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봉 5

龍仁旅行(230): 수지구 응봉 또는 매봉, 독바위

경로: 버들치고개~ 235봉(가산봉, 매봉)~ 매봉샘~ 응봉(235.6m)~ 응봉(196.2m)~ 독바위 응봉 또는 매봉: 군부대가 주둔한 가산골(架山谷)과 매봉 약수터가 있는 응골(鷹谷)을 잇는 능선에 응봉(매봉 鷹峰)이 있습니다. 멀리 상현동 소실봉에서 보아야 산줄기와 봉우리가 뚜렷합니다. 용인 상현동, 성복동, 수원 이의동 주민들이 즐겨 찾는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널려있습니다. 매봉 이름 어원은 일반적으로는 매가 깃들어 생긴 이름이라는 설, 그게 아니라 ‘산을 뜻하는 옛말 ’매‘의 변음에 응봉(鷹峰), 응골(鷹谷), 매봉(鷹峰) 한자를 차용하고 스토리를 덧붙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출처: 용인시민신문 응골(鷹谷)과 모리(山里) 2006. 06. 08 정양화 응봉(매봉)또는 매봉(응봉) 어원도 논쟁..

禮山旅行(44): 팔봉산(上) 예당호 출렁다리·팔봉산·응봉 운곡리

봄이 다 지나가기 전, 봉수지맥(鳳首枝脈) 팔봉산(八峰山 208m)에 올랐습니다. 해발고도 200m 전후에 불과한 8개 봉우리가 이어지는 낮은 산이지만 응봉 초교에는 팔봉관이 있을 정도로 응봉면 사람들의 애정을 담는, 산 너머에는 2021~2022 한국인이 꼭 가 봐야할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예당호 출렁다리가 있습니다. 산행코스는 1)예당호 출렁다리 입구인 후사리(後寺里)에서 정상을 올랐다 원점 회귀하거나 2)예당호 입구에서 팔봉산 정상을 오르고 응봉(운곡리, 또는 증곡리)으로 하산, 또는 역으로 3)응봉에서 팔봉산 정상을 오르고 예당호로 하산이 일반적입니다. 1번은 예당호 주차장에 주차하고 산행에 나서는 원점회귀로 시간절약형입니다. 팔봉산 봉우리 전체 모습도 보고 과수원, 논길을 걷는 소박함도 누..

龍仁旅行(167): 수지구 아담한 산(Ⅲ) 응봉

경로: 평은재 입구~ 응봉~ 매봉샘~ 가산봉(매봉)~ 광교로3거리~ 광교역(경기대) 성복동 버들치고개에서 상현동 조광조 선생 묘소까지 이어지는 광교산 산줄기에 매봉, 응봉, 가산봉(매봉)이 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멀리 상현동 소실봉에서 보아야 산줄기와 봉우리가 뚜렷합니다. 용인 상현동, 성복동, 수원 이의동 주민들이 사랑하는 산책성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널려있습니다. 응봉(鷹峰)이나 매봉(鷹峰)이나 다 같은 의미인데 굳이 구별해서 쓰입니다. 매가 깃들어 생긴 이름이 아니라 산을 뜻하는 옛말 ‘매’의 변음이 세월 따라 응봉(鷹峰), 응골(鷹谷), 매봉(鷹峰) 한자를 차용하고, 스토리를 덧붙였다고 용인 향토문화원장 정양화 선생은 설명하십니다. * 출처: 용인시민신문 2006. 06. 08 정양화_ 응골..

龍仁旅行(135): 가산봉 · 응봉 · 소실봉

경로: 성복동 버들치고개~ 매봉(가산봉)~ 매봉샘~ 응봉~ 상현동 소실봉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들을 오르는 것도 재미있지만 오늘은 가까운 광교산 줄기에 낮게 솟은 가산봉·응봉·소실봉을 찾습니다. 한남정맥을 이어주는 봉우리들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 버들치고개(175m): 성복동 경남아너스빌 버스정류장~ 버들치고개 0.59km 용인과 수원의 경계로 옛날 이 고개 양쪽은 버들이 무성했던 사실 이외에 수원과 용인 장꾼들이 수원장과 낙생리 판교장을 보러 오간 길이었으며 수원의 고등학교로 진학한 수지 농가의 학생들이 하숙비 아껴 부모 부담 줄여주려 통학한 길입니다. 수원 광교신도시로 내려가는 길은 매우 깁니다. ◆ 가산봉(稼傘峰 235m): 버들치고개~ 가산봉 0.72km 버들치고개에서 15분 거리 낮은 산꼭대..

龍仁旅行(64): (속) 수지 상현동 역사의 향기

글을 쓰는 게 더 어려워집니다. 처음에는 용인·수지 이곳저곳 소소한 것을 기록하는 여행·산행기라는 쉬운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회수(回數)가 거듭하며 부족한 필력을 절감하고 어떻게 지역을 잘 표현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하게 됩니다. 용인시가 한옥 어린이도서관, 공연장 등이 들어설 상현동 심곡서원(深谷書院) 역사공원을 2025년 까지 조성한다는 좋은 소식입니다. 효종1년(1650년) 지방 유림(儒林)의 공의로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을 설립하였습니다. 선생 사후(死後) 정확히 500년 동안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 주거·교통·통신 등 바뀌지 않은 것 없지만 수지의 남쪽 관문 상현동(上峴洞) 심곡서원이 창달(暢達)한 한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