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이안재 기자의 정수병과 함께 걷는 여울길

<정수병과 함께 걷는 여울길 ①> 옥천장에서 대통수여울까지

맑은공기n 2025. 11. 6. 11:35

<정수병과 함께 걷는 여울길 >옥천장에서 대통수여울까지 되짚어 걸은 옥천장길

 

옥천신문 

2011.04.15 

이안재 기자 ajlee@okinews.com 

 

길가 산기슭엔 진달래, 생강나무꽃, 며느리재 주변엔 홑잎나물,

산은 봄의 향연을 시작하고, 금강은 옛길을 삼킨 채 유유히 흐르고

 

정지용생가 - 며느리재 - 대통수여울 - 옥천읍 오대리 보내마을

 

여울은 먹을 것 별로 없던 그 옛날부터 삶을 위한 양식 창고였고, 한겨울 식구들을 추위로부터 막아줄 나무 길이기도 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차가운 물도 아랑곳하지 않고 건넜던 길입니다.

 

대통수여울(집앞여울)길에는 여울지기로 나선 향토사학자 정수병(동이면 용죽리)씨를 비롯, 군북면 국원리 황영묵(76), 옥천읍 오대리 보내마을에 살며 보내마을 소개와 함께 여울길 탐방에 나선 일행들을 배로 건네준 한장현(74), 안내면 장계리 조동석씨 등이 함께 나서 일행들에게 옛 추억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안내면 장계리에서 옥천읍 오대리(1990년 이전에는 안남면)를 잇는 대통수여울과 쥐여울, 살뚝여울(살매기여울)과 옛 사람들이 걸었던 장길을 두 번에 걸쳐 나눠 싣습니다.

 

정지용 시인 동상이 서있는 지용공원이 참 밝다. 시인의 동상, 문학관, 옆에 생가에다 공원 주변에 있는 의자까지. 밝은 햇살에 사람들도 모두 밝다.

                           ▲ 며느리재로 오르는 길

 

일행이 지용 생가에서 걷기 시작한 것은 시인이 태어나고 자랐던 당시만 해도 생가가 있는 곳을 포함해 구읍 일대는 옥천군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번성한 시장이 옆에 있어 늘 사람들로 북적였던 곳이다.

 

오대리 보내 사람들은 대통수여울을 건너 며느리재를 넘고 산길을 걸어 군청이 있었고, 옥천면사무소가 있었던 옥천읍 중심가로 장을 보러 나왔다. 장에 오면 나무도 팔고, 나물도 팔고, 보리나 쌀을 싸들고 와서 다른 필요한 물건과 바꾸거나 돈으로 바꾸었다.

 

군청이나 면사무소 등 옛 관청이 있던 곳을 비롯, 옥천장터를 지나 여울로 향하는 길에 있는 며느리재를 넘기 위해 안내면으로 가는 길에 들어선다. 예년 같으면 활짝 핀 벚꽃이 일행을 반겼겠으나 올해는 유난히 추웠던 겨울 탓인지, 벚꽃 개화가 늦어져 꽃봉오리만 머금고 있다.

 

섯바탱이 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여울길을 안내해주는 향토사학자 정수병씨와 함께 며느리재를 안내해줄 황영묵(76, 군북면 국원리)씨와 합류했다.

 

교동리의 자연마을인 섯바탱이는 대략 1920년에서 1930년대쯤 집단취락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이 마을 최재권(74)씨의 증언에 따르면 최씨의 선친 최일섭(작고)씨가 마을에 아직도 남아 있는 두 동의 변전소(일제가 주변 철탑을 관리하는 변전소로 쓴 목조건물) 건물을 지을 때 건축을 담당했고, 이 건물을 세운 후에 마을이 집단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섯바탱이 마을에서 또 하나 특이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대통수여울을 가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며느리재 가는 길 왼쪽 산기슭에 있는 석조 구조물이다. 이 구조물 역시 최재권씨가 20대 초중반에 일을 했던 곳으로, 석회 원석을 깨 넣고 밑에서 불을 지펴 백회를 구워냈던 가마였다. 최씨가 이미 50여년 전에 일을 했던 것으로 보아 이 석조 구조물은 적어도 5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다.

 

군북면 국원리 할애비성과 며느리재

 

섯바탱이 마을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든다. 일행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산길 곳곳에 피어나는 진달래와 노오란 생강나무 꽃이다. 며느리재를 안내하기 위해 답사에 동반한 황영묵씨는 생강나무 열매로 짠 기름을 동백기름이라고 했다고 밝힌다. 생강나무를 산동백나무라고 불리는 것도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 길은 보내 사람들이 옥천에서 시장을 본 후 섯바탱이 마을을 거쳐 며느리재를 넘고 대통수여울을 건너 마을로 돌아가던 길. 그래서 골짜기 이름도 며느리재골이다. 며느리재골 정상에 올라서면 성황당 흔적이 있다. 무너진 돌무더기를 통해 성황당 터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이 곳은 사람들이 많이 왕래했던 큰 길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웅변해준다.

 

성황당이 있는 자리에서 산비탈을 타고 아직 남아 있는 길이 며느리재로 향하는 길이지만 오늘은 산등성이로 코스를 잡는다. 군북면 국원리 할애비성을 보기 위해서다.

 

군북면 국원리에는 늘티 마을 뒷산에 있는 할애비성, 국도 건너편 옥천군 광역쓰레기처리장 인근에 있는 할미성 등 두 개의 성이 있다. 옛날 국원리에 살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성 쌓기 내기를 했고, 이 내기에서는 할머니들이 이겼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성이다.

 

성을 넘으니 이제 며느리재까지는 내리막길이다.

     ▲ 며느리재를 내려오면서 바라본 대청호

 

국도가 개설되고 차량이 지나다니기 전인 예부터 사람들이 걸어서 넘던 며느리재. 며느리재 정상에 다다르니 일제 때 쓰던 고압선 철탑을 철거한 기초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부터 내리막길. 희미하게 남아 있는 옛길 흔적을 따라 내려오니 대청호가 된 금강이다.

 

교동리나, 국원리에서 안내면으로 넘던 며느리재에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함께 비오는 날 고개를 넘다 옷이 비에 젖어 몸에 달라붙자 이를 본 시아버지가 딴 마음을 먹었고, 이를 피해 계곡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안타까운 전설이 깃들어 있다. 어느 고장이든 한 개씩은 있게 마련인 며느리와 관련한 전설인데, 그만큼 며느리로서의 삶이 간단치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 보내로 가는 배 위에서 조동석(맨 왼쪽)씨가 참가자들에게 여울을 설명하고 있다.

 

금강 대통수여울과 주막말, 보내

                                       ▲ 보내마을은 봄이 활짝 피었다. 노란 산수유와 개나리가 탐방객을 맞는다.

 

마침 대청호 물이 아직 빠지지 않아 수북리에서부터 장계리로 향하는 옛 국도는 물에 잠겨 있다. 그래서 보내에 사는 한장현씨가 자신의 배를 움직여 며느리재를 내려온 일행들을 태우러 대청호를 건너왔다.

 

"나는 여기 온 지가 근 15년 만이여. 장례 한 번 모시느라고 오고 나서 오늘 처음이네. 옛날에는 이 주변 농토가 아주 많았어. 소를 몰고 며느리재를 넘어 농사일을 했던 것이 30년도 더 됐지." 국원리 황영묵씨다.

 

대통수여울은 안내면 장계리 주막말에서 옥천읍 오대리 보내 마을로 건너던 여울이다. 당시는 청주한씨 집성촌으로, 30~40가구에 달할 정도로 가구 수도 많았던 곳이다. 보내 사람들은 시장에 가기 위해 안내면 주막말 사람들은 강가에 나와 놀다가 가끔은 참외 서리, 닭서리하러 건넜던 여울이다.

 

그 여울은 지금 흔적조차 찾기 힘들다. 그러나 한장현씨는 물론 조동석씨 등 옛 일을 추억하는 사람들은 "없어서 그렇지 그때가 참 살기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때로 돌아가면 살 수 있겠느냐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일행들의 대통수여울 건너기는 한장현씨의 배로 이루어졌지만 보내 마을의 봄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 여울지기 정수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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