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禮山旅行 69

禮山旅行(69): 무한천·삽교천 일주⑥(끝) 구만교에서 합수점

고덕면과 신암면을 연결하는 구만교 넘기 직전 신암면 별2리에서 출발합니다. 지난번에는 고덕면 구만포구 기념공원에서 시작해 구만교를 역으로 넘어와 구양교 방면으로 걷다 중예1 배수장 인근에서 벌판을 질러 ‘추사 암각문’을 탐방하느라 삽교천 걷기 놓친 구간을 걷는 여정입니다. 중예1 배수장에서 구양교 까지 약6km를 걸어야 무한·삽교천 일주는 완성됩니다. 구만교 아래는 작년 삽교천 집중 호우 피해를 복구하느라 중장비들이 분주합니다. 뚝방에서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농본시대(農本時代)에 호서은행(1913년)이 예산에 설립될 수 있었던 배경이 가늠됩니다. 삽교·고덕 평야는 물론이고 신암면 넓고 기름진 토지의 소출이 없었으면 호서은행도 양반가 대저택인 추사고택이나 추사 선생의 필적 암각문도 없었습니다. 뚝방 좌..

禮山旅行(68): 무한천·삽교천 일주⑤ 구만포구 기념공원, 추사 암각문

예산군 고덕면 구만포구 기념공원에서 일정을 시작합니다. 구만평야(九萬平野) 기름진 들판에서 소출된 벼 9만석을 실어 날랐다는 구만리 구만포구는 옛날의 영화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돛과 배 형상아래 안내문이 없으면 이곳이 조선시대 내포의 물길 중심지로 전라남도 완도에서 새우젓배가 오기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1979년 삽교호 방조제 준공으로 물길이 막힌 구만포구는 조락하며 나루터도 뱃터도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내포 역사 탐구에는 구만포입니다. 1866년 남연군묘 도굴사건의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행담도에 본선을 정박시키고 프랑스 신부 페롱을 앞세워 작은 배로 삽교천을 거슬러 구만포에 상륙합니다. 고종의 조부 남연군묘에서 유골을 파내 거래하려는 의도였으나 간조 시간에 쫓겨 구만포구로 회귀..

禮山旅行(67): 무한천·삽교천 일주④ 삽교성당, 배나드리성지, 삽다리총각

삽교천 풍부한 물과 넓은 들판이 아우른 마을, 용동리(용머리)는 홍수가 나면 물바다로 변해 배나드리, 한자로는 주래(舟來)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배 주(舟)자, 주래(舟來) 지명은 천주교 주래공소 이름으로 부활했다가 공소 폐쇄 이후로는 거의 잊혀집니다. 추식 작가가 1967년 발표한 라디오 연속극 ‘삽다리 총각’ 가사나 복자 인언민 비석 후면 비문, 용동리 입구 주래 마을 정도에나 이름이 남아있습니다. (도움말_ 삽교읍 명예읍장 인태평, 용동2리 이장 인병철) 지난 해 용동리 초장지에서 개묘 이후, 대전 교구장 김종수 주교의 교령으로 유해 적합성을 인정받아 삽교성당 제단에 안치된 인언민(印彦敏 1737~1800) 마르티노 복자의 유해함이 앙드레 부통(André Bouton 1914~1980) 신부의 골..

禮山旅行(66): 무한천·삽교천 일주③ 무한천·삽교천 합수점, 추사고택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에는 무한천과 삽교천이 만나 삽교호로 흘러가는 합수점이 있습니다. 탐방객 하나 없는 뚝방에서 고요히 바라보는 무한천·삽교천 합수점 풍경은 겨울 갈대로 쩔어 쓸쓸하면서도 아름답습니다. 무한천, 삽교천 물길 휘도는 가운데 넓은 평야를 만들었습니다. 농경시대 평야를 지배한 호족의 흔적이 봉수지맥(鳳首枝脈) 끝점 용산(龍山 94m) 아래 터 잡은 추사고택입니다. 무한천·삽교천 음과 양이 만나 생산한 지방 권력의 상징, 추사고택에서 신례원까지 걷다가 힘이 빠져 예산군농업기술센터(추사고택입구)에서 택시를 탑승합니다. 추사고택은 이미 소개한바 있기에 이번에는 상세 설명 생략합니다. 삽교천 구간을 끝냈으니 다음은 무한천 구간 걷기를 시작합니다. 무한천·삽교천 일주 절반을 마쳤습니다. 일정:09:..

禮山旅行(65): 무한천·삽교천 일주➁ 여사울 성지

예산군 신암면 신종1리에는 천주교 ‘여사울 성지’가 있습니다. 여사울 성지는 ‘내포(內浦)의 사도(使徒)’라 불리는 순교자 이존창(李存昌, 이명 이단원, 루도비코 1752~1801) 생가 터가 있는 가톨릭 성지로 마을 주민 60% 이상이 천주교 신자입니다. 내포(內浦)는 서해가 내륙 쪽으로 쑥 들어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고, 삽교천(揷橋川)과 무한천(無限川) 두 물줄기가 흐르는 충청남도 중서부 지역을 아우르는 명칭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사울 은 한양처럼 기와집이 즐비해 서울과 같은(여 如) 곳"이라는 비유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여사울 성지에서 무한천으로 걸어보면 넓은 들판이 펼쳐져 농업지대에서 누린 부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순교자 이존창이 경제적으로 비교적..

禮山旅行(64): 무한천·삽교천 일주➀ 예산성당에서 신례원

예산은 예산읍과 삽교읍이 양대 축입니다. 예산읍은 무한천(無限川), 삽교읍은 삽교천(揷橋川)이 흘러 하천 양안에 넓고 기름진 들판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예산을 번성하게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최초의 지방은행인 호서은행 설립과 돈 냄새에 귀신인 화교들이 특별한 상권을 형성했고 기생을 둔 요릿집들이 예산읍 경남관(京南館)과 삽교면 흥호관(興湖館)으로 양분해 성업 한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농업금융과 유흥업만 융성한게 아니라 무한천에는 신라 김유신장군이 당군을 격파한 예산산성(62m 무한산성 산성산 오산성)의 역사가 있으며 양대 하천 따라 전파된 천주교는 여사울 성지(무한천), 신리성지(삽교천, 당진시 합덕읍), 배나드리성지(삽교천)를 거룩하게 했으니 무한천과 삽교천은 예산의 양수(陽水)이자 음수(陰水)입니다...

禮山旅行(63): 국보 예산화전리 석조사면불상

예전부터 불당골(佛堂谷) 미륵당(彌勒堂)이라 불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대한민국 보물 제794호)을 찾아 예산군에서도 외진 곳인 봉산면으로 향합니다. 신례원에서 탑승한 버스가 구만평야(구만리)를 관통해 봉산면행정복지센터에서 하차하니 마을 분위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7,80년대로 되돌아온 느낌으로 퇴락하는 농촌모습이 안쓰럽습니다. 백제시대에서 현대를 잇는 귀한 문화재인 예산 석조사면불상은 오랜 시간 방치되다 1983년에 발견되어서인지 훼손이 심각합니다. 복원을 위해 불두(佛頭)는 국립공주박물관에 보관 중이고 팔들은 모두 일탈해 몸통만 남은 상태이지만 그래도 자연석에 조각된 ‘최초의 백제 미소’로 평가받는 사면석불 세련미에서 신라까지 진출한 백제 석공(石工)의 섬세한 솜씨를 엿봅니다. 사방정토(四方淨土)..

禮山旅行(62): 쓸쓸한 예산종합터미널, 버스 시간표

주소: 예산군 예산읍 금오대로 35-14 (지번) 예산읍 산성리 647전화번호 041-333-2921 예산종합터미널은 예산군 농어촌, 시외버스, 고속버스터미널로 충남고속의 본사(041-333-2911~7)가 있습니다. 예산군 인구 78,879명(2025년 1월 현재)을 고객으로 하는 예산교통(041-332-7494) 대부분 노선이 종합터미널을 기점으로 하거나 경유하며 청양교통 노선도 운행합니다. 주차장에는 시외,고속버스와 예산교통 버스 숫자가 비슷하게 보입니다. 고객편익 입점 시설인 이마트24, 편의점, 국수가게, 사우나 등을 철거하고 대수선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썰렁한 분위기입니다. 다행히 터미널 인근에 편의점이나 식당, 커피점이 있어 불편하지는 않겠습니다. 현수막에 공사 시작, 종료 일자..

禮山旅行(61): 고덕 재물봉 · 배나드리 성지 복자 인언민 초장지

바다가 육지 안으로 울퉁불퉁 들어간 충남의 서부지역인 예산, 홍성, 당진, 서산, 아산 지역을 아울러 내포(內浦)라 이룹니다, 그 중에도 예산은 삽교천을 끼고 너른 들판이 있어 식(食)이 풍족해 주민들 자긍심이 강하고 서해바다 뱃길로 들어온 가톨릭도 일찍 접합니다. 예산 분들의 자긍심을 매헌 윤봉길 의사가 가톨릭 전파를 복자(福者) 인언민 선생이 대표합니다. 내포지구 역사 속으로의 봄나들이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가려 있지만 예산군 고덕면에는 매년 열리는 ‘한내장 4·3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와 일본 헌병대의 진압에 맞선 독립운동가 인한수, 장문환 의사를 기리는 대의사(고덕중앙로 111)가 있습니다. 재물봉(載物峯, 잿뫼성산, 금후성산 65m) 등산로는 대의사(大義祠) 약수터에서 시작합니다. 190..

禮山旅行(60): 배나드리 성지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 무덤 개묘

삽교읍 용동2리 교동 인씨(喬桐 印氏) 집성촌 배나드리는 기도발 솟는 화강암 산 같은 강한 골기(骨氣)는 찾을 수 없이 과수원 지대의 푸르름과 밭농사 짓는 농촌의 정경을 보존한 예산군 어디에서나 흔히 만나는 비산비야(非山非野) 마을의 하나이지만 특별한 곳입니다. 배나드리는 눈앞의 현세에 집착한 대신 조선시대 양반의 특권을 내려놓고 한국 가톨릭 첫 복자(福者)가 되신 순교자 인언민(印彦敏 1737~1800) 마르티노를 기리는 성지입니다. 복자의 영정을 마주하면 십자가를 받든 두 손, 눈 빛, 꽉 다문 입에서 깊은 신앙심이 전달됩니다. 인언민 마르티노는 주래(삽교읍 용동리) 양반으로 정사박해(丁巳迫害 정조 21년 시작) 때인 1799년 공주에서 체포되어 1800년 해미에서 순교, 2014년 시복 복자품에 오..

禮山旅行(59): 삽교읍 신가리

삽교역에서 꽃산(101.1m) 동하사 방향으로 둘레길 따라 걸으면 삽교읍 신가2리(新佳二里)에 접어듭니다. 독골골, 성주골, 작은율모재골, 원당골, 황골 등등 정겨운 이름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신가리는 논농사와 밭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예산군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입니다. 가톨릭 순교자 인언민(1737~1800) 마르티노 복자(福者)의 초상화를 모신 삽교성당도 윤봉길 의사가 충의(忠義)를 위해 기차에 오른 (구)삽교역 부지에 꾸민 삽다리공원도 모두 신가리에 속하니 삽교여행자들이 지명 인지 여부 상관없이 거치는 곳이 신가리(新佳里)입니다. 신가리 꽃산에서 수암산, 덕숭산, 퇴뫼산, 가야산을 배경으로 철길 달리며 멀어져가는 기적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행운입니다. 새마을운동으로 초가를 개량한 스레트 지붕 빈집이 ..

禮山旅行(58): 삽교 여행

2023년 10월 11일(수) 맑음 경로: 9.3km 삽교역~ 꽃산 둘레길 ~ 신가2리 ~ 삽다리 ~ 삽교곱창 ~ 삽교공원 ~ 삽교성당 ~ 삽교역 회귀 고교 친구 18명은 예산 제6경(禮山 第六景) 삽교평야를 걷고 예산 팔미(禮山 八味) 삽교곱창을 맛보기 위해 삽교(揷橋) 나드리를 하였습니다. 삽교 가을 황금들판을 함께 걸으며 즐거워하는 70중반 넘긴 친구들에게서 오래전 중·고등학교 시절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삽교가 고향인 인태평형이 안내한' 만수곱창'의 삽다리 곱창은 ‘꼬들꼬들, 쫄깃쫄깃, 잡냄새 없이 담백해 맛의 진국’이라고 돈육(豚肉)을 그리 즐기지 않는 친구들도 평합니다. 곱창 맛을 아는 삽교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곳이 만수곱창( 041-338-2058 삽교읍 삽교로3길 11)입니다. 식사후 삽교공..

禮山旅行(57): 삽교 꽃산 · 삽다리 · 배나드리 성지

삽교에 가자! 하면 생각나는 것이 삽교곱창이고 거기에 따라 붙는 것이 무엇이 되야 하는지는 삽교가 고향인 사람들도 잠시 망설이다 말하는 것이 예산 제6경(禮山 第六景)인 삽교평야 입니다. 꽃산(101.1m) 조망처에서 보는 삽교 황금들판 사이로 기차가 달리는 풍경은 그림입니다. 가을에만 볼 수 있는 계절적 제약으로 삽교 사람들이 쉽게 추천을 못합니다. 삽교역: 여행인 들은 스토리를 찾습니다. 삽교곱창을 맛보고 삽교 황금벌판을 보려오는 여행객들이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삽교역(揷橋驛) 이면사입니다. 일본인들이 미곡 수탈을 위해 1923년 경남철도(京南鐵道) 삽교역을 개통합니다. 삽교역을 통해 삽교평야 미곡은 이출(移出)되고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의사는 대의를 위해 몸을 싣고 농민들은 만주로 이..

禮山旅行(56): 삽다리 · 삽다리공원 · 꽃산

삽교천 따라 길게 펼쳐진 삽교평야는 예산십경(禮山十景)의 하나로 꼽힐 만큼 황금물결을 이뤄 가을을 아름답게 합니다. 삽교천에는 시집온 새색시가 친정어머니 부음을 듣고도 건널 다리가 없어 애태우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섶으로 다리를 놓아 건너게 하였다는 삽다리 전설이 전해집니다. 삽다리 관련해 현장을 찾아 현지인들을 만나보고 자료 수집도 했지만 다음에 소개하겠습니다. ‘동백아가씨, 마포사는 황부자’를 집필한 작가 추식(秋湜 1920~1987) 선생의 삽다리 총각(1969년)과 가수 조영남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 삽다리(1979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꽃산(100.1m)을 오르면 발아래 조선시대 최고의 풍수로 꼽힌 비산비야(非山非野) 삽교평야의 개방감과 가야산 조망이 펼쳐집니다. 꽃산 아래에는 터널이 뚫려 ..

禮山旅行(55): 덕산 퇴뫼산 · 덕산향교 월봉

예산의 자랑인 예산10경(禮山十景) 중 네 곳(제1경 수덕사, 제2경 충의사, 제7경 가야산, 제10경 덕산온천)이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08~1932) 의사의 고향인 덕산면에 있으니 덕산은 예산의 으뜸가는 충의 정신의 중심이고 관광의 보고입니다. 예산군에 병합되기 전엔 삽교를 아우른 덕산군은 예산군보다 넓었으며 읍성(邑城)과 향교가 있었습니다. 덕산도립공원에 속하는 가을 가야산(677.6m) 정취를 느끼려는 탐방객들이 사동리 싸이판온천이나 광덕사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 오르는 첫 번째 봉우리가 퇴뫼산(291m)입니다. 예산군청 홈페이지 ‘예산의 산’에 ‘퇴뫼산, 사동리·대치리 산’으로만 간단히 적혀있을 뿐입니다. 예산의 지명유래(1995년 예산문화원)를 살펴보았으나 퇴뫼산 소개가 없습니다. 짐..

禮山旅行(54): 팔봉산(下) 팔봉산 · 예당호수 · 딴산

경로: 11.31km 먹석골~ 운곡리~ 사거리 고개~ 팔봉산 정상~ 예당호수 후사리 입구~ 딴산~ 후사리 입구 회귀 팔봉산(208m)과 딴산(獨山 183.9m) 연계산행을 위해 팔봉산을 세 번째로 찾습니다. 예산역에서 탑승한 버스를 먹석골에서 하차합니다. 먹석골(墨石谷)이라 하면 먹같이 검은 돌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인데 검은 돌은 보이지 않고 빨갛게 착색 시작하는 사과들만 눈에 뜨입니다. 운곡리 마을회관에서 임도를 따라 팔봉산을 오릅니다. 팔봉산이 둘러싼 골짜기에 늘 구름과 안개가 껴 마을 이름이 구름실(雲室) 또는 운곡리(雲谷里)입니다. 과거에는 팔봉산 해 높이로 시간을 가늠할 만큼 외진 마을이었는데 운곡리에서 팔봉산 오르는 과수원 길로 유명합니다. 임도 사거리 고개에서 5분 거리인 팔봉상 정상을 다..

禮山旅行(53): 간양리 덕봉산은 덕방산

지난 3월 도고산(道高山 481.8m)·덕봉산(德鳳山 473m) 연계 산행을 하면서 덕봉산 아래 펼쳐진 원시 풍경에 빠져들어 예산에서도 오지인 가톨릭 본당터, 간양사지를 품은 간양골 탐사여행도 따로 하였습니다. 간양골 탐사를 하면서 덕봉산 다른 이름이 덕방산임도 알게 되었으며 왼지 덕방산이란 이름에 무언가 묵직한 과거가 감추어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신례원역에서부터 간양2리 덕봉산 산행로 입구까지 걷는 도중에 70대 에서 80대 까지 어르신 세분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르신들 모두 덕봉산, 덕방산 같이 쓴다고 말씀들 하시지만 덕방산 한자는 모르십니다. 어르신 한분이 덕봉산 정상 아래 산제당(山祭堂)이나 창절사(彰節祠)에 가면 혹시 덕방산 한자가 세긴 비석이 있을지 모른다고 귀뜸해 주셨습니다. 덕봉산 정상..

禮山旅行(52): 안락산 · 삽티공원 · 예산상설시장

금북정맥(錦北正脈) 산줄기 하나가 아산 송악면과 예산 대술면 경계 봉수산(鳳首山 535.2m)에서 빗겨 예산 안락산(425.0m), 토성산(406.2m), 용굴봉(414m), 관모산(390.5m), 금오산(233.9m), 삽티공원산(117m), 산성산(62.0m)의 금오산군(金烏山群)을 만드니 안락단맥입니다. 금오산군 연봉(連峯) 속으로 들어가면 예산 사람들의 유장(悠長)한 심성을 느낍니다. 예산 사람들은 금오산군 산들을 통으로 금오산이라고도 합니다. 금오산군 제1봉인 안락산(425.0m)은 대술면 시산리(詩山里)로 뻗어내려 예산읍 향천리(香泉里)와 경계인 삽티(揷峙: 예산읍 향촌리와 대술면 시산리 사이의 작은 고개)를 과협(過峽)해 삽티공원산(揷峙公園山 117m)으로 연결됩니다. 삽티공원산은 요즘 핫한..

禮山旅行(51): 간양골 간양사지 · 천주교 간양리 본당 터

예산군 예산읍 간양골(間良谷 間良洞)은 도고산(481.8m)과 덕봉산(덕방산 473m) 양산(兩山) 사이의 어질고 좋은 골짜기란 뜻입니다. 불교와 천주교가 차례로 뿌리 내렸던 골짜기 역사는 이름처럼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삼국시대 창건한 고찰로 큰 규모의 절인 간양사(間良寺)가 있었다는 절터는 대원군 시대에 안동 김씨와 묘지관계로 재판에 패해 절이 망했다는 설(출처_ 예산군 문화원 홈페이지)도 있습니다. 절터에는 충남문화재자료 제180호인 당간지주(幢竿支柱)와 주목 받지 못하는 석조(石槽 설거지용 돌 개수대)가 뒹굴고 쓰러진 요사채에서는 귀신이 나올 듯합니다. 간양사지(間良寺址)에서 30m 거리 열린 공지에 간양리 본당 터가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몸을 숨겼던 곳입니다. 조선과 프랑스의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