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평화와 공존, 공생이라는 성리학적 가치를 바탕으로 조선은 19세기 전반까지 큰 민란이 없이 운영되어 왔으나 농민에 대한 수탈의 증가와 함께 19세기 후반부터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무너지기 시작 1894년 고부군수 조병갑에 저항하여 갑오동학혁명이 일어났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군의 1차 봉기에도 농민들의 폐정개혁(弊政改革)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청나라와 일본의 외세 개입에 전라도지역의 남접(南接)과 충청도지역의 북접(北接)이 연합하여 2차 봉기를 일으키게 되었으며, 북접을 이끌던 동학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이 기포령(起包令, 총궐기)을 내린 곳이 옥천군 청산면 한곡리 문바위골(문짝 모양 바위)이었습니다. 옥천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가 있는 곳이기에 동학혁명 120주년, 60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