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은 “철마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것은 음사(淫祀)라 크게 어리석은 일이라고.”언급하셨습니다.‘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 산 등마루에서 쥐만한 크기의 철마가 나와 철마산(鐵馬山)이라고도 불리는 산이 쇠말산(86m)입니다. 마재마을에 나란히 서 있는 쇠말산과 유산(酉山) 중에도 선생의 유택은 자택 뒷동산인 유산(酉山)에 모셔져있습니다. 그러나 한양에서 관직에 올랐을 때나 유배 기간에도 철마산의 이름을 딴 철마초부(鐵馬樵夫 쇠말산 나뭇군) 등의 자호(自號)를 쓰시며 고향을 그리워하셨습니다. 다산의 맏아들 정학연(丁學淵 1783~1850)은 유산(酉山), 철마산초객(鐵馬山樵客) 같은 호를 사용하였으니 부자의 고향 사랑이 대 이어 각별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