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이사영(李士潁)은 불사이군(不事二君) 정신으로 조선에 출사하지 않고 풍덕천에서 농사 지으며 들녘에 정자(亭子)를 짓고 초야의 선비로서 일생을 마치니 인근 마을을 정평(亭坪 정자뜰)이라 이르게 됩니다. 후손들이 용인이씨 집성촌을 이뤘든 정평마을은 현재 풍덕천2동 1통 아파트단지로 정평천, 정평교, 정평중학교, 정평근린공원 등등 이름 외에는 과거의 모습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쉼터 역할을 해주던 500살 정자나무도 근년에 고사해 당당했던 몸체만 남았습니다. 정평의 진산인 심방산(尋訪山)도 원래 이름은 잊히고 정평근린공원(134m)이라 불립니다. 조선이 개국하고 널리 인재를 찾는 사자(使者)가 이 산에 숨어있는 선비를 찾아왔다하여 심방산이라 부르게 됐다는 유래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