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치고개 4

龍仁旅行(265): 수지 마현(망가리)에서 분당 돌마각

1637년 1월 8일 병자호란 광교산 전투에서 조선군이 후퇴하며 남긴 말 1,140마리를 획득했다고 청(淸) 태종 문황제 실록(實錄)에 기록돼있습니다. 봉건시대 기군망상(欺君罔上) 죄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벌을 받으니 말 숫자의 가감은 몰라도 기본적으로는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로 판단됩니다. 끄집어내기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엄연한 역사이니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처_ 병자호란 청실록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 네이버 블로그 * 고려사 지킴이 길공구님으로 부터 인용 허락 받았습니다. 마현(馬峴 망가리), 도마치 고개(道馬峙 倒馬峙) 작은 말구리 고개(小轉馬峴), 말구리 고개(轉馬峴) 처럼 용인시 수지구 고개들에 말(馬)자가 유난히 들어가는 유래를 우리말 어원(語源)에서 찾아 고어..

龍仁旅行(216): 수지고갯길 20리, 고개 이름에 남은 병자호란 흔적

龍경로: 8.51km 성복동 망가리고개(마현)~ 도마치고개~ 소말구리고개~ 고기동 말구리고개 2년 전 수지 고갯길 25리 여행기를 쓰며 고개 이름들 유래를 어원(語源)에서 찾았습니다. 예를 들면 용인시 신봉동과 성복동의 경계인 도마치고개 이름을 ‘두메(산골)→도마’의 변음에서 착안해, 빌린 한자 도마(道馬)에다 치(峙)를 붙여 도마치(道馬峙)가 되었다고 추론한바 있었습니다. 병자호란 전투지 광교산 일대에 조선군이 남기고 후퇴한 말들을 청병(淸兵)이 습득한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청실록(淸實錄)에 ‘조선군이 말 1,140마리를 남겨두고 수원 방면으로 퇴각해 획득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을 접한 순간 광교산 아래 수지구(水枝區)의 고개들 중에서도 판교,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고개들 이름..

龍仁旅行(203): 성지바위산 · 바지산 · 도리산

경로: 동천동손골~ 소말구리고개~ 성지바위산~ 도마치고개~ 바지산~ 서수지IC~ 도리산~ 성복2로 소말구리고개(小轉馬峴): 병인박해(1866 고종3년) 때 동천동 손골성지에서 체포한 천주교인들을 압송한 고개로 동천동과 신봉동 경계입니다. 동천동쪽에 옛 고개 모습 원형이 남아있습니다. 성지바위산(265m): 성지바위산 이름은 손골성지 관련해서가 아니라 산촌 마을의 농업문화에서 비롯합니다. 손골(동천동) 사람들은 큰 바위를 보고 종자 보관하던 성주항아리를 연상해 성주바위(변음→ 성지바위)로, 반대편 지봉골(신봉동) 사람들은 곡식 가는 맷돌바위로 불렀습니다. 맷돌바위쉼터 이름의 정자 뒤에 안평님 산행띠가 있습니다. 도마치고개(道馬峙): 성지바위산에서 신봉자율방범대 콘테이너 사무실로 하산해 신봉동에서 성복동으로..

龍仁旅行(164): 수지고갯길 25리

경로 고기동~ 말구리고개~ 소말구리고개~ 도마치고개~ 버들치고개~ 광교역(경기대) 수지와 수원을 연결하는 길은 평탄한 길이 없었습니다. 광교산을 넘기도 했지만 대개는 개울과 고개를 넘어 땔나무, 산나물을 수원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수원으로 유학한 하숙비 댈 형편 못되는 가난한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손골 천주교인들을 잡으려 수원 포졸들이 넘어오고 천주교인들이 끌려간 길입니다. 수지에서 가장 안 동내인 고기동에서 말구리고개, 소말구리고개, 도마치고개, 버들치고개 순서로 넘어 수원시장 못 미친 광교역(경기대) 까지만 걸어도 10km, 25리 길입니다. 개울에는 다리가 생기고 도로 뚫으며 높이 낮춘 고개에 차들이 쌩쌩 달려도, 길 오간 선인들의 냄새를 느낍니다. 수지 25리 고갯길은 에너지(땔나무), 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