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장대 3

近畿旅行(128): 남한산성(7) 율목정에서 청량산 수어장대

효종의 영릉(寧陵) 전배를 위해 1779년 8월 3일 한양 도성을 나선 정조대왕은 화양정(華陽亭), 광진(廣津) 주정소(晝停所)를 거쳐 창곡동(창말) 율목정에서 갑주(甲胄)로 갈아입고 말을 타 남한산성 남문으로 들어갑니다. 창곡동은 위례신도시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위례동입니다. ■ 정조실록 8권, 정조 3년 8월 3일 1779년 至栗木亭, 改御甲冑乘馬。(중략) 上入南門, 율목정(栗木亭)에 이르러 갑주로 갈아입고 말을 탄 (중략) 임금이 남문(南門)으로 들어가. 정조 이전에는 숙종이 1688년 2월 율목정에서 가마를 타고 산성에 올랐다는 기록이, 그 후인 1867년에는 고종이 헌릉에 제사를 지낸 후 남한산성에 오르는데 율목정에 이르러 수레를 타고 남문을 거쳐 행궁으로 갔다는 실록 기록이 있습니다. 율목정에서..

近畿旅行(127): 남한산성(6) 정조대왕의 길

경로: 7.97km 남문 ~ 청량산(수어장대) ~ 서문 ~ 연주봉 옹성 ~ 북문 ~ 망월봉(동장대터) ~ 동문 일제강점기인 1937년 경성궤도주식회사는 광주 명월관에서 광주 지방유지, 신문기자들과 간담회 형식으로 남한산성에 대유원지를 건설하고 산성을 통과하거나 성벽을 돌아 광주 읍내로 가는 전기철도 계획을 밝혔습니다.(동아일보 1937년 8월 1일자 기사 요약). 실현 됐으면 유원지로 전락할 위기를 면한 남한산성 청량산(淸凉山 497m) 수어장대(守禦將臺, 서장대) 옆 작은 보호각 안에는 무망루(無忘樓) 현판이 있습니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북벌을 계획한 효종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한을 후세에 전해 비통함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英祖)가 지은 이름입니다. ​ 무망루 옆에는 이승만대..

近畿旅行(56): 남한산성 수어장대 · 남한산 초교

1636년 아시아를 덮친 극심한 기근과 추위에 떨며 성벽 아래 청병(淸兵)과 대치하던 조선 군사들과 노역으로 고달픈 백성들의 신음 소리는 2019년 6월, 오늘은 들리지 않지만 병자호란(丙子胡亂 인조14)의 아픈 역사는 남한산성에 흐르고 있습니다. 남한산성을 둘러보면 승자 청 태종, 삼전도에서 무릎꿇고 항복한 조선 최악의 군주(君主) 인조(仁祖)와 대신(大臣)들의 역사는 자세히 기록하지만 바닥에서 고초를 겪은 상민과 천민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꿈꿨을가? 남한산성에서 가장 웅장한 건축물 수어장대(守禦將臺)를 오르고 내리며 생각하다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1894~1956) 선생이 광주시 초월읍 서하리(西霞里) 생가에서 30리 길을 걸어 다닌 남한산 초등학교에 닿아서며 해답의 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