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여행/龍仁旅行 276

龍仁旅行(276): 양지면 태봉산 · 고래실산

우리나라에는 태봉산이란 이름의 산이 많은데 용인에도 여러 곳에 있습니다. 용인 양지면 주북리 태봉산(275.7m)이라고 하면 몰라도 영동고속도로에서 양지터널 통과하는 산이라고 하면 운전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끄덕입니다. ‘내 고장 용인지명·지지’(용인문화원)에 ‘태봉산은 양지면 주북리와 양지2리에 접한 산’이라고 한자(漢字) 산명이나 유래 없이 딱 한 줄 소개하고 있어 특별하지 않은 산이라고 생각했는데 옛날 양지현(陽智縣) 시절 사직단·여제단이 태봉산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원혼과 역병 일으키는 귀신을 위로하기 위한 제사를 지내는 곳인 여제단(厲祭壇)이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社稷壇)과 함께 태봉산에서 발견된 것은 수도권 최초로 주목받고 있습니다.(용인신문 박숙현 기자 2..

龍仁旅行(275): 처인구 봉두산(鳳頭山)

처인구 김량교(金良橋)와 금학교(金鶴橋)에 양다리 걸친 용인경전철 에버라인 용인중앙시장역에서 걷기를 시작합니다. 고려시대 김량(金良)이 장터를 연 김량장(金良場)이 순대국으로 유명한 오늘의 용인중앙시장 기원이며 시장을 개설한 인물의 이름을 간직한 용인에서 가장 오랜 전통시장입니다. 김량교 역시 김량 이름에서 비롯합니다. 김량교와 함께 용인중앙시장역 건물을 받쳐주는 금학교의 예전 이름은 술막다리입니다. 옛날 과거보러 한양으로 오가는 선비들이나 영남대로를 통해 이동하는 벼슬아치들이 숨을 고르며 다음 여정을 준비한 곳이 용인 술막거리였습니다. 조선통신사 길이기도 한 영남길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어진 조선시대 간선도로입니다. 용인중앙시장역에서 봉두산(鳳頭山 220.2m) 정상까지 2.5km 봉두산 코스는 영남대..

龍仁旅行(274): 늦가을 커피 손허산 분위기, 치마산에서 엉켜

개편한 용인시 홈피에 들어가 보니 ‘걷기여행⚊힐링 테마코스’로 광교산, 응봉, 손허산, 대지산 네 곳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수지구 관내 검드레산(행복언덕쉼터, 신봉산), 도리산, 보아지산, 성지바위산, 소실봉, 심방산 모두 걷기 좋은 산책로를 구비하고 있는데도 손허산(遜墟山 297m)을 선정한 이유는 머내정에서 낙생저수지와 청계산을 바라보는 뷰가 뛰어난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홈피에 소개된 손허산 이름 유래가 꼭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확치는 않기에 본인이 2024. 8.24 ’龍仁旅行(255) 고구려 석실묘·손허산·치마산’에 쓴 글을 반복합니다. ‘손허산(遜墟山) 한자는 겸손할 손(遜)에 산기슭 허(墟)를 씁니다. 손허산 아래 낙생저수지(고기저수지) 물가에 겸손하고 착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을 손이..

龍仁旅行(273): 수지 호랑이 설화, 범박골 범바위를 찾아

수지구에 호랑이가 출몰한 사실은 팩트입니다. 천주교 기해박해(己亥迫害 1839년) 이전에 형성된 한남정맥(漢南正脈) 광교산(582m) 동천동 손골 교우촌은 한양과 가깝고 호랑이가 다니는 깊은 산중이라는 이유로 다블뤼(Daveluy 1818~1866) 주교는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 풍속과 말을 배우는 적응 훈련지로 선정했습니다(출처_ 손골기념관 안내문). 설화가 지명에 영향을 끼친 사례도 있습니다. 고기동 초입 손기(遜基 손의터) 마을에 호랑이가 많았는데 호랑이를 잡은 것은 사람의 손이니 한자로는 손(手)이라 표기해야 하는데 겸손할 손(遜)자를 써 손기(遜基)가 됐다는 전래입니다. 고기동과 동천동에 걸친 손허산(遜墟山 297m) 이름은 한자 손기(遜基)에서 비롯하며 ‘호랑이가 많았다’는 대..

龍仁旅行(272): 심방산 · 바지산

이름이 잊혀진 심방산(尋訪山)은 수지읍지(2002년 용인문화원)에 풍덕천동 산으로 나오며 내고장 용인지명·지지총람(2001년 용인문화원)에도 ‘심방산(尋訪山)은 정평리(亭坪里)에 있는 산’이라고 명시합니다. 조선이 개국할 때 인재를 찾는 사자가 이 산에 숨어있는 선비를 찾아왔다하여 심방산(尋訪山)이라 부르게 됐다는 유래입니다(수지향토문화답사기 2005년 이석순). 심방산 이름이 잊혀진 이유는 다 알 수 없지만 수지구 개발과정에 이리저리 동강나 정평공원과 신봉공원으로 나뉘어지며 중간에 왕복 6차선 도로(수지로)가 개설돼, 두 공원이 합쳐 하나의 산이었다는 사실도 차츰 까마득해지고 원주민보다 외지에서 전입해온 사람들이 더 많아진 수지구 지역 특성상 심방산 산명(山名)은 대중의 기억에서 살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龍仁旅行(271): 수지구 신목 · 보호수

신목(神木) 또는 신수(神樹)는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낼 때 오방색천을 매어 둔 나무입니다. 수지구에 현존하는 신목은 용인시와 의왕시 경계인 고분재(315m 曲峴, 古盆峴) 오름에 위치한 신갈나무와 상현동 길마재 공원 독바위 물푸레나무 둘 뿐입니다. 고분재 신갈나무는 ‘돌탑’에 둘려 쌓여 산중 깊숙이, 상현동 길마재 물푸레나무는 무속 대상인 ‘독바위’와 함께 마을에 위치해 돌 문화 유사성은 있어도 위치는 산중과 평지 마을로 대비됩니다.보호수:산림보호법은 ‘역사적ㆍ학술적 가치 등이 있는 노목(老木), 거목(巨木), 희귀목(稀貴木) 등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합니다.’ 수지구 죽전동, 풍덕천동에는 보호수가 없고 동천동, 성복동, 신봉동에 은행나무, 느티나무, 향나무들이 보호..

龍仁旅行(270): 정평 심봉산(정평근린공원)

고려말 이사영(李士潁)은 불사이군(不事二君) 정신으로 조선에 출사하지 않고 풍덕천에서 농사 지으며 들녘에 정자(亭子)를 짓고 초야의 선비로서 일생을 마치니 인근 마을을 정평(亭坪 정자뜰)이라 이르게 됩니다. 후손들이 용인이씨 집성촌을 이뤘든 정평마을은 현재 풍덕천2동 1통 아파트단지로 정평천, 정평교, 정평중학교, 정평근린공원 등등 이름 외에는 과거의 모습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여름이면 마을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쉼터 역할을 해주던 500살 정자나무도 근년에 고사해 당당했던 몸체만 남았습니다. 정평의 진산인 심방산(尋訪山)도 원래 이름은 잊히고 정평근린공원(134m)이라 불립니다. 조선이 개국하고 널리 인재를 찾는 사자(使者)가 이 산에 숨어있는 선비를 찾아왔다하여 심방산이라 부르게 됐다는 유래가 있..

龍仁旅行(269): 걸음수 비교 상위 1%

스마트폰에서 Samsung Health 앱 화면이 보여주는 수치를 보며 걷다 대한민국 상위 1% 걸음 숫자가 궁금해졌습니다. 매일 걸음 수를 올려 측정 시작한 16일 만에야 주당 평균 20,670보를 기록해 상위 1%에 도달 할 수 있었습니다. 수지구(水枝區)의 손곡천, 동막천, 성서천, 성복천, 신봉천, 정평천, 풍덕천, 신대저수지 같이 다양하고 상큼한 물길따라 걸으며 달성할 수 있었기에 용인여행으로 분류합니다. 젊을 때부터 꾸준한 등산으로 상위 2%까지는 어렵지 않았으나 상위 1%를 위해서는 1주일간 매일 약20,000보, 16km 정도를 걸어야했습니다. 8월17일은 20,000보에 미달한 17,885보(13.87km)였기에 8월 22일에는 26,260보(20.64km)를 걸어 주당 목표 수치를 평준..

龍仁旅行(268): 지곡동, 사은정 ·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

기흥구 지곡동(芝谷洞)은 40여년전 까지만 해도 한산이씨가 대성(大姓)인 용인의 오지였습니다. 부아산 뒤 골짜기 마을이라 디실, 지실을 훈차(訓借)해 지곡동(芝谷洞)으로 부르게 됐다는 견해(이인영)와, 지실의 옛 이름 디실은 기와(瓦)의 고어인 ‘디새'에서 온 말로 음애(蔭崖) 이자(李耔) 선생의 지곡동 고택이 기와집인데서 비롯했다는 주장(정양화)도 있습니다. 목은 이색의 후예인 음애 이자(1480~1533) 선생이 거주한 한산이씨 음애공파 고택은 조선시대 경기지역 중산층 건축양식의 가치를 인정받은 경기도 민속문화재 제10호 입니다. 양반가 고대광실 중압감 없이 차분히 완상하기 적당한 크기의 넓지 않은 고택으로 나지막한 보라산(甫羅山 215m)과도 잘 어울립니다. 평상시에는 잠겨있다 행사 때에만 개방합니..

龍仁旅行(267): 가요헌정 기남이고개 · 병마굴산

용인에 수많은 고개들 중에서도 사람 이름이 붙은 고개는 기남이고개 하나입니다. 고개 이름 뿐 만이 아니라 가요 헌정(獻呈)까지 받은 고개로도 대한민국 유일합니다. 생각보다 넓은 용인 땅 이 곳 저곳 훑고 다니면서도 스토리텔링에서 기남이 고개가 주는 감동은 으뜸입니다. 기남이고개는 용인에서 가장 높고 깊은 골에 자리 잡아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별명을 얻은 양지면 정수리(定水里)와 양지면사무소 소재지 양지리 교동마을을 이어주는 고개입니다. 고지대 골프장으로 유명한 아시아나CC 출입 차량들이 달리는 포장도로이지만 65년전 이 고개가 생기면서야 자동차를 구경했다는 정수리 마을 분들이 계셨다고 합니다. 양지공립보통학교 4학년을 가난으로 중퇴하고 점원으로 일하다 성공한 박기남(朴基男 1913∼1985) 선생은 어..

龍仁旅行(266): 용인공용버스터미널 시내버스 탑승장

용인공용버스터미널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중부대로 1486(김량장동 23-1)전화: 031-338-4444운영주체: 경남여객 https://www.knyongintr.co.kr/index.html 경남여객 사명은 경기도 용인의 남씨가 설립한 업체라는 우스개가 있는 용인향토기업. 용인시 유일의 공영버스터미널로 2024년 2층 건물로 재건축 완료해 2025년 4월 28일부터 신터미널 정식 운영을 개시하였습니다. 고속, 시외버스 이외 시내버스 승차장은 공간부족 탓인지 터미널 내외부에 분산설치 운영하기에 처음 찾는 여행객들에게는 혼란스러울 수 있어 행선지별 탑승장 위치를 소개합니다. 시내버스 1번 탑승장 앞 임시 가판대 붕어빵도 소개합니다! 용인공용버스터미널 시내버스 노선정보:https://www.kny..

龍仁旅行(265): 수지 마현(망가리)에서 분당 돌마각

1637년 1월 8일 병자호란 광교산 전투에서 조선군이 후퇴하며 남긴 말 1,140마리를 획득했다고 청(淸) 태종 문황제 실록(實錄)에 기록돼있습니다. 봉건시대 기군망상(欺君罔上) 죄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벌을 받으니 말 숫자의 가감은 몰라도 기본적으로는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로 판단됩니다. 끄집어내기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엄연한 역사이니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처_ 병자호란 청실록 6부-청 태종 통곡하고 또 통곡하다! : 네이버 블로그 * 고려사 지킴이 길공구님으로 부터 인용 허락 받았습니다. 마현(馬峴 망가리), 도마치 고개(道馬峙 倒馬峙) 작은 말구리 고개(小轉馬峴), 말구리 고개(轉馬峴) 처럼 용인시 수지구 고개들에 말(馬)자가 유난히 들어가는 유래를 우리말 어원(語源)에서 찾아 고어..

龍仁旅行(264): 검드레산 이우성 선생 묘는 어디로

검드레산(행복언덕쉼터 건드레산 간태산 금태산 신봉산 260.1m)에서 성지바위산(265m) 방향 230m 거리에 석암(石菴) 이우성(李羽成 1641~1698) 선생 묘가 있었습니다. 조부가 조선시대 대문장가로 대청황제공덕비(삼전도비)를 지은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1595~1671) 선생입니다. 이우성 선생 묘는 광교산 주봉인 시루봉 향(向)을 포기하고 석운동 발화산(發火山, 發華山 우담산 425m) 조부, 부친 묘를 바라보는 서북향 자세로 300년 이상 검드레산에 모셔져 있다 2024년 가을 석운동 백헌(白軒) 선생 묘원 옆 문중 묘로 이장 하였습니다 조부(祖父)부터 아버지, 아들 손자 묘 모두 판교 석운동에 있는데 이우성 선생 유택을 검드레산으로 정한 사실이나 충정공 민영환 선생, 무아 정규성 회..

龍仁旅行(263): 검드레산의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 정규성 회장, 수풍로

수지구 검드레산(건드레산 260.1m)은 재미있는 산 이름 유래에 더해 아홉사리고개, 고인돌, 여흥민씨사패정계(驪興閔氏賜牌定界) 표지석, 충정공 민영환 선생 초장지, 백화점업계 거목 무아(無我) 정규성(丁奎成) 선생 묘터, 수풍로 이름 유래 등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일화를 간직한 산입니다.  옛 용인군 시절 외진 산골 마을인 동천리 사람들이 풍덕천리로 넘어가던 아홉 구비로 이루진 아홉사리고개 백여우 전설, 검드레산 자락 고인돌(학술 검증 필요), 1942년 기흥구 마북동 이장으로 실전된 민영환 선생 초장지 이야기는 수차례에 걸쳐 소개하였기에 생략합니다.  1970년대 유통업계를 이끈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 창업주인 무아(無我) 정규성(丁奎成 1909~1992) 선생 관련한 추가 글입니다. 검드레산에서 삼성..

龍仁旅行(262): 수지 알프스 설산 산행

2025. 1. 28(화)  눈눈 내리는 날 수지 알프스 산행에 나섰습니다. 수지구 동천동, 신봉동, 고기동 광교산 지맥 자산들에 걸친 환상형 산맥을 수지구 알프스, 또는 동천동 알프스라고 합니다. 수지 알프스 가운데에는 상손골, 중손골, 하손골로 나누어지는 손골이 있으며 손골 뜻풀이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손처럼 가늘고 긴 골짜기라는 의미의 손골(手谷). 2) 소나무가 많은 골짜기 송골(松谷)이 손골로의 변음 설. 3) 향기 나는 풀인 손초(蓀草)가 자생한 골짜기라 손골(蓀谷)이라는 주장입니다. 손골은 현재 손곡(蓀谷)이라 한자 표기하니 3번 주장이 보편적입니다. 참고자료_ 용인시민신문 2005.07.14. 정양화. 손골(蓀谷)과 송골(松谷)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의 스승으로 조선 중기 최경창·백광..

龍仁旅行(261): 광교산 호랑이 전설따라 눈길 산행

광교산(582m)이 진산인 수지구에는 호랑이와 관련한 지명유래가 전래합니다. 광교산 자산인 손허산(遜墟山 297m) 이름이 유래한 고기동 손기(遜基 손의터)에 ‘호랑이가 많았는데 호랑이를 잡는 것은 사람의 손이라 하여 손기(遜基)라 하였으니 손을 나타내려면 손(手)이라 해야 하는데 순할 손, 겸손할 손(遜)을 써 온 것’이라는 지명유래입니다. 출처, 용인시 홈피. 호랑이 이름이 붙은 바위로는 고기동, 동천동, 성복동, 신봉동 마다 범바위가 산재합니다. 현재도 쉽게 확인 할 수 있는 곳은 성복동과 신봉동 경계, 광교산 지맥인 바지산(보아지산 洑阿只山 191m) 범바위입니다. 호랑이가 다니던 길목으로 호랑이가 가끔 쉬어간 바위라 붙여진 이름으로 밤이면 바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호랑이 눈이 번쩍였다고 합..

龍仁旅行(260): 아홉사리고개 · 검드레산 · 재벌 명당묘터

우리나라에는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아홉사리고개 부터 충청남도 천안의 짚새끼 사리듯 꼬부라진 아홉사리고개, 부여군 홍산면의 보부상 애환이 녹은 아홉사리고개, 경상남도 거창 가북면 아홉사리고개 까지 전국적으로 아홉사리고개(九曲峙)가 분포하고 있습니다. 깊고 험한 지역 이였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고개마다 전설도 전해옵니다.  옛날 인제군 상남리에서 험준한 아홉사리 고개를 넘어 16세 처녀가 홍천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시집온 1년 후에 아이를 낳아 친정엘 가려 해도 아이와 함께 험한 산길을 도저히 넘어 갈 수가 없어 아이가 아홉살 되던 해에 드디어 고개를 넘었다 하여 아홉사리 고개라 전한다고 합니다.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도 아홉사리고개(아홉살이고개)가 있습니다. 옛 용인군 수지읍 시절 외진 산골 마을인 동천리..

龍仁旅行(259): 검드레산 · 충정공 민영환 선생 초장지를 찾아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 1861~1905) 선생 유택은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모셔져 있습니다. 선생이 우국충정으로 자결하자 나라에서 검드레산(260.1m 행복언덕쉼터 신봉산 간태산) 일대를 사패지(賜牌地)로 하사해 여흥민씨 정계표석이 있다는 글을 읽고 오랫동안 찾아왔었습니다. 검드레산 정상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쉬는데 토월약수터 방향으로 빨래판 같은 특이한 장석(長石)이 쓰러져 있어 흙을 딲으니 여흥민씨사패정계(驪興閔氏賜牌定界)라는 한자가 드러납니다. 사패지 정계표석 이었습니다. 소유권을 상실한? 여흥민씨 가문에서 관심을 끊으니 정계석도 잊혀지고 비바람 세월에 쓰러져있습니다. 잊혀진 건 사패지경계석만이 아닙니다. 우국지사 민영환선생의 초장지(初葬地)도 찾을 수 없습니다. 본래 용인군 수진면 토월..

龍仁旅行(258): 수지·분당 동막천 오룡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동천자이 아파트 앞 ‘고기로’ 건너 동막천으로 내려가면 용인 동천동과 성남 동원동을 연결하는 60m 길이 작고 낡아 부서져가는 보(洑 둑)를 만나게 됩니다. 이 보 주변이 병자호란의 상흔을 간직한 오룡뜰(五龍坪)이고 이 곳 보에서 흐르는 물이 과거 구미동 오리뜰 까지 적신 벼농사의 젓줄 이였습니다. 수지구와 분당구의 접점지인 오룡뜰은 병자호란 험천(險川) 주전투장인 분당구 진재산이 급경사를 이루며 동막천(험천)과 만나는 장소입니다. 동천동·고기동 역사를 연구하는 김창희(동아일보 전국제부장) 선생은 ‘오룡뜰은 다섯 마리의 용이 사는 들판이라는 뜻으로 1636년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의 인조를 구하기 위해 달려온 충청도 관찰사 정세규의 부대가 몰사한 장소들 중의 하나라는 구전도 있다...