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이안재 기자의 정수병과 함께 걷는 여울길

<정수병과 함께 걷는 금강 여울길(10)> 봄소식 전하는 대청호 건너에는 오대리가 있었네

맑은공기n 2026. 2. 16. 16:30

< 정수병과 함께 걷는 금강 여울길(11)> 봄소식 전하는 대청호 건너에는 오대리가 있었네

이안재 기자 ajlee@okinews.com

 2012. 04.13

 

옥천읍 오대리 가랜여울, 터골여울

옥천읍 교동리 옥천향교-육영수 생가-수북리 선사테마공원-동이면 석탄리 동정자 터-옥천읍 오대리-오대리 둘레길(터골)-동이면 석탄리 안터 구간 8.5km

 

금강 여울길 시작부터 대박

 

여울길 탐방 참여자가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는데 사상 처음으로 50명을 넘어섰다2012년 금강 여울길 탐방. 시작부터 대박이다

 

그런데 오늘 가는 길은 오대리로 들어가는 배삯이 1인당 왕복 5천원이기에 재정부담도 늘어난다.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살짝 부담이 된다. 그래도 50명이 어딘가?

 

오늘 금강 여울길의 출발점은 옥천읍 교동리 옥천향교이다.

 

조선시대 지방 학교인 향교를 들어서며 모든 사람들을 말에서 내리게 했던 하마비 유래를 설명하니 재미있어 한다. 향교에서는 재무를 맡고 있다는 전 초등학교 교장 출신인 김길평씨가 친절한 안내를 한다. 향교가 어떤 구실을 했던 곳인지를 듣는 탐방객들은 옥천에 살면서도 처음으로 향교를 방문했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여울길 시작은 옥천향교였다. 명륜당을 배경으로 참가자들이 향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다음 방문지는 조선시대 3대 정승이 살았다는 정승집, 육영수 여사 생가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관광버스를 대절해 방문하는 관람객들로 붐빈다.

 

간단히 보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본격적으로 수북리를 넘어 대청호로 향한다. 수북리 고갯마루에는 옻이 오른 사람들까지 낫게 했다는 나부티 샘물이 있었던 곳인데, 유명했던 샘터는 메워져서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동정리 선사테마공원에는 가랜여울 설명을 하기 위해 남곡리에서 나온 백천수씨와 동이면 석탄리 안터마을 박효서 이장을 비롯한 안터 주민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다.

 

강변으로 내려서 서로 간에 짧막한 소개를 마치고 오대리로 향한다. 아직은 대청호 수위가 높아 옛 길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바로 강 옆으로 걷는 길을 언제 걸어볼 것이냐?

 대청호 길을 따라 오대리 배를 타기 위해 강변을 걷는 일행들

 

이 길은 대청호가 수몰되기 전까지는 금강을 따라 안내면 장계리로 이어지고, 보은으로 향하는 옛 국도였다. 대청호 수몰이 되면서 국도가 지금의 군북면 국원리 쪽으로 옮겨졌고, 수위가 높아지면 침수되어 도로 구실을 할 수가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대리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 옥천시내를 다녔다. 하지만 수위가 높아지거나 낮아짐에 따라 사람들이 걸어야 하는 거리가 들쭉날쭉하면서 아예 배터를 대청호 건너 동이면 석탄리 안터마을 쪽으로 옮겼다.

 

'오리티 강변엔 자갈도 많다' 칭이나칭칭 나네

 

오대리로 가기 전에 꼭 들러야 하는 곳.

 

동정자 터를 지나야 한다. 동정자 아래로는 '가마뜯기'란 지명이 아직도 전한다. 옛날 양반네들이 동정자에서 풍류를 즐기다가 정자 아래로 지나가는 가마가 있으면 고하를 막론하고 가마를 뜯어 걸어가도록 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동정자 터에 선 여울지기 정수병씨가 유래에 대한 설명을 한다.

 

조선시대 옥천관아의 동쪽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 동정자. 그리고 서쪽에 있다 해서 붙여진 서정자. 두 정자는 조선시대 중기 유경 공과 안사전 공이 각각 세웠다. 이 정자는 곧 인근 마을 이름을 동정자리, 서정자리로 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고장 관문이 되는 곳에 위치한 동정자 터에서 내려다 보면 대청호는 안남에서 내려오는 금강과 석탄리 쪽에서 내려온 냇물을 합쳐서 안내로 흘러가는 모양을 보이며 탁 트인 전경을 자랑한다.

 

옥천군 관아 동쪽에 있다고 해서 붙은 동정자 자리. 물이 들어찬 대청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랜여울은 지금도 둥그렇게 남아 있는 옥천 취수탑 앞쪽으로 대청호 한가운데 위치했다. 당시는 지금보다는 금강이 좁게 흘렀으니 그럴만 했다. 수몰된 탓에 그 많던 자갈이 모두 물에 잠기게 되었으나 수몰 전 오대리 강변에는 자갈이 무척 많았다.

 

백천수씨는 당시 불렀던 오대리 노랫가락을 기억해내며 "칭이나칭칭 노래 할 때 우리 마을 사람들은 '오리티 강변에 자갈도 많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칭이나칭칭 나네'라고 했다"고 전한다. '칭이나칭칭'은 우리 고장에서 불렀던 민요이고, 이것이 '쾌지나칭칭'으로 변형 돼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이다. 가랜여울 자리에는 오대리 사람들이 가을 수확이 끝난 후 만들었던 징검다리에 대한 추억도 남았다.

 

오대리로 건너는 오늘의 뱃사공 홍성운씨의 사람좋은 웃음이 일행을 맞고 오대리로 들어선 일행은 배고픈 김에 들녘에서 막걸리 한 잔씩과 점심을 함께 먹었다.

 

마치 섬에 들어온 느낌이다. 도둑이 들어와 물건을 훔쳐도 오대리 뱃사공이 태워줘야 육지로 나갈 수 있다는 홍성운씨의 말을 들으며, 과연 육지 속의 섬 오대리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육지 속의 섬 오대리에 배를 타고 도착하는 장면. 이 자리가 가랜여울 자리다.

 

오대리 인가를 지나 산등성이를 얼마간 걸으니 벌써 30~40년 전에 사람이 살았던 터골과 보내를 잇는 고갯길로 내려선다. 이 길은 성황당이 있고, 벚나무가 있어 벚나무재라고 불렀던 고개. 보내 사람들과 터골 사람들은 정월 대보름이면 이 고갯마루에 와서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30여호 남짓 살았던 보내에는 대장간이 있어 터골 사람들은 물론, 버들개, 피실 사람들도 넘던 고개다. 백천수씨의 설명이니 실감난다.

 

오대리 터골에서 보내마을로 넘어가는 벗나무재에 앉은 일행. 성황당이 있는 고갯마루에서 백천수(오른쪽 두번째)씨가 설명을 하고 있다.

 

일행들은 옛 터골 마을로 내려서며 달래를 한 움큼씩 캤다. 봄 정취를 제대로 느끼는 여울길이다.

 

그리고 숨겨놓은 바람 하나.

옥천군이 개설하고 있는 '향수바람길'과 연계해 오대리 둘레길을 만들고, 오대리에 예술촌 등을 조성하면 도시 사람들도 들러가지 않을 수 없는 코스가 될 것이라는 것이 탐방에 동참한 옥천향토사연구회 안후영 회장과 그의 부인 강현순씨의 제언이었다.

 

외지인들에게 처음 개방된 오대리 둘레길. 그 충분한 가능성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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