걸쳐 의병들의 항일투쟁이 벌어졌으며, 기념탑은 용인시 처인구청 들어오는 대로의 분기점에 위치해 용인을 찾는 분들이 제일 먼저 이 탑을 마주하니 용인군(설치 당시는 군 단위) 독립항쟁기념탑의 중요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기념탑 높이는 15m, 기단 밑변은 13m 화강암 좌대 위에 첨탑을 세우고 6인의 청동입상을 배치하였습니다. 삼각 좌대와 탑신은 민족 고유의 길수인 천·지·인 삼수의 의미와 3·1독립운동의 정신을 뜻하며, 통일공원 모서리가 삼각형인 현장성(現場性)도 표현합니다.
청동 인물상은 1) 항일 의병 2) 3·1독립만세운동 3)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투신한 애국지사들을 표상한 것입니다. 탑신 하단부가 함몰된 것은 36년간 겪은 피압박 민족의 고난이 종식되었음을 의미하며, 위로 솟은 탑신은 용인사람의 기상을, 탑신각 중심인 스테인리스 철주는 변하지 않는 용인사람들의 강인한 정신과 지역의 번영을 상징합니다.
기념탑 명문내용:
우리고장 용인에서 독립항쟁에 몸 바치신 선열들은, 항일의병 40명, 3·1운동 주동인사 77명, 애국독립지사 36명 등 모두 153명에 이른다. 3·1독립만세운동 당시에는 관내 인구 3만 2,000여 명 중 1만 3,200여 명이 궐기하였으며, 이 중 741명이 일제의 만행에 의하여 사망하거나 부상 또는 투옥되는 등의 수난을 겪었다.
이렇듯 민족의 자존과 독립을 위하여 일신을 던지신 애국선열들의 그 고귀한 발자취가 우리 후손들의 가슴 속에 면면히 기려져왔어야 했음에도, 그분들의 고귀한 구국 항쟁정신이 역사의 갈피 속에 묻혀온 지 어언 반세기, 이제 광복 50주년을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애국선열들의 넋을 다시 한 번 추모하고 희생과 독립정신을 되새겨 길이 후손에게 전하고자 온 군민의 한결같은 뜻을 모아 이 탑을 세우노니, 군민들이여! 이 탑 앞에 고개 숙여 지나긴 역사를 다시 한 번 되새기라.
그리고 오욕스런 과거를 반성하되, 결코 잊지는 말자. 그리고 위대한 조상의 자랑스런 후손이 되어 희망과 번영이 넘치는 내 조국과 내 고장을 가꾸어 나가자.
1995. 용인군수 윤병희
교통: ⅰ) 에버라인 김량장역 3번 출구→ 약8분 554m 용인군 독립항쟁기념탑
ⅱ) 10, 60, 66-4, 68, 690, 810-1, 820, 5001, 5005, 5600 기타 마을·시내·광역·버스 다수
중앙지구대 하차→ 도보 약3분 230m 용인군 독립항쟁기념탑
- 수지구청에서 탑승한 690번 버스 운행 내내 줄기차게 퍼붓던 비가 용인정신병원 버스승차장에 정차 할 때는 잠시 멈춰.
효자고개(작은 멱조고개)시작:
한 사람이 버스 기다리는 오른쪽 버스승차장 이름 '인정프린스 흥국생명연수원'
좌측은 민재궁,흥국생명연수원 가는 길:
용인정신병원 승차장에서 비가 신기하게 잠시 멈춰:
효자고개 마루금 오를 땐 다시 비가:
효자고개=작은멱조고개 마루금:
올라왔으니 내려가야지!
김량장동 중앙지구대 하차_ 도보 230m 통일공원으로:
명문내용은 상단 본문 참조(우천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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