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 6.05km
동문(좌익문) ~ 망월봉 ~ 벌봉 ~ 남한산 ~ 한봉 ~ 큰골
일주일 만에 다시 찾은 남한산성에 철쭉(연달래)가 아름답게 피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철쭉이 장관을 이루겠습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가 홍이포(紅夷砲)를 끌고 올라와 행궁을 향해 포를 쏘아 전쟁 종결을 재촉한 봉우리들을 탐사하고 큰골로 하산합니다.
◆ 망월봉(501m):
망월사 뒷산이 인조 2년(1624년) 설치한 동장대터인 망월봉(남한산 서봉)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청태종이 올라 성안을 살펴봤다고 하나 병자호란 중 청병이 성내로 진입한 사실이 없으므로 성내인 망월봉 주봉 동장대터가 아닌 성외의 망월봉 일대 조감하기 좋은 어느 곳 인 듯합니다.
1) 인조실록(인조 15년 1637년)에 망월봉이 아닌 '망월봉 아래(望月峯下)'에서 대포를 발사 하였다는 기록과 2) 숙종실록(숙종12년 1686년)에 적이 벌바위(蜂巖)을 점령하고 대포를 쏘았다는 기록, 3) 이긍익<李肯翊 1736(영조 12)~1806(순조 6)> 의 연려실기술에 '적이 망월대(望月臺) 밖에 대포를 설치하니'라는 기술로 보아, 대포 발사 장소는 다른 곳이 아닌 동일 지역을 언급한것으로 생각됩니다. 망월봉과 벌봉은 인접지역입니다.
→ 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1월 1일
○虜汗合諸軍, 結陣于炭川, 號三十萬, 張黃傘, 登城東望月峯, 俯瞰城中。
청나라 한(汗)이 모든 군사를 모아 탄천(炭川)에 진을 쳤는데 30만 명이라고 하였다. 황산(黃傘)을 펴고 성의 동쪽 망월봉(望月峯)에 올라 성 안을 내려다보았다.
→ 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1월 24일
○賊放大砲於南格臺、望月峯下, 砲丸飛落行宮, 人皆辟易。
적이 대포(大砲)를 남격대(南格臺), 망월봉(望月峯) 아래에서 발사하였는데, 포탄이 행궁(行宮)으로 날아와 떨어지자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며 피하였다.
→ 연려실기술 제25권 / 인조조 고사본말(仁祖朝故事本末): 한국고전번역원 | 안병주 (역) | 1967
병자노란(丙子虜亂)과 정축 남한출성(南漢出城)
○ 24일 아침에 적이 또 남성(南城)을 침범하고 지난 저녁에도 또 곡성(曲城)을 침범하였는데, 구굉(具宏)이 모두 물리쳐 죽인 적의 수가 또한 많았다.
○ 며칠 전에 적이 망월대(望月臺) 밖에 대포를 설치하니 신경진이 사졸들에게 천자포(天字砲)를 쏘도록 하여 오랑캐의 장수와 졸개 몇 명을 맞추니, 적이 흩어져 갔다.
◆ 벌봉(512.5m 蜂巖):
현지 안내문에는 ‘이 지역을 청나라 군에 빼앗겨 화포로 성안까지 포격할 수 있었다.’고 소개합니다. 인조실록(1637년)에는 벌봉에서 포격한 기록이 없습니다. 전쟁후 49년이 지난 숙종실록(1686년) 기록과 구전(口傳)을 바탕으로 적은 안내문입니다. 위의 실록과 연려실기술의 망월봉 아래(望月峯下)는 벌봉 일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 숙종실록보궐정오 17권, 숙종 [보궐정오실록] 12년 3월 13일
○南漢城東, 有一峰, 名蜂嚴, 俯臨城中, 其下洞壑深廣, 賊雖藏兵而城中無由知之, 丙子之亂, 賊據此峰, 連放大砲, 城堞盡壞,
남한 산성(南漢山城) 동쪽에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벌바위(蜂巖)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성 복판을 굽어보고 있는데, 그 아래는 구렁이 깊고 넓어서 적(賊)이 병졸을 숨겨 두더라도 성 안에서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병자 호란(丙子胡亂) 때에 적이 그 봉우리를 점령하고 대포를 연달아 쏘았기 때문에 성첩(城堞)이 모두 무너졌습니다.
◆ 한남산(漢南山 522m):
남한산성 수어장대(청량산 497m) 보다 높은 한남산 정상은 문화재 정비사업으로 100m 떨어진 곳에 정상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정수리는 출입불가라 산행 고도감(高度感)은 떨어지며 정상석에서 우측으로 진행해야 한봉가는 길입니다.
◆ 한봉(漢峰 418.1m):
제16 암문에서 10분 거리인 노적산 2.0km 이정표에서 길이 갈라져 방향 표시 없는 곳으로 진행합니다. 폐성곽과 나란히 이어지는 길입니다. 병자년에 청 태종이 올라 한봉(汗峰)이라고 불렀습니다. 적이지만 지존의 몸으로 엄동설한에 산을 오른 리더십이 대단합니다.
→ 숙종실록 45권, 숙종 33년 5월 15일
○此所謂汗峰, 卽丙子汗所登處也。
이것이 이른바 한봉(汗峰)이니, 곧 병자년에 한(汗)이 올랐던 곳입니다.
→ 정조실록 8권, 정조 3년 8월 3일 (정조는 남한산성에 친임)
○聖祖御此宮, 汗軍登汗峰, 發大砲, 砲丸擊殿柱。
성조(聖祖)께서 이 궁에 계실 때에 한군(汗軍)이 한봉(汗峰)에 올라 대포(大砲)를 쏘아서 포환(砲丸)이 전주(殿柱)를 쳤다.
일정:
11:05 동문 망월사·장경사 버스 정류장
11:15~11:21 망월사/0.53km~0.71km
11:27 망월사·장경사 중간 지름길/1.05km
11:49~11:55 망월봉(동장대터)/1.85km~1.93km
11:57 제3 암문/2.2km
12:07 한봉 갈림목/2.46km
12:11~12:33 벌봉/2.71km~2.9km
12:40 한봉 갈림목 회귀/3.15km
12:43~12:45 남한산/3.29km
12:52 제15 암문(엄미리 갈림목)/3.57km
13:08 제16 암문(한봉 0.6km 이정목)
13:17~13:20 노적산·한봉 갈림/4.42km~4.49km
→ 노적산 2.0km 이정목/한봉 방향표시 없음.
13:28~13:37 한봉/4.72km~4.89km
14:03 큰골 돌조각공원/5.57km~5.79km
14:15 버스정류장 큰골/6.05km
↓ 동문에서 출발:
드라마 촬영?
망월사 자항문:
뒤 현판은 자항문(慈航門):
망월사 자항문에서 170m 내려와 장경사 방향으로:
장경사 방향 170m 도로 좌측에서 샛길로:
철쭉(연달래) 잔치:
제3 암문 우측 동장대터(망월봉)으로:
망월봉(동장대터):
망월봉에서 한남산 뷰:
한봉 뷰:
제3 암문으로 회귀 성 밖으로:
봉암성으로(남한산성 3외성, 봉암성, 신남성, 한봉성):
허물어진 봉암성 벽에 소나무:
한봉갈림목에서 좌측 벌봉으로(우측은 남한산방향):
벌봉은 좌측 큰 암봉, 우측 작은 암봉으로 구성:
큰 암봉 안내문:
측면에서 본 큰 암봉:
큰 암봉 정상부(벌봉):
큰암봉에서 조망 하남시:
작은 암봉:
작은 암봉에 봉암신성 신축비:
한봉갈림목으로 되돌아 나와 한남산으로:
병자호란 때 조선인 포로들이 홍이포 운반하느라 딲은 길? 철쭉이 원혼들을 위로 하는 듯!
남한산 정상석 우측으로 가야 한봉:
좌측 한남산 정상 문화재 복원사업 펜스 따라:
한봉(좌측 방점)과 검단산(우측 방점. 공군 안테나)에 청군이 홍이포대를 구축했습니다:
제15 암문으로 나갑니다:
암문으로 나오면 우측은 엄미리 방향/한봉은 직진. 엄미리 고개가 부르기 쉽게 은(미리)고개로 변음:
폐성벽 따라가다 제16 암문/ 문화재 복원사업들 하고 있습니다:
계속 폐성벽 따라 갑니다:
노적산 2.0km 이정표. 한봉 표시 없슴(한봉 방향 이정표가 꼭 필요 한 곳. 까딱하면 노적산 방향으로 알바 합니다):
한봉 방향 표시가 없습니다:
벌봉 1.6km 이정표에서 직진하다 바로 우측 숲안에 한봉 정상석이 있습니다(이정목 ~ 한봉 정상석 거리 30m):
한봉 정상석은 산매니아 작품/이 곳에 청태종이 올랐습니다:
철쭉이 축하하는 10,000산 산행 띠:
한봉에서 큰골 방향으로 하산:
흐릿한 발자국 따릅니다:
재해방지 사업중인 큰골 계곡 넘어. 가뭄으로 계곡에 물이 거의 없습니다:
돌조각 공원 입니다:
돌조각 공원 입구로 내려옵니다:
큰골 버스 정류장:
경로 지도:
광주 15-1 버스 시간표(광주역 ~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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