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병과 함께 걷는 여울길➃>
환상적인 대청호 물길 따라 걸은 여울길
옥천신문
2011.06.03.
이안재 기자 ajlee@okinews.com
막지리 사람, 강물 못건널 때 심천으로 돌아가던 길을 다시 밟다
"힘들어요" 그래도 김밥 싼 취나물 향에 취하고, 대청호 절경에 반한 여울길

■군북면 소정리-막지리-두룽구치여울, 장자발여울-높은절-높은절 산등성이-안내면 현리 구간
"저기 보이는 골짜기마다 전부 여울이 있었다고 보면 돼요. 두룽구치여울에다가 장자발여울, 앞선여울까지 한 개씩은 여울이 다 있었으니까."
군북면 소정리에서 막지리로 건너는 배를 탄다. 이 배는 막지리 이수길 이장이 움직이는 배다. 막지리 사람들의 발이 되고, 대청호의 자가용이다.
소정리 선착장에서 올라탄 배는 우리가 가려고 하는 여울 자리를 찾아 대청호를 거슬러 안내 쪽으로 향한다. 1km 가까이 배가 운행됐을까? 배는 대청호 한가운데 멈춰 엔진을 껐고 이수길 이장의 말은 일행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여울을 건너던 당시로 빠져들게 한다.
■ 흔적은 없지만 여울 위에서 추억을
1973년 이전 안내면 소관이었던 막지리는 면사무소에 행정 일을 보러 가려면 안내면 소재지를 가야 했다. 소재지로 가는 길은 마을 사람들에 따라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한 가지가 여울을 건너는 길이었고, 또 한가지가 금강변을 따라 안내면 장계리 관광단지 앞에서 부리기재라고 하는 고개를 넘어 현리로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부리기재가 높았다. 열두 구비라고 했다. 그래서 힘이 있고, 젊은 사람들은 주로 부리기재를 이용해서 안내면을 다녔고, 일반 주민들은 여울을 두 번 건너 안내면을 갔다.

▲ 막지리 사람들이 안내면을 가기 위해 다녔던 부리기재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내려다 본 대청호 전경. 이곳은 최고의 절경을 선사하는 전망대이다.
이수길 이장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니 과연 골짜기가 있었고, 두룽구치여울이라고 했다. 여울 이름이 왜 그렇게 붙었는지는 알 수 없다 했다.
"이 여울이 폭이 아주 넓었어요. 대신 깊이는 얕았고요. 안내면에 선 안내장을 보러 가는 길도 이 길이었으니까. 안내 소장을 가려면 여기로 해서 소를 몰고 다녔어요. 여기에는 살을 매서 고기를 잡았어요. 그때는 고기도 많았지. 모래무지도 손바닥보다 더 컸고, 꽃고기는 물론 많았고, 쏘가리도 많이 잡았어요."
이 이장이 기억하는 것은 또 있다. 막지리 쪽 여울 끝에 발동기를 설치했다. 막지리 물이 귀해 농토에 물을 잘 대지 못했을 때, 발동기로 물을 퍼올리고, 수로를 만들어 막지리 들에 물을 댔던 발동기가 여울 끝에 있었다. 수로를 만드는 일, 발동기를 설치하는데는 미국 원조로 이루어진 480양곡이 지원돼 이루어진 일이었다.
사람들은 두룽구치여울을 건너서 소정리를 거쳐, 4월 여울길 일행이 탐방한 장계리 관광단지 소탄바우여울을 건너 면 소재지로 갈 수 있었다.

▲ 여울코스 지도
"장자발여울은 물이 깊었어요. 막지리 사람들이 물건너로 농사를 지으러 다니기도 했고, 나무를 하러 가기도 했어요. 또 당시에 내가 마을에서 방앗간을 했는데 소정리 사람들이 방아를 찧으러 장자발여울을 건너왔어요."
소정리 장자발 마을에는 40~50년 전 당시 세 가구 정도가 거주하고 있었다. 막지리 사람들이 나무를 하러 다녔던 산은 소정리 뒤에 우람하게 자리잡은 해발 454m의 이슬봉이었다. 막지리 사람들은 농사지으러, 소정리 사람들은 방아를 찧으러 다녔던 여울이다.
또 한 곳의 여울. 앞선여울은 막지리 사람들의 빨래터가 있던 곳. 자연스럽게 마을 아낙네들의 풍성한 얘기가 가득했고, 마을 개똥이네, 소똥이네 얘기도 여기서 퍼져나갔을 여울이다.
■ 그많던 금강참게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이들 여울에서 많이 잡았던 것이 금강참게다.
금강참게는 여울이 깊었던 장자발여울을 제외하고 두룽구치여울과 앞선여울에 수수대를 엮어 물에 잠기게 해놓으면 참게들이 수수를 뜯어먹느라고 달려들 때 잡았다. 참게 크기도 만만찮아서 손바닥보다도 더 큰 참게가 얼마든지 있었다.


이렇게 잡은 참게로 마을에서 작은 잔치가 벌어졌다. 팔아서 소득을 한다는 개념보다는 주민 몇몇이서 참게를 잡은 날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참게를 요리해 먹는 잔치날이 되었다. 그많던 참게는 대청호가 막히면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어종이 되었다.
여울 설명을 들은 후 막지리 마을에 도착한 일행은 선착장에서 부터 올라오며, 막지리 수몰에 관한 얘기, 막지리 선돌, 마을유래비를 차례로 둘러본 후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가파른 경사를 올라, 장계관광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부리기재로 내려가는 등성이의 급한 경사를 미끄러지다시피 내려오는데 등산길만 6시간이 걸린 험한 행로였음을, 시작할 때는 대부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멋진 대청호 절경을 눈에 익히고, 마음으로 반하고, 사진기에 담을 수 있었음을 위안으로 삼을 수 있었음은 이날 여울길의 의미였다.

▲ 막지리 마을을 뒤로 하고 오른 해발 517m에 달하는 높은절에 위치한 삼국시대 성터. 아직도 축성 흔적이 남아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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