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沃川旅行

沃川旅行(8): 옥천역의 아저씨

맑은공기n 2017. 1. 19. 21:28

                                                                                

옥천역 플랫폼에 서면 외가로 어머니 사촌 아우님인 송성호 아저씨가 생각납니다.

 

아저씨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9대손으로 을사조약 후 음독 자결,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된 애국지사 송병선(宋秉璿)의 사촌형제; 송병찬(宋秉瓚_궁내부특진관 宮內府特進官)의 증손이지만 조상님들이 청빈했고 일제에 아부하지 않었기에 궁핍한 양반가의 후손으로 어렵고 짧게 사신 분입니다.

 

1960년대초 방학에 옥천을 가면 반갑다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계곡에서 가재잡고 서화천(西華川) 냇가 바위에 붙은 올갱이(다슬기) 따고,  여름밤에는 모기에 쏘여 부은 제 몸의 상처들을 입으로 호호 불어주며 아파 해 주신, 언젠가 서울로 돌아 갈 적엔 옥천역에 나오셔서 동전 50원 짜리, 100원 짜리를 두 세 개 섞어서 쥐어 주시며 이별을 아시워한 젊으신 아저씨였습니다.

 

그 시절 짜장면 한 그릇값을 40원으로 기억하는데 아저씨의 100은 아마도 그분의 하루 품삯 또는 그 이상 이었을 겁니다만 중학생이 그 것을 헤아리지 못했다면 철이 없었던가요?

 

그것이 성호아저씨와의 마지막 작별이었습니다당시 20대 초반 나이의 아저씨는 일터로 나가 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치셨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옥천역에 서면 아저씨의 얼굴이 선명히 떠올라 그립고 이제는 70을 앞둔 나이에 스무 살 남짖 아저씨가 건내준 100원짜리 동전에 함축(含蓄)된 의미를 이해하기에 마음이 다시 아파집니다.

 

옥천역을 떠날 때 마다 항상 기도 드리는 것은 아저씨의 영혼이나마 편한 하시도록 하나님에게 매달려 보는 것입니다.           

 

201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