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이안재 기자의 정수병과 함께 걷는 여울길

<정수병과 함께 걷는 여울길➂> 안내면 장계리 다리께여울, 소탄바우여울

맑은공기n 2025. 11. 22. 20:13

<정수병과 함께 걷는 여울길➂>

연초록 여울서 만난 청춘의 기억

안내면 장계리 다리께여울~소탄바우여울~인포리 임도~안남면 구간

 

옥천신문

2011.04.22

이안재 기자 ajlee@okinews.com

 

여울지기 정수병씨의 준비로 시작한 여울 탐방은 안내면 장계리 진모래(장사리)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정구철(68)씨의 설명으로 다리께여울에서 시작했습니다. 다리께여울과 소탄바우여울, 직접 가볼 수는 없었으나 짐승들이 주로 다녔던 토끼여울(토기여울)에 이르기까지 여울길은 그야말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이야기길 이었습니다.

 

안내면 장계리 개경주 뿌리깊은 나무 못미쳐 일행들은 강을 향한다. 다리께여울을 보기 위해서다.

 

다리가 있으니 여울 이름에 다리가 붙었을 것이다. 안내면 장계리 수영장이라면 예부터 옥천 사람들은 물론 인근 사람들까지도, 그 장관을 잊지 못하는 명소가 돼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장계리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는 추억의 사진이다. 금강이 대청호라는 인공호수로 변하기 전이니 벌써 30년은 족히 넘었을 사진. 그 사진은 지금 옛 풍경을 기억하게 해주는 '참 좋은' 단서이다.

 

강물이 휘돌아 가는 전경이 훤히 눈에 들어오는 곳에 선 일행.

 

"저기가 다리가 있던 곳이에요. 똑바로 건너가서 저쪽 계곡 있는 쪽으로 다리가 나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신기한 것은 다리가 놓여진 저쪽 골짜기 이름이 다리골이에요. 어떻게 다리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그 밑에는 큰다리골이 있고."

여울 해설사로 나선 정구철씨

 

정구철씨의 손끝에 일행들의 시선이 걸리는데, 따라가보면 물이 휘돌아가는 지점에 옛 장계교(장계리 사람들은 장계교라고 불렀는데 안남이나 강 저쪽 사람들은 이 다리를 인포리 옛 지명인 화인다리, 회인다리, 화인교라고 불렀다)가 놓여져 있었음을 알게 한다. 장계교는 옥천에서 안내를 거쳐 보은으로 향하는 큰 길목이었다. 이 다리를 통하지 않고서는 안내는 물론 보은도 못가는 상황. 문제는 큰물이 넘치는 여름이면 종종 다리가 잠겨 통행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다리에서 조금 밑으로 내려가면 여울이었어요. 이쪽은 물살이 셌고, 저쪽은 물살이 잔잔했지요. 그런데 강 한가운데에 삼각주 모래사장이 만들어졌어요. 길게 타원형으로 이루어졌는데 근 1,000평은 넘었을 거예요. 사람들은 강복판 모래사장에 가서 많이 놀았죠. 천렵도 하고."

 

장계교와 다리께여울

 

기실 다리께여울은 장계교가 있으니 사람들의 통행수단으로 많이 쓰이지는 않았다. 다리로 건너면 되니까. 다만 여울이 더 유용했던 것은 강복판에 있었던 삼각주를 오가기 위한 이동 수단이었다는 것. 정구철씨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삼각주에 주둔하면서 진을 쳤던 곳이기도 했다. 미군은 인근 강변에 있었던 뱃사공 공적비를 표적으로 총을 쏘곤 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비석이 곰보처럼 돼버렸다고 한다.

 

비가 많이 와야만 볼 수 있는 폭포. 일행들은 무명의 이 물줄기에 '장계폭포'라 이름 붙여주었다.

 

정구철씨의 설명이 이어지면서 역시 일행 중에 장계교와 연관된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말이 빠지지 않는다. 안남 출신인 안후영 옥천향토사연구회 회장이 '폭로를 하겠다'며 부인 강현순씨와의 연애담을 털어놓는다.

 

"당시 저는 옥천에서 근무했고, 아내는 보은에서 근무했는데 서로 버스를 타고 장계교까지 오는 거예요. 아내가 다리를 건너오면 이쪽 산기슭에 산소가 있었어. 그 산소에 가서 도시락 까먹고 놀다가 시간 지나면 버스 타고 각자 돌아가고. 그렇게 몇 년을 연애했어요."

 

그렇게 추억이 묻어있던 산소는 수몰 등의 요인으로 인해 이제 찾을 수 없게 됐다.

 

걸어나오는 길. 어제 비가 많이 와서인지 중간 길목에 폭포 위용이 제법 장관이다. 항상 물이 끊이지 않아 주민 식수원으로 쓰인다는 물줄기다.

 

진모래 사람들의 통행로 소탄바우여울

 

두 번째 목적지 소탄바우여울. 소탄바우여울은 이제는 철거되고 없는 대청비치랜드 놀이시설 아래쪽에 있는 장계관광단지 선착장에서 보기가 제격이다.

 

"소를 타고 여울을 건너기 아주 좋게 바위가 있었어요. 바위에 올라가서 소에 타면 제격이었거든. 그래서 소탄바우여울이라고 했는데 그 큰 바위를 어느 장사가 갖다 놓았다는 거여."

 

소탄바우여울은 장계리 진모래 사람들의 주요 통행로였다. 이 통행로는 학교 가는 길이었고, 강 건너에 농경지를 많이 갖고 있는 진모래 사람들의 농사짓는 통로였다.

 

"강 저쪽에 장계리 사람들이 짓는 농사거리가 많았어요. 겨울이 되면 배를 타고 건너서 학교에 갔고. 산비탈로 올라가면 8부 능선 쯤에 움푹 들어간 곳이 있었어요. 이상하게도 그곳은 겨울에 김이 나와. 손이 시려웠는데 그 구멍에 손을 넣으면 금방 따뜻해졌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곳이 온천이 나오는 곳인가 했지."

 

자연은 참 신기했다. 큰 홍수가 지나가고 두 번째 물이 휩쓸면 강 저쪽에 거대한 모래둑이 생겼다. 높이가 6~7m는 족히 됐을 법한 모래둑. 사람들은 그 모래둑을 신두리라고 불렀다.

 

"저 강 건너 산쪽으로 막지리 사람들이 다니던 고개가 있었어요. 당시 막지리가 안내 행정구역이었잖아요. 그래서 행정 볼 일을 보러가려면 내내 강변을 따라 걸어오다가 '브리기'라는 고개를 넘어서 안내로 가곤 했지요. 불이 자주 난다고 해서 브리기라고 했다는 말도 있어요."

 

이제는 철거된 장계관광단지 놀이시설. 있는 자연 그대로 어울려 놀이시설이 있던 때와는 색다른 감흥을 준다. 일행 중에서도 놀이시설 철거하고 난 후 새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어떻게 구상하느냐에 따라 또다른 명소로 재탄생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생긴다.

 

소탄바우여울 설명을 듣고 나오는 길. 이제는 토끼여울 얘기다. 토끼여울은 소탄바우여울에서 700m 정도 하류에 형성돼 있는 여울로 사람 통행은 별로 없었으나 강을 건너다니는 노루나 토끼들이 건넜다고 해서 토끼여울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여울을 본 후 인포리 임도로 들어선 일행은 어느덧 임도 주변으로 나물을 뜯으러 나온 뭇사람들과 만난다. 산을 만나고, 산나물을 만난 후 이윽고 임도 끝 지점에 이르러서 금강 건너로 동이면 석탄리 피실 마을이 보이는 곳에서 더이상 오르기를 멈추었다. 내려다보이는 피실은 평화롭기만 하고, 옛 오대리 보내 사람들이 문골을 올라서 안남으로 갔음직한 길을 더듬어 안남면 소재지까지 얘기꽃을 피웠다.

 

둔주봉과 피실 전경을 볼 수 있는 안남면 연주리 임도 정상에서 다함께.

다리께여울과 소탄바우여울 주변에는 많은 문화유적지가 있다. 장계관광지 안에 향토전시관이 있어 우리 고장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고, 금강과 안내천이 합수되는 지점에는 화인나루(화인진)가 있어 물류를 수송하는 통로로 활용됐다. 또 오늘날의 여관 격인 화인원이 나루 주변에 있었으며, 인포리에는 화인역이 있었다. 소탄바우여울 건너 맞은편 낮은 산봉우리에는 개화파로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김옥균 선생의 증조부와 아버지 묘소로 추정되는 묘소가 있다. 이뿐 아니다. 인포리에서 임도를 따라 끝까지 오르면 산 정상에 인포리산성이 있다. 백제계 산성으로, 신라가 옥천까지 세력을 넓히기 이전에 주변 경계를 위해 쌓은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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