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沃川旅行

沃川旅行(10): 용목의 외고조부(상)

맑은공기n 2017. 1. 22. 15:03

전해 오기로는 외가는 옥천에서 큰 양반 이었는데 동학란 때 동학군들이 옥천군 군북면 용목외고조부 댁을 침입하여 외고조부님은 신발도 못 신고 급히 피신하셨으며 식량, 가재도구 일체의 피탈은 물론 집도 톱으로 썰어버려 부득이 옥천 구읍으로 이사하였으며 외고조부님은 그 직후 충격으로 돌아가셨고 외가는 망했다는 요지였습니다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는 마음속으로 양반과 농민의 계급투쟁으로 동학혁명 때 농민들에게 보복당하셨구나가 솔직한 느낌이었습니다.

 

작년 뿌리여행후 외가 쪽으로도 관심을 갖게 되며 외가의 원근거지였다는 용목을 찾게 되었습니다. 졸졸 흐르는 조용하고 물 맑은 서화천(소옥천)을 따라 걸으며 금빛 모래사장과 맑고 푸른 넓은 냇가 건너편 병풍바위와 숲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고풍스런 이지당<참고: 옥천여행(12)  이지당 길>을 지나 반시간만(1.6km)에 도착한 용목은 한가하고 청정한 곳으로 걷기여행을 즐기기에는 옥천은 물론 전국에서도 뛰어난 코스로 손색없는 곳이었습니다.

 

 

용이 목욕을 한 龍沐龍木으로 변형 표기됐다는 용목(龍木)마을은 나지막한 뒷산을 배경으로 마을 앞을 흐르는 잔잔한 물결은 앞의 드높은 환산(고리산 581.4m)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의 산수화 한 폭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기름진 옥토에서 소출되는 풍성함을 따라 술집도 몇 곳 있었고, 마을 주민들이 함께 놀이를 할 정도로 큰 백사장도 있었으나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대부분이 수몰, 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 이제는 50 세대 정도 거주하는 작은 마을입니다.

 

제가 찾은 용목(龍木)은 동학군들의 약탈과 연관시키기 어려울 만큼 청정하고 아름다운 곳 이었기에 이런 곳에 자리 잡으신 외가 조상님들의 안목에 감탄, 외고조부님(송병찬 宋秉瓚 1837)에 대해 조사를 시작하며 제일 먼저 주목한 것은 외고조부님은 1891년 문과급제(증광시 갑과 장원)이후부터 1906년 낙향 하실 때 까지 한양에서 관직에 계셨기에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현장에서는 비켜나 계셨다는 분명한 사실 이었습니다.

 

기타 자료와 조선실록 등을 살펴보니 외고조부님은 을사늑약(乙巳勒約, 1905.11.17)이 맺어진 것에 대한 울분을 상소한 후 궁내부특진관(종2품)을 사퇴하며 옥천 향리로 낙향 중, 역시 국권피탈에 통분하여 대전에서 한양으로 올라와 고종황제와 백성과 유생들에게 유서를 남겨놓고 독약을 마시고 자결한 종형(從兄) 송병선(宋秉璿 1836)을 항거하지 못하도록 경무사(警務使) 윤철규(尹喆圭)가 강제로 대전 고향으로 내려 보낸 사연과 윤철규를 처벌해줄 것을 청하는 상소문을 올렸다.”는 또 다른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송병선(宋秉璿)을 연구하며 외고조부님 종제(從弟)인 송병순(宋秉珣 1839)을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송병순(宋秉珣)은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충복 영동에서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을 주도했던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민영기, 권중현 등 오적(五賊)을 성토하는 격문(檄文), 토오적문(討五賊文)을 지어 전국유림에게 선포 국권회복을 호소하여 의병활동의 촉진제가 되었으며, 일본 헌병대가 은사금(恩賜金)으로 회유하려 하자 이를 거절 대의를 지켜 순국할 것을 결심, 유서를 남기고 음독 자결하셨습니다.

 

대전 동구 용운동에는 송병선,송병순애국지사 형제를 기리는 사당인 문충사(文忠祠)가 있으며, 두 분은 큰아버지인 송달수(宋達洙)옥천 문하에서 성리학과 예학을 수학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연배가 비슷한 송병찬(宋秉瓚_ 宋達洙)과는 사촌 형제이자 동문수학(同門受學)인 셈입니다.

 

이상을 종합하여 볼 때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며 대전 유생 송병선이 항거하며 음독자살 하였고, 고종의 최측근 이었던 궁내부특임관(宮內府特任官) 송병찬은 을사보호조약을 거부 옥천으로 낙향하며, 종형 송병선을 대전으로 강제 압송한 을사오적 하수인 윤철규를 성토하였고, 종제 송병순(영동거주)의 토오적문(討五賊文) 격문은 을사오적을 정면으로 겨누었기에, 충청유림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사촌형제 세분은 집권층인 을사오적과 일제로부터 제거대상이 되어, 용목(龍木)으로 낙향한 외고조부의 가택을 동학군으로 위장 약탈, 외고조부님(宋秉瓚)이 충격으로 돌아가시게 기획한 것이 사실로 판단되는 정황입니다.

 

향토사학자인 옥천신문사 이안재 사장에 따르면 동학혁명 실패 후 의병으로 전환한 동학농민군은 탐관오리 양반들만 응징하였기에 당시 옥천.영동.보은.대전 일원에서 잘 알려진 산림처사(山林處士) 수종재(守宗齋) 송달수(宋達洙)의 아들로 대사성(大司成)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등 고위관직에 계셨음에도 후손에게 물려줄 전답 하나 없이 청빈했던 송병찬(宋秉瓚)은 동학의 응징 대상이 될 수 없었고, 옥천 관아에서 한 시간 거리 인 용목에 나타난 도당들이 톱으로 집까지 썰어버리고 가는 여유까지 부렸음을 비추어 볼 때, 이 는 유격대군((遊擊隊)의 신속한 행동과 이동의 원칙에도 위배되고 동학농민군 봉기는 1894년이며, 송병찬 외고조부님의 낙향은 1906년이니 년대적으로도 일치하지 않아 동학군의 난동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일제와 을사오적에 타협하지 않고 항거한 사촌형제들의 후손은 일제하는 물론 해방 후에도 힘든 세월을 지내야 했지만<옥천여행(8) 옥천역 의 아저씨>, 송병선의 고손자 송영무대장(26대 해군참모총장)은 대한민국의 국방을 튼튼히 하여 보국훈장 천수장으로 빛나며, 송병찬의 고손 송영만(효형출판대표, 파주출판도시협의회장)은 간난신고 끝에 예술과 인문분야 전문출판인으로 2014한국백상 출판문화 제작상을 수상, 일산출판문화단지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역량을 펼치고 있습니다.

 

끝으로 첨언하면 효형출판 송영만대표는 저의 외사촌이니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지만, 전해군참모총장 송영무대장 관련은 지난여름 대전 용운동 문충사(文忠祠)를 지키는 송영문사무장(송영문대장 家兄)을 뵙고서야 비로소 알았으며, 마음만 먹었으면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었음에도 우국(憂國)의 험난한 길을 택하신 송병찬 외고조부님과 송병선.송병순 형제분님들의 선비정신에 깊은 경의를 올립니다. 대청호 수몰로 용목(龍木)주민들의 여러 추억들과 함께 물속에 잠겨 버렸을 외고조부님의 의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110여년이 지나서라도 추론천명 할 수 있었기에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2014. 11 

 

용목 가는 걷기 길 안내

* 옥천~대전 광역버스 607(12분 간격 운행) 옥천역 앞, 시내버스터미널에서 탑승

   10분 후 정류장 환경사업소 앞(이지당 입구)하차 걷기 1.3km 이지당 ~ 1.6km 용목 도착

  <주의: 대전~옥천 607번을 타면 약 20분 소요되며 이 경우 ‘환경사업소 앞입구 하차 불가>

 

 

* 옥천시내버스: 옥천터미널에서 56번 보오리행 용목리 경유

                        옥천터미널  06:40  08:30  13:00  18:40

                     보오리       07:00  08:50   13:30    보오리~용목리 5분 소요

 

                                                - 근거자료 _

(조선왕조실록:윤철규처벌과 을사늑약 파기와 오적처벌을 주창한 송병선상소문 이행을 촉구하는 상소 )

高宗 47, 43(1906 丙午 / 대한 광무(光武) 10) 218(陽曆) 송병찬이 상소문을 올리다

 

從二品宋秉瓚疏略:

去年冬事變, 自剖判以來所未嘗有者也苟粗具彝性者, 孰不欲身殉社稷, 以伸大義於天下哉? 況臣先從兄祭酒臣秉璿, 不但遭値聖明, 原蒙禮遇, 國存與存, 國亡與亡, 卽臣家世守底義理也憤惋痛迫, 直欲隻手障瀾, 一死報國, 哭訣于家廟, 抱疏上京, 叫閽請對者屢日而形格勢禁, 未蒙實施, 至於箚陳所懷, 進伏殿庭所謂尹喆圭者, 誑誘臣從兄, 迫命載車, 驅至太田而後已, 稱以奉勅保護云! 矯旨侮賢, 眼無國法至此而不誅, 法將何施? 臣從兄以志未見暴而貽羞朝廷, 就旅次草置遺疏, 囑門人曰: “吾生無以報國, 死有餘辜我死, 以時服藁葬, 愼勿請諡雖貤贈有命, 亦勿祗受乃從容就盡嗚呼悲夫! 遺疏則門人已疏陳上徹而近伏聞有爵諡之典綽楔之旌, 所司奉勅於移居邑云天思所覆, 闔家對泣, 而第臣從兄臨終遺囑, 誠不忽孤伏乞皇上哀之憐之, 勿以臣從兄已死而棄其言, 廓揮乾網, 大行天討, 亟銷脅約, 以救國勢於將亡, 臣從兄未瞑之魂, 必當含恩知榮於地下, 不僅比貤贈已也乞寢隱卒諸命, 俾遂臣從兄遺意焉

批曰: “國典自在, 不可但言遺意, 亦旣申諭, 不必如是更提矣

                 

고종실록 > 고종 43(1906) > 고종 432> 고종 43218일   

고종 47, 43(1906 병오 / 대한 광무(光武) 10) 218(양력) 7번째기사

송병찬이 상소문을 올리다

 

2품 송병찬(宋秉瓚)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지난해 겨울의 변란은 천지가 생긴 이래로 일찍이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진실로 인간의 본성을 조금이라도 가진 자라면 누가 몸소 사직에 목숨을 바침으로써 천하에 대의(大義)를 펼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신의 죽은 종형(從兄) 좨주(祭酒) 신 송병선(宋秉璿)은 다만 훌륭한 폐하를 만나 두터운 예우(禮遇)를 받았을 뿐만 아니니, 나라와 함께 생사존망을 같이하는 것은 바로 신의 집안에서 대대로 지켜온 의리입니다. 울분과 통분으로 직접 한 손으로 파란을 막고 한 번 죽어 나라에 보답하고자 하여 가묘(家廟)에 영결하고는 상소문을 가슴에 품고 서울에 올라와 대궐문에서 호소하며 청대(請對)한 것이 여러 날이 되었는데, 어려운 형세를 만나 성상의 접견을 받지 못하자 차자로 소회(所懷)를 진달하고 대궐 뜰에 나아가 엎드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른바 윤철규(尹喆圭)란 자가 신의 종형을 거짓으로 꾀어 강제로 수레에 태워 태전(太田)까지 쫓아버리고 말았는데, 칙명을 받들어 보호한다는 말로 핑계를 대었다고 합니다. ! 황제의 명이라고 거짓으로 속이고 어진 사람을 모욕하는 국법을 무시한 것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주벌하지 않으니, 법을 장차 어디에 쓰겠습니까?

신의 종형은 자기의 뜻을 드러내지 못하고 조정에 수치를 끼쳤다고 하여 여관에 나아가 유언 상소문을 초해 두고는 문인(門人)들에게 부탁하기를, ‘나는 살아서 나라에 보답한 것이 없으니, 죽어도 남는 죄가 있을 것이다. 내가 죽으면 지금 옷차림에다가 거적으로 싸서 장사를 지내고 절대로 시호를 청하지 말라. 설사 추증하는 명이 있어도 공경히 받지 말라.’라고 하고는 마침내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 슬픕니다. 그 유언 상소문은 문인들이 이미 상소하였으니 폐하에게 알려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삼가 벼슬을 추증하고 시호를 주는 은전과 정문의 특전이 있는데 소란하던 고을로 옮겨가 시행하라는 칙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늘같은 성상의 은혜가 베풀어짐에 온 집안이 눈물로 맞아야 하겠습니다만, 신의 종형이 임종 때에 남긴 부탁을 진실로 차마 저버릴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황상께서는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 신의 종형이 죽었다고 해서 그의 말을 버리지 말고 확고하게 결단을 내려 크게 하늘의 토벌을 시행하며 빨리 강제로 체결된 조약을 폐지함으로써 망해가는 나라의 형세를 구원하여 주소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는 신의 종형의 영혼이 반드시 성상의 은혜를 품고 지하에서의 영광으로 알 것이니, 단지 추증하고 마는 데에 비할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은졸(隱卒)의 여러 명을 거두시어 신의 종형이 남긴 뜻을 이루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나라의 법이 스스로 있으니 그저 유언만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이미 거듭 칙유하였다. 굳이 이렇게 다시 제기할 필요가 없다.”

하였다.

원본514711B영인본3423면       

    

윤철규의 경무사 승진:

대한제국아 망해라 백성들의 눈으로 쓴 살아있는 망국사

             

김방   '이동휘 연구'

Ⅱ. 成長過程과 武官時節

p59.

 "1902년 강화도 진위대장 윤철규가 병사들의 요식비를 착취하는 부정을 저지
르자, 이동휘는 윤철규를 대신하여 강화도 진위대장으로 전출을 명받았다"'

송병찬: 한국학 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

                http://people.aks.ac.kr/front/tabCon/ppl/pplView.aks?pplId=PPL_6JOd_A1837_1_0031370 

송병선: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86%A1%EB%B3%91%EC%84%A0              

송병순: 백과사전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2s2901a 

 

경무사 윤철규: 대한제국아 망해라 (310 페이지)    윤효정 지음 | 박광희 옮김 | 다산초당 | 2011.12.21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DGT4808963704661&keyword=%EA%B2%BD%EB%AC%B4%EC%82%AC+%EC%9C%A4%EC%B2%A0%EA%B7%9C&barcode=4808963704661&sortType=relevance&preTab=02&prePage=310#tab_p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