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
손곡3교~ 손허산~ 안산(치마산)~ 말구리고개~ 광교산 체육공원~ 시루봉~ 종루봉~ 호항곡~ 조산계비~ 수잔교~ 서봉마을
병자년(1636년) 12월 청(淸)의 침략으로 남한산성에 피신한 인조는 이듬해 1월 30일 삼전도에서 항복하며 전쟁은 끝납니다. 왕을 구하러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전라병사 김준룡(金俊龍 1586년 ~ 1642년) 휘하 박의(朴義)는 용인·수원 접경 광교산(光敎山 582m)에서 청 태조(누르하치) 부마(駙馬) 양고리<楊古利, 백양고라(白羊高羅)>를 포살(砲殺)합니다.
헤꾸니:
손허산(遜墟山 297m) 아래 고기동 낙생저수지(고기저수지) 물가는 태봉산·진재산 청군과 광교산 조선군이 대치한 최전선으로 병자호란 이후 헤꾸니라고 불렸습니다. '낮에는 허수아비를 세우고 밤에는 한 사람의 홰꾼이 수십 개의 횃불을 들고 좌우로 이동, 맞은편 산에 진을 친 청군들에게 수많은 군사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의병(疑兵)을 삼은 곳.'입니다.
[출처] 이석순 수지 향토문화 답사기 232~233쪽 발췌.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허목(許穆 1595∼682)의 기언(記言) 별집 제17권 김준룡 신도비명(神道碑銘)에는 “사방에 횃불을 벌려 놓아 마치 군사들이 있는 양 속여 놓고 야음을 틈타 몰래 군사를 이동하였다.”라는 명문(銘文)이 있습니다.
[출처]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최채기(역)
횃불 작전을 펼쳤다는 신도비 명문은 손허산 헤꾸니 전설을 사실로 뒷받침합니다. 일제 시절인 1919년 3월 29일 고기리에서 시작한 조선독립 만세행렬이 거쳐 간 길이 헤꾸니이고 현재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낙생저수지(고기저수지) 호수둘레길입니다.
호항곡 충양공 김준룡장군 전승지:
손허산·안산에서 말구리고개(傳馬峴 225m)로 내려와 광교산 체육공원에서 다시 오르기 시작해 광교산 정상 시루봉에서 20분을 쉬고도 종루봉(비로봉 490m) 망해정(望海亭)에서 또 쉬어야하니 분명 노년입니다. 종루봉에서 형제봉 방향 등산로 벗어나 짙은 안개로 으스스한 분위기 호항곡( 胡降谷 수원시 하광교동 산1-1) 바위 암벽에 병자호란 전승기념 음각자(陰刻字)가 있습니다.
忠襄公金俊龍將軍戰勝地’, ‘丙子淸亂公提湖南兵 勤王至此 殺淸三大將’
(충양공김준룡장군전승지 병자청란공제호남병 근왕지차 살청삼대장)
김준룡 장군은 호남 근왕병 2000명을 데리고 1636년 12월 27일부터 다음해 1월 7일까지 청병 5000명에 맞서 싸우며 광교산에서 청 대장 3명을 사살하는 승전을 거둡니다. 후일 정조 임금은 충양(忠襄) 시호를 내립니다. 실제 전승지는 남한산성과의 연락과 호응 거리등으로 호항곡이 아닌 용인 수지구 검드레산(260.1m)이 유력하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박의가 양고리를 쏘아 죽이다:
고창 출신 박의(朴義 1600년 선조 33년 ~ 1653년 효종 4년)는 매복 중 청나라 권력 서열 11위 양고리를 조총으로 명중시킵니다. 양고리는 청 태종(홍타이지)에게 총애를 받던 청군의 돌격장으로 홍타이지는 매부의 상 치르는 곳에 나와 통곡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출처] 유득공(柳得恭)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제6권 박의가 양고리를 쏘아 죽이다〔朴義射殺楊古里〕: 한국고전종합DB 한국고전번역원 김성애(역)
병자호란 230년 후 기사이지만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大東地志 1866년) 권2(卷二)에도 ‘(...淸將揚古利登山督戰, 俊龍麾下朴義砲殺之。’(...청장양고리등산독전, 준룡휘하박의포살지)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청과 조선의 조치:
<淸> 청에서는 양구리 시신을 다음날 거두고 저격한 조선 패잔병을 사로잡아 참(斬)해 양구리를 위한 제(祭)를 지냅니다.
[출처] 청사고(淸史稿) 다탁(多鐸) 열전3
→ 다탁: 양구리와 광교산 전투 참전한 청 황족 대장
<朝鮮> 박의는 공을 인정받아 종9품 평안도 권관(權管)이 되었습니다(년도 미상).
[출처] 디지털고창문화대전
엄한 조선군 포로 희생시켜 적당히 마무리한 청의 조치가 읽힙니다. 박의를 평안도 벽지 진보(鎭堡)를 책임지는 권관으로 보내 청의 보복을 예방한 조치라고 좋게 보아도 인조 2년(1624)에 이미 무과 급제한 인물을 하급 무관직 종9품으로 끝낸 조선의 인사는 논공행상도 아닙니다.
양고살재(楊古殺峴) 고개: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석정리에 박의가 양고리를 사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 붙인 양고살재(楊古殺峴) 고개가 있어 박의의 병자호란 광교산 전승 공적을 민중은 기억합니다.
일정:
08:00 동천동 손곡3교
08:40~08:50 머내정(휴식)/1.78km~1.8km
08:55~08:58 손허산 정상/2.07km~2.09km
09:36~09:38 손허산·안산 갈림 쉼터/4.09km
09:40~09:43 안산(치마산)/4.18km~4.2km
09:56~09:58 말구리고개/4.88km~4.5km
10:07~10:09 광교산체육공원/5.12km
10:48~10:50 수리봉/7.09km~7.14km
11:00~11:20 광교산 시루봉(휴식)/7.4km~7.45km
11:46~11:48 토끼재/8.37km
11:58~12:08 종루봉(휴식)/8.6km~8.62km
12:16 전승지(호항곡)입구/8.76km
12:19~12:26 김준룡장군전승지·비/8.83km~8.9km
12:45 비석 조산계/9.58km
13:13~13:16 LYS스포츠센터/수잔교/GICS/10.56km~10.6km
13:30 신봉동 서봉마을/12.02km
↓ 동천동 손곡3교:
손허산 산행로는 산악자전거 길로 유명:
손허산 전망정자(머내정):
날이 흐려 전망이 약합니다. 조선군 vs 청군 대치 개념:
우측 방점아래 흐릿한 선이 남한산성. 태봉산(청군), 진재산(조선군)으로 추정:
오늘 사진보다 상태가 좋은 과거 사진(1)입니다(화살표 표시 길이 횃불들고 의병계 펼친 헤꾸니):
물가에서 본 헤꾸니 길은 머내만세운동길(과거사진2):
손허산 정상:
만산 등정한 동북배하사 님의 몇년 전 표식:
안산(치마산) 가는 길:
손허산·안산(치마산) 갈림 쉼터에서 우측 2분 거리 안산(방점) 정상에 갔다 돌아와 좌측으로 진행하면 말구리고개:
안산(치마산 272.7m):
13,000산 오른 신상호님 띠. 안평님 띠도 있습니다:
철계단으로 내려와 차량 통행 하도록 확장한 말구리고개에서 우측으로:
말구리고개(傳馬峴 225m): 말은 크다는 뜻의 우리말이고 구리는 골(谷)의 변음이니 말구리는 큰 골짜기라는 뜻으로 그동안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산행여행기를 쓰며 자료들을 보니 청사고(淸史稿)에 ‘조선군이 말 1140마리를 남겨두고 수원 방면으로 퇴각해 획득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말구리고개가 판교를 거쳐 탄천 청군 진지로 이어지는 옛날 부터 빠른 길이니 전마현(傳馬峴 말구른고개)을 단순한 한자 차의(借意) 표기라고 할 수 없겠습니다. 1,140이라는 말 숫자에 의문은 있지만 다수의 말 들이 좁은 고개(위 아래 사진은 확장된 것)를 줄지어 넘다 쓰러지는 사고는 빈번했겠습니다:
말구리고개에서 640m 광교산체육공원:
택지개발로 산행로가 단절되 포장도로가 나옵니다:
수지꿈학교(동천로553번길 30)에서 산행로 재진입:
계단에 광교산 정상(시루봉) 1.7km 이정목:
등반 도중 좌우로 빠지는 샛길들 무시하고 직진:
수리봉(565m)은 전망이 뛰어난 곳인데 아쉽습니다:
광교산 정상 시루봉으로:
광교산 시루봉도 오늘은 전망이 없습니다:
시루봉에서 안개를 벗삼아 긴 휴식후 종루봉으로:
토끼재(직진해 비로봉 0.2km/좌측은 용인서봉사지, 우측은 임시폐쇄한 상광교 버스종점 방향):
짙은 안개로 전망은 없지만 종루봉(비로봉) 망해정에서 또 휴식:
망해정 최치원 전설:
형제봉 방향 등산로 140m 지점 우측 전승비 입구:
으스스한 분위기 골짝으로:
전승비가 숨은 듯 있습니다:
忠襄公金俊龍將軍戰勝地, 丙子淸亂公提湖南兵 勤王至此 殺淸三大將
충양공김준룡장군전승지 병자청란공제호남병 근왕지차 살청삼대장
전승지 입구로 회귀해 형제봉 방향가는 등산로에 용인시에서 설치한 긴 목계단이 있습니다. 광교산은 육산이지만 험합니다:
등산로 좌측에 조산계(한양 조씨 산) 표시석. 광교산 한 편 끝 자락에 정암 조광조선생 묘소가 있습니다:
형제봉 방향 등산로를 벗어나 조산계 아래 묘지에서 좌측으로 진입합니다:
신봉동 수잔교로 하산하는 샛길입니다:
용인 산에서 자주보는 죽천님 산행 띠:
좋은나무기독학교(GICS) LYS스포츠센터 담장 우측으로 하산:
수잔교:
서봉마을로 내려오며 뒤 돌아본 종루봉. 방점이 전승지비 입구/전승지비는능선 넘어에 위치합니다:
서봉마을에서 형제봉~종루봉~시루봉(좌→우)이 카메라 한 컷에 동시에 잡힙니다. 이 장면 하나 담으려 버스종점에서 1.2km를 걸어 내려와:
서봉마을에 도착하니 날이 완전히 개었습니다:
⬇ 고종3년(1866) 가톨릭 병인박해 때 4인의 무명 신자가 손골에서 체포되어 수원으로 끌려가다 처형됩니다. 서봉마을 사람들이 버려진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둬 작은 언덕에 구덩이를 파고 돌로 덮어 돌무덤을 만들어 준 곳입니다. 1976년 미리내 성지 무명 순교자 묘역으로 옮겼다가 2013년 11월 22일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님 참관하에 동천동 손골 성지로 다시 모셨습니다:
2018년 손골성지에서 찍은 무명순교자 합장묘 사진:
서봉마을회관 버스정류장/용인 수지구 15-2 마을버스 운행(법륜사 ~ 수지구청역 ~ 죽전역 vv):
손허산과 전원주택 아래 낙생저수지(고기저수지) 물가가 헤꾼이. 안산(좌 방점) 바라산(우 방점):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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